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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특급 보호식물 광릉요강꽃 자생지가 ‘반들반들’ 마당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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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경기 가평 명지산 자생지에 야생화 사진가 몰려, 1급 보호종 밟고 꺾고…

다져진 토양 건조, 침식 피해 우려…일부 건조 스트레스 현상도

발견 족족 펜스 칠 수도 없고 관리 난감…“시민참여로 보전 계도해야”


한겨레

국내 자생 난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희귀한 광릉요강꽃은 많은 야생화 사진가들에게 평생 한번 만나고 싶은 꿈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종종 탐욕으로 이어져 자생지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15일 명지산 일대 계곡의 자생지 모습이다. 이상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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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통나무를 치워버렸네….”

20일 경기도 가평군 명지산 부근의 광릉요강꽃 자생지를 찾은 이상영 한국자연보전학회 부회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너덜지대 바위와 고목 통나무 사이에 꽃을 피운 이 희귀 난 자생지에서 촬영에 방해된다며 굳이 통나무를 제거하겠다던 사진가 2명을 만류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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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촬영 지점의 훼손 전 모습. 바닥에 돌과 낙엽 등이 쌓여 있다. 이상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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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해 크고 작은 돌과 낙엽 등을 말끔히 제거한 상태. 이상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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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시작된 광릉요강꽃의 개화기는 거의 끝나 야생화 동호인의 발걸음은 멈췄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물 채취꾼만 다니던 숲 속 소로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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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기 전 계곡의 광릉요강꽃 자생지 모습. 통나무와 돌, 일반 식물, 낙엽 등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상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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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같은 지점의 광릉요강꽃 자생지. 사진 찍기 좋도록 주변을 정리했고 여러 사람이 밟은 흔적이 역력하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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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사진가들이 ‘평생 한 번 만나는 게 꿈’이라는 광릉요강꽃의 자생지 정보가 알음알음 전파되면서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식물이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위험’ 등급에 올린 국제적 보호종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사진가들이 통나무만 치운 건 아니었다. 삼각대를 설치하느라 바닥에 깔렸던 돌도 모두 걷어냈다. 시야에 걸리는 나무는 대부분 잘려나갔다.

마치 새의 번식을 촬영하려고 둥지를 가린 나뭇가지를 쳐내는 일부 새 사진가와 비슷한 행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식물의 자생지가 아니라 화초를 기르려고 닦고 쓸어 잘 관리한 앞마당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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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 일대 광릉요강꽃 계곡 자생지에서 사진가들이 촬영에 방해된다며 나무를 잘라낸 모습.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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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바닥의 통나무는 발에 밟혀 토양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며 “반들반들해진 토양은 여름철 비가 오면 물길이 돼 토양침식과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바닥이 다져진 곳의 광릉요강꽃 잎은 끄트머리가 오그라드는 등 이미 건조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명지산 일대의 또 다른 자생지는 급경사에 입자가 가는 점토가 깔려 있어 사진가들의 답압에 특히 취약해 보였다. 새로 난 흙길에서 먼지가 풀썩였고 광릉요강꽃의 주름치마 모양 잎에는 마치 비포장도로 가로수처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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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산 일대 급경사 자생지의 광릉요강꽃 잎사귀 위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사진가들이 드나들면서 토양이 침식돼 일어난 일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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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하느라 사람들이 밟은 광릉요강꽃 아래 지점에는 널찍한 공터가 생겼다. 이 박사가 공터 끄트머리에서 줄기만 남기고 꺾인 광릉요강꽃 한 개체를 발견했다. 사진가의 발에 밟힌 것으로 보였다.

자세히 보니 꽃대가 무리 지어 피어난 군락에서도 사진 구도에서 ‘불필요한’ 꽃대를 잘라낸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어떤 꽃은 무슨 이유에선가 주머니 모양의 꽃잎을 모두 제거해 내부의 꽃술이 드러나기도 했다. 야생생물 보호법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을 포획·채취·훼손하거나 고사시킨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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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요강꽃 군락 앞에 사진가들이 드나들며 삼각대를 세우고 장시간 촬영하면서 바닥이 반질반질하게 다져졌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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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일부 사진가들은 최고 등급의 멸종위기종이란 인식이 없고 그저 사진의 일회용 소품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며 “광릉요강꽃의 보존과 관리를 책임지는 당국의 무관심과 직무유기도 이런 일을 빚었다”고 말했다.

광릉요강꽃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난초과 희귀식물이다. 처음 발견된 광릉 등 경기도를 비롯해 강원, 충북, 전북, 전남 등에 손꼽을 정도의 자생지가 있지만 개체수가 적은 데다 국내 난초과 식물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꽃 때문에 불법 채취가 성행해 자생지에 남은 것은 500개가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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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도에 어울리지 않은 광릉요강꽃 꽃대를 사진가들이 제거한 모습. 엄한 처벌을 받는 범법 행위이지만 밟히고 꺾인 광릉요강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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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선가 주머니 모양의 꽃잎을 떼어내 안쪽 꽃술이 드러난 광릉요강꽃. 자연스럽게 떨어진 모습이 아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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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최근 야생화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취미가 인기를 끌면서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한 희귀식물을 앞다퉈 촬영해 자랑하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한 야생화 카페 운영자는 12일 올린 글에서 “50여 명이 산행에서 명지산 순수 자연산 광릉요강꽃을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진사(사진가)들이 다녀간 흔적이 뚜렷하다”며 “숲 속 요정을 만나러 갈까 말까, 나의 발걸음 하나라도 줄여야 하나 고민”이라고 적기도 했다.

또 다른 야생화 블로그 운영자는 지난해 올린 글에서 명지산 일대의 자생지를 소개하며 “작년에는 없던 길이 번듯하게 나 있다”며 “한 해 만에 너무도 변했다. 내년에는 어떻게 변할지 무섭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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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 야생화 블로그에서 광릉요강꽃 자생지 정보가 알음알음으로 전파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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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광릉요강꽃은 주로 땅속줄기를 통한 무성생식으로 세력을 넓혀가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고 접근하고 주변을 정리하면 있는 개체도 살기 힘들어진다”며 “안타깝지만 자생지가 발견되는 대로 철책을 쳐 접근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등에서 하는 것처럼 심은 광릉요강꽃 철제 울타리에 촬영을 위한 구멍을 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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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동호인이 비밀리에 찾아간다 해도 이 ‘특급정보’는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가 원치 않더라도 자생지를 황폐화한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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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지가 훼손되기 전 지난 2일 명지산 일대 계곡 자생지의 광릉요강꽃 모습. 이상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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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요강꽃의 인공증식을 연구하는 손성원 국립수목원 박사는 “지난해부터 울타리를 치지 않은 명지산 주변의 광릉요강꽃 자생지를 촬영하기 위해 관광버스가 오는 등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며 “새로운 자생지마다 펜스를 치기도 쉽지 않아 결국 대량 증식과 자생지 복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종자 발아 성공 이후 증식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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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국립수목원의 광릉요강꽃 복원시험장 모습. 자생지에도 이런 철책이 대개 설치돼 있다. 무성증식을 통해 개체수가 300∼400포기로 늘어 일부를 국립수목원 전시보전원에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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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애호가들의 인기를 고려해 시민참여 방식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있다. 이상영 박사는 “광릉요강꽃의 개화기 2주일 동안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이 희귀식물에 대한 홍보와 안내를 통해 보호를 유도하는 방안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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