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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새 지평을 연 손흥민…춘천 소년이 EPL 득점왕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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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23일 노리치 시티와의 EPL38라운드 최종전을 5-0으로 이긴 뒤 리그 득점 1위 등극에 대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노리치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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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 축구 역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이 세워졌다. 한국 축구의 자존심 손흥민(30·토트넘)이 세계 최고 프로축구 리그로 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은 23일 영국 노리치 캐로 로드에서 열린 노리치 시티와의 2021~2022 EPL 시즌 최종전에서 팀이 3-0으로 앞선 후반 25분과 30분 연달아 골을 터트렸다. 시즌 리그 득점을 23골로 늘린 손흥민은 같은날 울버햄프턴을 상대로 1골을 넣은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EPL에서 아시아 선수가 득점왕에 오른 것은 손흥민이 처음이다. 손흥민의 2골까지 더해 5-0 대승을 거둔 토트넘은 승점 71점으로 5위 아스널(승점 69)의 추격을 따돌리고 4위를 수성,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겹경사를 누렸다.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전반전부터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하며 적극적으로 골을 노렸다. 그러나 노리치 시티의 골키퍼 팀 크룰의 선방에 막혀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 사이 토트넘은 데얀 쿨루세브스키의 멀티골과 해리 케인의 추가골을 앞세워 3-0 리드를 잡았다.

후반전 들어서도 크룰의 선방에 땅을 치던 손흥민은 후반 25분 마침내 득점에 성공했다. 케인의 전진 패스를 모라가 원터치로 손흥민에게 넘겼고, 손흥민은 침착하게 오른발로 낮게 깔아차며 골망을 흔들었다. 골맛을 본 손흥민은 후반 30분 자신의 전매특허인 ‘감아차기’로 한 골을 더 보탰다. 페널티아크 왼쪽에서 손흥민이 오른발로 강하게 감아찬 슈팅이 골문 오른쪽 상단에 정확히 날아가 꽂혔다. 이 골이 들어가자 토트넘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흥민에게 달려가 그를 번쩍 들어올렸고, 손흥민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환하게 웃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손흥민은 어릴 적부터 프로축구 선수 출신의 아버지 손웅정씨의 엄격한 지도 속에서 성장했다. 스스로를 ‘3류 선수’라고 혹평했던 손씨는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스페인, 독일 등 세계적인 축구 강국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접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들을 아들에게 쏟아부었다.

선진 시스템을 접하면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은 손씨는 손흥민에게 지겹도록 기본기 훈련만 시켰다. 공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다른 기술들은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다. 손흥민의 장점 중 하나인 ‘양발잡이’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슈팅 훈련을 할 때도 왼발부터 시작했다. 체력이 좋을 때 왼발 슈팅 훈련을 먼저 하고 그게 끝나야 오른발 슈팅 훈련을 했다. 필요한 순간 가장 필요한 발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 했다”는게 손씨의 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뒤 대한축구협회가 시작한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는 손흥민의 가능성을 세계에서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08년 7월 6기 1차 유학생으로 뽑혀 독일 함부르크로 향한 손흥민은 훈련 기간 중 재능을 인정받아 함부르크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0~2011시즌 함부르크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바이어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 토트넘에 입성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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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손흥민이 23일 영국 노리치 캐로 로드에서 열린 노리치 시티와의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서 득점왕에 오른 뒤 득점왕에게 주어지는 골든 부츠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노리치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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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슈팅력과 골잡이 능력은 수많은 경기에서의 활약상을 통해 수도 없이 증명되어 왔다. 한때 볼없는 움직임 등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매년 쉼없는 훈련과 노력으로 이제는 EPL에서 누구보다 날카로운 ‘오프더볼’ 능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많은 팬들이 손흥민의 경기력 못지 않게 입을 모아 칭찬하는 부분은 바로 뛰어난 ‘인성’이다. 손흥민은 어떤 상황에서든 팬들이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2골을 터트렸던 지난 1일 레스터 시티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몸이 불편한 한 꼬마팬을 위해 선사한 ‘망원경 세리머니’는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인생을 겸손과 감사, 성실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손흥민은 프로 데뷔 후에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손흥민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박지성을 들 수 있다. 기록적인 측면에서 이들을 모두 넘어선 손흥민이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우승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제외하면 손흥민은 우승과 관련해서는 늘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울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래도 눈물을 흘릴 때마다 손흥민은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더 강해졌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은 손흥민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우승은 없어도, 손흥민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자신의 커리어에 당당하게 추가했다. 2022년 5월23일, 손흥민은 그렇게 한국 축구의 신화가 됐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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