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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탕 탕 탕 탕 탕’… 이란 혁명수비대 간부, 테헤란 도심서 '영화같은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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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 2명 차량 측면 접근해 5발 총격

美 공격에 폭사 솔레이마니 이후 처음

이란, 美 등 배후로 지목… “복수할 것”

美·이스라엘, 반응 자제하며 예의주시

세계일보

이란 테헤란에서 두 명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숨진 혁명수비대 사 야드 코데에이 대령의 시신을 그의 가족이 보고 흐느껴 울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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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탕 탕.

일요일이었던 지난 22일 오후 4시쯤(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총성 다섯 발이 울렸다. 흰색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총탄에 맞아 안전벨트도 풀지 못한 채 옆으로 쓰러져 그 자리에서 숨졌다. 푸른색 셔츠의 소매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괴한 2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이란 정예 혁명수비대 간부가 테헤란 도심의 자택 앞에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암살을 당했다. 의회, 관공서가 밀집한 수도 한복판에서 대담한 공격으로 숨진 인물은 사야드 코데에이 대령. 이란의 핵심 전력 혁명수비대에서도 최정예인 쿠드스군 소속으로 해외 작전을 총괄하던 성지의 수호자(Defender of the Sacred Shrine)로 불린 인물이다.

웨스트아시아통신사(WANA)가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승용차의 전면 유리는 멀쩡한데 운전석 옆 오른쪽 유리창이 파괴됐다. 괴한이 오토바이를 타고 코데에이 대령 차량의 측면에 접근해 총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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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코데에이 대령은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 방문 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드론 공격으로 폭사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이후 이란에서 암살된 가장 고위급 인사다. 이란 영토 안에서의 테러로는 2020년 11월 핵개발 책임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테헤란 인근서 이동 중 차량 폭발 사고로 사망한 이후 처음이다.

괴한에 대한 정보는 즉각 확인되진 않았다. 코데에이 대령의 암살 배후를 자처하는 세력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혁명수비대와 보안 당국은 달아난 괴한들을 쫓고 있다고 현지 파르스 통신이 전했다.

혁명수비대는 “세계적으로 오만한 세력(global arrogance)과 연계된 테러분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오만한 세력’은 이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등 적대국의 정보기관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마침 같은 날 혁명수비대는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정보기관과 연결된 범죄자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체포된 이들이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지만 코데에이 대령 암살 사건과의 연관성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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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 자택 앞 승용차 안에서 22일(현지시간) 무장괴한 2명의 총격을 받고 숨진 혁명수비대 사 야드 코데에이 대령 시신을 경찰이 확인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3일 성명에서 대령을 순교자라 칭하며 미국 등을 테러 배후로 지목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복수 의지를 밝혔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보안 당국자들이 (암살자를) 계속 추적해 의심의 여지 없이 위대한 순교에 대해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은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코데에이 대령의 암살 배후 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란 당국이 서둘러 미국 등이 연루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행보에 외신은 주목하고 있다. 최근 교착 상태에 빠진 미국과의 협상에 이번 사건을 활용해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이란의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수준을 일정량 제한하는 2015년 수준의 핵 합의를 복원하려는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의 협상은 지난 3월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란이 혁명수비대를 미국의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코데에이 대령의 임무가 미국·이스라엘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이란의 전략이 먹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란 당국 설명과 외신 등을 종합하면 코데에이 대령이 수행한 해외 작전은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 그룹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쿠드스군은 각 지역 무장단체에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교육을 하는 등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자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이런 작전의 책임자를 무리해 암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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