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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올땐 삼성, 갈땐 현대차 만난 바이든…대뜸 '노조' 꺼낸 이유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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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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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20~22일) 기간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미국 노조와의 협력을 당부했다. 방한 후 첫 일정이었던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나 다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우리의 가장 숙련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미국 노조원들과 파트너십을 일구기 바란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공동연설에서도 "미국 노조 조합원들과 협력함으로써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가는 노조 리스크를 덜어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게 안 되면 최소한 언급하지 않는 게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를 투자유치 전선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도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약속한 기업 면전에서 그랬다. 글로벌 통상과 기술 동맹을 꾀하려는 방한 목적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칫하면 투자자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는 행보를 왜 마다하지 않았을까. 여기엔 복합적인 미국 내 사정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조를 끌어안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며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내 정치적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해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노조 친화적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지난해 미국 내 전기자동차 업계 관계자를 초청하면서 테슬라를 제외하기도 했다. 노조가 없어서다. 이런 기조가 해외 순방을 통한 경제외교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바이든 정부는 법으로 노조 우대 정책을 집행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낸 미국 재건법안이 그것이다. 노조가 있는 전기차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현대차에 "큰 혜택"이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외국계 완성차 업체와 테슬라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때문에 11월 하원에서 통과된 뒤 상원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바이든 정부는 늦어도 7월까지 타결을 목표로 수정 협상 중이다.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다.

그렇다고 '집토끼 끌어안기'만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복심을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명예교수는 "미국 노조와 한국 노조의 차이, 제도적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투쟁성이 회자하곤 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옛날과 다르다. 지금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파트너십이 형성돼 있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노조가 상당히 협력적"이라고 진단했다. 인력 배치전환이나 해외 공장 설립 등을 파업으로 저지하려 드는 한국 노조와 다르다는 얘기다. 미국에는 또 랜드럼 그리핀법이라는 노조의 투명성을 강제하는 법 등 노조의 책임을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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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대선 당시 전미자동차노조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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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뜻과 달리 기업은 여전히 노조를 경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내 외국계 자동차 회사는 UAW 세력권 밖인 선 벨트(Sun Belt, 일조량이 많은 미국 남부)에 집중돼 있다.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일할 권리(right to work)'라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벤츠·BMW·기아·혼다 등은 이 지역에서 무노조 경영 중이다. 텍사스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도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에선 2014년 근로자 투표로 노조 설립이 부결됐다. 따라서 바이든의 노조와 관련된 당부는 권고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편으론 노조를 활용한 중산층 늘리기와 사회안전망 확충 의도가 바이든 행정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선 노조조직률이 떨어지면 중산층 두께가 얇아지고, 조직률이 오르면 중산층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노동절(9월 6일)을 맞아 노조를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미국은 중산층과 중산층을 만든 노조가 건설했다"고 말했다. "우리 노조는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순방과 관련 백악관이 "삼성 방문을 통해 동맹이 미국 내 제조업 투자와 고보수의 일자리 창출, 우리의 공급망 강화 등 미국 중산층을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브리핑한 것도 이런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미국, 특히 민주당 정부는 단체협약을 통한 사회복지망 구축과 중산층 형성에 노조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국가가 예산을 퍼붓기보다 미국 노조가 가진 비즈니스 유니온 체계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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