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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여성 앵커 얼굴 가리라' 하자 남성 앵커도 얼굴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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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이 여성 앵커가 머리카락 뿐 아니라 코와 입도 가린 채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자 남성 앵커들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뉴스를 진행하며 여성 동료들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집권 초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했던 탈레반은 최근 여학생 등교 조치를 번복하는 등 인권 탄압에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탈레반 집권 뒤 서방의 경제 제재로 아프간의 빈곤이 심화되는 가운데 여성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며 여성들의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방송 톨로(TOLO)뉴스는 22일(현지시간) 여성 진행자들이 얼굴을 가린 상태로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탈레반의 지침에 맞서 여성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자사 방송에서 남성 진행자를 포함한 모든 진행자들이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저녁 6시 방송된 톨로뉴스 화면을 보면 남성 진행자가 검은 마스크를 통해 얼굴을 가린 채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톨로뉴스는 남성 앵커 뿐 아니라 다른 남성 기자 및 직원들이 연대의 뜻으로 회사 내부에서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린 채 회의 등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장면도 공개했다.

앞서 이슬람 질서 구축을 위한 '도덕 경찰' 구실을 하는 정부 조직인 권선징악부는 이달 초 발표된 모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도록 하는 조치를 방송 진행자에게까지 확대하겠다고 지난주 밝혔다. <AFP> 통신은 정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후 몇몇 여성 방송 진행자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송에 나섰지만 정부가 방송사에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톨로뉴스의 여성 앵커 소니아 니아지는 <AFP>에 "우리는 마스크 착용에 저항했지만 압력을 받은 회사 쪽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방송에 나갈 경우 다른 자리로 발령나거나 축출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주말 아프간 주요 방송에서 여성 진행자들이 코와 입을 스카프 등으로 가린 채 방송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최근까지 여성 진행자들은 스카프로 머리카락과 목 부근은 가렸지만 안면은 가리지 않고 눈·코·입을 드러낸 채 방송을 진행했다.

프레시안

▲2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방송 톨로뉴스의 남성 진행자가 마스크를 쓴 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프간 집권세력인 탈레반은 여성 진행자가 얼굴을 가리고 방송해야 한다고 지난주 통보했다. 톨로뉴스는 여성 동료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남성 진행자도 얼굴을 가렸다고 밝혔다. ⓒ톨로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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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로뉴스는 "권선징악부가 22일 아침을 명령 이행의 최종 시한이라고 통보했고 우리는 이를 시행했다"며 여성 앵커가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방송한 이유를 설명했다. 방송은 그러나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여성 진행자가 얼굴을 가리고 방송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같은 조치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대한 보편적 해석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크폴왁 사파이 톨로뉴스 부국장은 소셜미디어(SNS)에 직원들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쓴 채 회의하는 사진을 올리며 "우리는 오늘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썼다. 권선징악부는 해당 조치에 대해 "우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방송 BBC는 방송업계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많은 여성 진행자들은 탈레반이 다음 조치로 그들을 아예 방송에서 축출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톨로뉴스의 여성 진행자인 크하티라 아흐마디는 입과 코를 가리고 눈만 드러낸 채 방송하는 것에 대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톨로뉴스의 또 다른 여성 진행자인 파리다 시알은 BBC에 "무슬림으로서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방송에서 진행자가 2~3시간 동안 얼굴을 가린 채 얘기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며 국제사회가 탈레반이 명령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사회적·정치적 삶에서 여성을 지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여학생 등교 번복하자 비밀학교도 등장…제재로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

앞서 탈레반은 여학생들의 등교 허용 조치를 번복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집권 뒤 초등학교를 제외한 여학교를 폐쇄한 탈레반은 3월 여자 중등학생들의 등교를 허용하겠다는 발표를 일주일만에 뒤집었다. 교복 규정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BBC는 갑작스레 등교가 거부된 여학생들을 위해 여성운동가들이 비밀리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약 12명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생물, 화학, 물리 등을 하루에 한 두 시간씩 강의하는 이 학교의 교사는 "비밀리에 수업을 진행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만일 체포돼 구타당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며 여학생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BBC는 "탈레반이 집권 초기에는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지만 공공장송에서 여성이 얼굴을 가리고 다닐 것을 의무화 하고 가능하면 외출하지 않을 것을 권장하는 것을 포함해 점점 강경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여학교 폐쇄 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탈레반 구성원이 정보부의 심문을 받고 해당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내부 비판 세력에 대한 관용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탈레반의 여성 억압은 서방의 경제 제재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국내 빈곤을 가중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탈레반 집권 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70억달러(약 9조원)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 외환보유고를 동결했고 많은 개발 및 원조 자금도 중단됐는데 서방은 제재를 풀기 위한 주요 조건 중 하나로 여성 인권 보장을 들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탈레반 집권 뒤 수십 억 달러의 해외 개발 원조 자금이 끊기며 이 자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아프간 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엔(UN)은 이달 9일 아프간 인구의 거의 절반, 1970만명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CNN은 20년간의 전쟁보다 이 위기가 더 많은 아프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집권한 2021년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200억달러)에 비해 20~30%나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탈레반이 여학교를 폐쇄하고 여성들이 집에 머물도록 권장하며 여성 일자리가 차츰 사라지면서 여성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고 교사였던 여성 아지마는 여자 중등학교가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수도 카불의 유엔세계식량계획(WFP) 구호물자 배급소에 줄을 선 그는 이전까지 한 번도 실직한 적이 없었다고 CNN에 말하며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급여가 제 때 나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리-엘렌 맥그로티 WFP 아프간 지부장은 배급을 시작하며 "남편을 잃은 여성, 여성 생계책임자 등 이전에는 그들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던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고 이 매체에 말했다.

시마 바하우스 유엔여성기구 사무총장은 이달 9일 성명에서 "여성 및 소녀에 대한 권리 침해 가속화는 아프간에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여성 고용 제한은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는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즉각적으로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 방송 톨로뉴스의 여성 진행자가 마스크를 쓴 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아프간 집권세력인 탈레반은 여성 진행자가 얼굴을 가리고 방송해야 한다고 지난주 통보했다.  ⓒ톨로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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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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