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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공직 후보자와 이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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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해충돌 양태는 갈수록 지능화
해결책은 공직에 가려는 이들의
윤리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공직 후보자들 행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니 딱하다

다산 정약용은 성균관 유생 시절이던 1789년에 대과 전시에서 갑과 2등으로 합격했다. 정조 임금이 시관인 채제공에게 내린 장원 뽑기의 기준대로라면 다산이 장원이었으나, 채제공은 그를 2등으로 올렸다. 임금이 시지를 가져다 보고서는 다산이 장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기록상 다산은 2등으로 남았다. 채제공에게 다산은 사돈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상피제에 따르면 본가, 외가, 처가의 4촌 이내 사람과는 같은 관서에 근무할 수 없었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의 사건에 대한 판관이나 시험에 대한 시관 노릇을 할 수도 없었지만, 채제공에게 상피제가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마저 떨치려 했다. 미국 연방대법관 톰 클라크는 1967년 아들인 램지 클라크가 법무장관이 되자 대법관직을 사임했다. 법령으로 강제된 일은 아니었지만 이해충돌의 외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명사회에서 이해충돌 상황의 회피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 요청사항이다.

경향신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이해충돌 상황이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은 많으나, 내 보기에 가장 정확한 정의는 “공직자든, 피용자든, 전문직업인이든 간에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사적·개인적 이익이 그의 공적 의무를 객관적으로 이행하는 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데 충분한 경우”라는 것이다. 이해충돌 문제가 가지는 어려움 중 하나는 그런 충돌이 실재하거나, 외관상 그렇게 보이거나, 잠재적이라는 세 가지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외관상 위험이나 잠재적 위험을 방지하려고 이를 모두 법령의 규율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또 자칫하면 지나친 권리침해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우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하되 그에 못지않게 이해충돌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야 하는 점을 실천 규범으로 삼게 된다. 이 이치를 가리켜 ‘온당치 못한 외관 피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해충돌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이렇다. 즉 ‘관계된 당사자(공직에서라면 국민)가 내 상황을 보고 내 행위나 판단을 신뢰해줄 것인가?’이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은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손해를 볼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에도 공직에 대한 신뢰 저하라는 폐해를 낳는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에 관련된 법령은 물론 여럿 있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의 재산신고와 퇴직 후 취업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부패행위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관한 법률은 청탁을,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은 이해충돌을 주안점으로 삼아 규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령으로 규율되지 않는 상황은 얼마든지 생겨난다. 또 공직 후보자는 당장 공직자가 아니니 이런 법률들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공직자가 아니었던 시절의 행적은 공직 후보자가 공직자가 되었을 때 적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따라서 결격자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리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인 정호영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자녀들의 의대 편입 상황을 보면 정 후보자가 동료 교수에게 입학에 관계된 청탁을 하였다고 바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그가 진료처장이나 병원장 지위에 있었으므로 그랬을 수도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을 뿐이다. 딸이 의대 재학 중에 수강한 과목에 대하여 정 후보자가 시험 출제와 성적 부여에 관한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학교의 수업관리지침을 어기고 이를 학교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행위 역시 딱히 법령에 위반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을 가슴 깊이 느낀다”고 발언하고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이 된 자녀 본인들의 선택을 아버지로서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진실 여하를 불문하고, 그의 이런 인식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의 모순됨을 몰랐을까. 더 큰 문제는, 장관쯤 되는 고위직이라면 그 자리에 대한 윤리적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면 이해충돌 문제에서는 면책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해충돌의 양태는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화된다. 이해충돌의 외관이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이에 대한 주의 경고가 필요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해결책 중 하나는 공직에 가려는 이들의 윤리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대치가 높아졌는데도 공직 후보자들의 행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딱하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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