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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십 t 달하는 ‘공룡급 콤바인’, 논 망가뜨리고 수확량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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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가득 실으면 중량 60t 육박… 토양 짓눌러 공기-물 공급 악영향

수확 36% 줄고 농경지 20% ‘위험’

땅 젖었을 땐 기계 사용 자제하고 GPS 활용해 이동 경로 같게 해야

동아일보

콤바인과 트랙터 같은 농기계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스웨덴과 스위스 연구진은 대형 농기계가 토양 깊숙이까지 강하게 눌러서 작물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농기계의 대형화로 전 세계 20%에 달하는 농경지가 생산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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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나 밀을 수확하는 콤바인은 몸집이 비교적 큰 농기계로 분류된다. 대형 콤바인이 벼를 가득 수확하면 중량이 60t에 이른다. 약 2억 년 전 지구의 주인이던 대형 공룡과도 견줄 수준이다. 전 세계 농업인구 감소로 농업 자동화가 추진되면서 콤바인과 트랙터 등 농기계 대형화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농기계 대형화가 오히려 작물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역설적 상황을 유발할 것이란 경고가 최근 나왔다.

토마스 셸레르 스웨덴 농업과학대 토양 및 환경학부 교수와 다니 오르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환경시스템과학부 교수는 농기계의 과도한 무게로 작물 수확량이 최대 36%까지 줄고 전 세계 농경지의 20%가 매우 낮은 수확량을 기록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16일 공개했다.
○ 땅속 숨구멍을 막는 ‘무거운’ 농기계

연구팀은 지난 60년간 농기계의 발전으로 콤바인의 중량이 9배나 무거워졌다고 분석했다. 콤바인에 농작물을 가득 적재할 경우 1958년에는 총중량이 4t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약 36t이었다.

농기계의 사용도 크게 늘었다. 한국은 벼농사 기계화율이 2000년 87.2%에서 2020년 98.6%로 크게 늘었다. 농업인구 감소와 인건비 상승으로 자동화 기능이 대거 추가되면서 기계 중량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농업인구는 2000년 10억5000만 명에서 2019년 8억8400만 명으로 줄었다.

연구팀은 이런 농기계의 중량 증가가 토양 환경과 작물 수확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농지 토양 속에는 공기와 물이 순환하는 미세한 틈이 있다. 만약 토양이 압착돼 틈이 사라지면 식물의 성장이 저해되고 이는 곧 작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토양 속에서 밀려 나온 물이 주변 수로에 흘러 들어가 홍수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연구팀은 아직까지는 농기계 대형화가 농작물 수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파종 전에 땅을 갈아엎어서 토양이 단단하게 눌리는 문제를 해소한 덕분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최근 한계에 봉착했다. 훨씬 무거운 농기계들의 등장으로 더 깊은 땅속 20cm 아래의 토양까지 짓눌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팀은 “좀 더 깊은 토양이 단단하게 눌리면 농작물의 뿌리가 물과 영양소를 찾기 위해 내려가지 못하게 되고, 토양 속에 저산소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 농업생산력 상실 우려

연구팀은 전 세계 농경지의 20%가 이미 땅 밑 50cm까지 거대 농기계의 몸집에 눌려 생산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습기가 많고 상업 농업이 발전하면서 대형 기계를 주로 사용하는 유럽과 북미가 이 같은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됐다. 또 브라질 사바나 지역과 호주 남동부 지역의 토양이 중장비에 매우 취약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와 아프리카 가나대 연구팀은 지난해 7월 국제학술지 ‘농경과 경작연구’에 농기계 중량이 토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51개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두 나라 연구팀은 토양의 밀도, 압축되는 정도뿐 아니라 농기계의 바퀴 하중, 타이어 팽창 압력 등 바퀴와 관련된 자료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농기계가 무거워질수록 토양에 닿는 하중을 줄이고자 바퀴 크기를 점점 키워왔기 때문이다. 농기계 앞 차축의 하중은 1958년 1.5t에서 2020년 12.5t으로 8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 연구에서도 농기계가 토양을 땅 밑 30cm까지 강하게 다지면서 침투저항성(물이 땅속에 침투되는 특성)이 크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 크기 입자로 구성된 토양에서는 침투저항성이 99%, 훨씬 굵은 입자로 된 토양에서는 94%가 증가했다. 특히 뿌리를 40cm 이상 깊이 내려야 할 옥수수, 대두, 보리, 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수확량은 6∼34%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과 스위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농기계 개발 흐름을 서둘러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팀은 “특히 토양 환경이 취약한 지역의 소규모 농지에서는 소형 농기계를 사용해 애초에 대형 기계의 필요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의 토머스 웨이 연구원은 “땅이 젖었을 때 압축이 더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가급적 건조한 날씨에 농기계를 운용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같은 이동 경로로만 이동하게 해 농기계에 눌리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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