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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십자가는 못 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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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어도 군인으로 죽을 것이고, 군도 제 다짐과 의지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만에 하나 전역 처분이 나더라도 재입대를 하자. 재입대가 안 되면 군무원으로라도 군에 남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1년 2월27일, 성전환 수술 후 여군 복무를 희망하며 군당국과 소송 중이던 변희수 하사가 목숨을 끊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난관을 이겨내겠다던 그녀였지만 끝내 차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희생양이 됐다.

경향신문

조형근 사회학자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 이 법을 발의한 후 20대 국회까지 모두 일곱 차례 발의됐지만 검토조차 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도 네 건이 발의되어 있다. 작년 6월에는 10만명이 참가해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됐다. 법사위가 심사 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까지로 연기해버렸다. 그렇게 하기 싫을까?

차별금지법이란 고용, 교육, 재화, 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성별, 성적 지향, 학력, 출신학교, 인종, 국적, 종교, 출신지, 장애 여부 등에 따른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다. 물론 합리적 차별까지 금하지는 않는다. 교수 뽑는 데 학위를 요구하거나, 소방관 뽑는 데 체력 시험 치르는 게 차별은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떨어뜨린다면 차별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고, 보통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우리 모두 수혜자가 된다.

사실 차별 금지가 대단한 건 아니다. 헌법 정신을 지키는 것일 뿐. 그래서 오히려 부끄럽다. 유엔의 여러 기구가 2007년에서 2017년 사이 한국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것이 아홉 차례다. 유럽연합은 차별금지법이 가입의 필수 요건이다. 동성혼인을 인정하는 나라도 29개에 이른다. 소위 ‘선진국’ 대부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들도 주님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시민결합법을 지지하면서 한 말이다.

차별금지법, 특히 동성애자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개신교 보수교단의 반발이 거세다. 종교의 자유에 따라 동성애를 성서가 규정한 죄악으로서 비판할 수 있는데, 이 법이 생기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입법 과정에서는 당연히 행위나 표현의 구체적인 수위, 맥락을 고려해야 하리라. 목회자가 신도에게 동성애에 대한 신념을 설교하는 걸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교의 자유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 나라들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듯이. 무릎 맞대고 논의하면 된다.

예수는 여성, 병자, 세리, 창녀처럼 비천하고 죄악시되던 이들과 공생애를 함께했다. “창녀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리라”고도 했다. 율법을 모시던 제사장들이 신성모독이라며 고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 예수에게 가해진 이 박해를 낱낱이 폭로한 텍스트가 바로 성서다. 성서야말로 피해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희생의 텍스트라는 르네 지라르의 통찰이 서늘하다. 내게 성서는 희생양을 기억하고 나의 가해자됨을 고백하게 하는 깨달음의 원천이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때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자처하게 되는 이유다.

지금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류 활동가가 44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함께하던 이종걸 활동가는 39일째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목숨을 건 두 사람, 이들과 같이한 이들 덕분에 마침내 국회가 25일에 공청회를 연다. 첫 단추다. 더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의 미류 활동가 대신 이 난을 맡았다. 국회 앞의 그녀를 찾았을 때 말문이 막혔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희생의 텍스트는 성서로 충분하다. 더는 희생양도 안 된다. 부끄럽지만 뭐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십자가는 못 지더라도.

조형근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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