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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칸영화제에서 '검은 연막 수류탄'이 터진 이유는 [2022 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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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 여성 난입에 검은 연막 수류탄까지···.'

지금,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위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거센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칸영화제 본 행사장 팔레 데 페스티벌 건물의 레드 카펫 계단에 이목이 쏠리다 보니 이 장소에서 개인과 단체들이 각자의 주장을 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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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영화제에서 검은 연기 수류탄을 터뜨리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여성들. [AF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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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카펫의 검은 연기


행사 7일째를 맞은 22일(현지시간) 칸영화제에서 가장 이목을 끈 퍼포먼스는 22일 열린 '검은 수류탄' 시위였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12인의 여성들이 레드 카펫을 오르면서 한 손에 129명 여성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또 한 손에는 검은 연기가 나는 연막 수류탄을 들고 터뜨린 것. 폭발력은 전혀 없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평화로운 레드 카펫 위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테러 현장을 방불케 했다.

여성들은 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을까.

이 시위는 이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젊은 거장 알리 압바시 감독의 '홀리 스파이더' 상영회 직전에 벌어졌다.

한 여성 기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성노동자들이 연쇄 살해 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종이에 적은 건 프랑스에서 성범죄로 희생 당한 129명의 여성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이날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성범죄로 살해 당한 여성들을 기리는 영화를 상영하기에 자국 내에서 살해당한 피해 여성을 기억해야 한다는 항의 시위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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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본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벌 현장의 모습.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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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강간하지마"


이보다 이틀 전인 20일엔 '팬티'만 입은 여성이 칸 레드 카펫에 난입해 '반(反) 러시아'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을 성폭행하는 경악할 일이 빈번히 자행되는 상황에서 페미니스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여성이 반나체로 갑자기 레드 카펫에 뛰어든 것이다. 마침 거장 조지 밀러의 영화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이 상영을 앞두고 틸다 스윈튼 등 배우들이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을 때였다.

나체 여성은 노란색과 파란색 물감으로 온몸을 색칠해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켰고, 특히 성범죄를 규탄하는 시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허벅지와 팬티 주변에는 피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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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 나체로 난입해 러시아군 성범죄를 규탄 중인 여성.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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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기자들을 향해 "우리를 강간하지 마(Stop raping us)"라고 거의 절규하듯이 부르짖다 보안요원들에 의해 다시 옷이 입혀지고 행사장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외신에 따르면 이 여성은 프랑스 페미니즘 단체인 'SCUM' 소속으로 천인공노할 성범죄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시위 현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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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UM은 퍼포먼스 직후 즉시 인스타그램 공식계정에 영상과 사진을 올리면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당한 성고문을 규탄하기 위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그녀는 러시아 군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시위의 미학을 사용했다"며 "러시아와 유럽 남성들은 우르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어 "어떤 남자도 우리 여성의 몸을 지배하고 상업화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고 일종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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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요원에 의해 제지 당하는 나체 시위 여성.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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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反러시아', 올해 칸의 키워드


지구 한복판에서 부당한 전쟁이 자행되는 시점에서 영화제는 '반러시아' 분위기가 지난 3월부터 이미 감지되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칸영화제 개막식에서 영상으로 연설까지 했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위대한 독재자' 대사를 인용하면서 영화계도 '독재자'와 싸워달라고 촉구한 젤렌스키는 "영화는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목소리를 낼 것인가"라고 물었다. 객석에선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다.

문제는 칸영화제가 러시아를 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영화를 경쟁 부문에 올리자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는 점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칸영화제 최고상인 경쟁 부문에 오른 상태다. 칸영화제는 공교롭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이미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상황이었다.

칸영화제 조직위 측은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끝나지 않는 한 러시아 공식 대표단이나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사람의 참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3월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경쟁 부문에 러시아 영화가 오르면서 다소 언행불일치 상황을 맞이하게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감독이 전쟁의 책임을 질 수는 없고 세레브렌니코프 감독도 "이 전쟁은 재앙"이라며 전쟁을 강력히 반대했기에 칸영화제의 선택이 비윤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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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 초청된 러시아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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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한 불똥 맞은 톰 크루즈


칸영화제 최고 볼거리는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 위로 전투기 8대가 에어쇼를 펼치는 18일 모습이었다.

톰 크루즈는 신작 '탑건 : 매버릭'에서 30여년 만에 속편 주연을 맡았다. 전설적인 영화의 속편이라는 기대감에 국내외 안팎에서 이 영화를 향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톰 크루즈 등 출연배우들이 상영회를 앞두고 팔레 데 페스티벌 레드 카펫을 오르던 그 순간 전투기들은 공중에서 대열을 이루고 붉은 색, 파란 색, 흰 색 연기를 뿜으면서 지나갔다. 입이 떡 벌어지는 퍼포먼스에 주변 관중들은 엄청난 환호로 에어쇼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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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레드 카펫 위로 날아오르는 전투기들. [AF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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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쟁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시 강간이 화두가 되는 상황에서 실제 전투기를 출격시키며 전쟁을 홍보에 이용하는 게 과연 온당하느냐는 비판도 일었다.

영화의 기념비적인 위치, 이제 환갑이 된 톰 크루즈에 대한 예우로 에어쇼는 무리수가 아니지만 반전 분위기를 감안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 행사 다음날인 지난 19일 열린 '탑건 : 매버릭' 영국 행사에서 영화 마케팅사는 진짜 전투기를 톰 크루즈 뒤에 놓일 '소품'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칸(프랑스)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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