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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우리말 산책] 잘못 알려진 ‘화냥’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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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크라이나 전쟁이 좀처럼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류는 참 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전쟁은 사람들의 말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동안 ‘키예프’로 써오던 “드니프로강 중류의 고대 도시” 이름이 ‘키이우’로 바뀌듯이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수도 이름을 ‘키이우’로 바꾸고, 사람들의 귀에 익은 ‘키예프’는 “ ‘키이우’의 러시아어 이름”으로 수정했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 중에도 전쟁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사면초가(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 배수진(등 뒤에 물을 두고 쓰는 진법), 와신상담(불편한 섶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본다), 궁여지책(궁한 나머지 생각다 못해 짜낸 계책) 등이 전쟁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흔히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돼 나온 맨 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는 ‘효시’도 전쟁에서 유래한 말이다. 효시(嚆矢)는 글자 그대로 ‘우는 화살’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전투를 시작할 때 ‘우는 화살’을 먼저 쏘아올렸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효시’다.

전쟁과 관련한 말이 많다 보니 잘못 알려진 것도 더러 있다. ‘화냥년’도 그중 하나다. 항간에는 이 말이 “고려 말 몽골전쟁(혹은 조선 중엽의 병자호란) 때 중국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즉 ‘환향(還鄕)한 여자’들을 도덕적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해 지칭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자자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올라 있는 여러 자료에 따르면 ‘화냥’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쓰인 ‘화랑(花娘)’에서 유래한 말이다. ‘화랑’은 본래 ‘가무에 능한 여자’, 즉 기생을 뜻했다. ‘첩’의 의미로도 쓰였다. <표준국어대사전> 역시 ‘화냥’의 어원을 ‘화랑’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화냥’ 같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이미 쓰임을 다한 말이기도 하다. 다만 이상한 속설이 떠돌아다니기에 한번 짚어봤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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