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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에스퍼 “트럼프, 툭하면 미군 철수 얘기… 또 당선땐 한국 방위력 약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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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석이 만난 사람]

트럼프 ‘주한 미군 철수’ 비화 폭로, 전 美 국방장관 에스퍼

“미중 하나 선택 불가능...中 같은 독재 국가와 ‘파트너’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강한 힘 있어야 협상에 유리…‘북 비핵화’ 하려면 强軍 육성”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58)가 지난 10일(현지 시각) 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는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2018년 트럼프가 주한 미군 가족 4만여 명에 대해 대피령을 내리려 했다고 폭로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식 배치가 계속 미뤄지자 그가 한국 국방장관에게 “사드의 한반도 철수를 고려하겠다”고 통보한 사실도 밝혔다. 700여 쪽 분량의 회고록에 ‘한국’과 ‘북한’이라는 단어가 130여 차례나 등장한다.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 출간 직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지난 17~21일 화상 및 서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 대해 “공동성명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중국의 나쁜 행동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려워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악의적인 계획과 활동에 맞서 한미가 한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이 국제 무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서울을 좋아하고, 서울에 친구도 많다”며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의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의 얼굴은 굳게 변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한국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당선은) 한국에 대한 방위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韓美, 서로 ‘공평하다’고 느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주한 미군 ‘완전 철수’를 언급했나?

“그가 실제 ‘명령(orders)’을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회의 석상에서) 완전 철수 혹은 일부 철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미군의 해외 주둔 문제가 회의 주제가 됐을 때마다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철수 대상은 한국일 때도 있었고, 아프리카나 독일일 때도 있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미군을 빼고 싶어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주한 미군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임기 초반 때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주한 미군 완전 철수로 트럼프는 무엇을 얻으려 했나?

“트럼프는 한미 관계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국을 위해 2만명이 넘는 미군을 배치해 안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한국이) 자기 몫을 내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우리 군을 서둘러 빼야 한다”고 했다. 나는 ‘주한 미군 철수’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경제 대국인 한국이 안보를 위해 경제적으로 좀 더 많이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가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하려면 양국이 서로 공평하다고 느껴야 한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그가 출마하면 공화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본다. 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가 당선되면) 특히 주한 미군 주둔에 훨씬 공격적인 접근법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의 재배치를 지시할 것이라고 본다. 이는 한반도의 방어 능력을 악화시킬 것이다. 매우 주요한 안보 우려 사항이다.”

中에서 이탈 아닌, 의존도 줄이는 것

-회고록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이 중국에 경도됐다며,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첫째, ‘안보’ 문제 때문이다. 성주 사드 기지 사태를 보라. 사드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방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육군장관, 국방장관을 지내는 동안 정상 가동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 끌려가면서 (한미) 장병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런 미·중 대결과 긴장 속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치’ 문제도 있다. 중국 같은 독재국가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민주국가들이 독재국가와 맞서려면 한미는 군사,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정보 등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과 척질 경우 경제적 피해가 클 것’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에스퍼 전 장관은 쓴웃음을 지은 뒤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중국이 미국의 공급망에 주는 영향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 같은 주요 도시와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봉쇄가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에서 이탈하자는 말이 아니다. 중국이 주요 자원, 공급망 의존도 등 경제적 지렛대를 이용해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 세력은 중국이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1990년대부터 베이징과 평양 간 관계를 연구해왔다. 우리는 중국이 북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왔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늦추거나 중단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

“한국과 민주주의 국가 힘 합쳐야”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늑장 제재’로 비판받았다.

“한국이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됐다는 것은 그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빛나는 민주주의와 최상의 군대,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은 자신을 ‘세계 리더’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선진국과 (대러 제재 등에서) 보조를 맞추고, 세계 무대에 좀 더 나서서 활동해야 한다. 우리는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같은 독재주의 국가가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뭉치지 않으면 우리는 철저히 분열되고, 그들에게 두들겨 맞을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안보 전략 추진에서 한국의 중요성은?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안보와 전략의 중심축이다. 북한 위협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이라는 21세기 최고의 도전에 맞서는 데 한국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한·미·일 3국이 안보 문제를 긴밀하게 조율하고 논의하는 것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조선일보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이 지난 10일(현지 시각) 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 /아마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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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는 한국의 안보에 부합

-한국은 쿼드(Quad)에 가입해야 하는가?

“당연히 쿼드의 일원이 돼야 한다. 한국 정부가 미·중 간 ‘균형 잡기(balancing)’를 추구하느라 쿼드에 가입하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쿼드를 통해 인도·태평양 내 민주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게 연계할 경우 한국에 큰 안보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기 미국 정부에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연일 미사일과 핵으로 위협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기로 한 결정이 한반도의 긴장을 몇 년간 낮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방장관을 지내며 김정은이 비핵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는데.

“적극 찬성한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과 실전 배치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볼 때 탐지 기능이 특히 중요하다. 한미는 서로를 지키는 것을 확실히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양국 국민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주요 동맹국과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상호 운용성을 향상시켜 이해를 증진하고, 팀워크와 사기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과 한국군이 수십 년간 해온 훈련을 보라. 우리는 어떻게 한 팀이 될 수 있는지 훈련을 통해 알고 있다. 3국 연합 훈련은 안보 향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평양과 베이징에 우리의 결의를 보여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그는 두 손을 올리면서 “Katchi Kapshida(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한미 군사동맹 구호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한국말로 외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만찬에서 건배하면서 영어로 ‘We Go Together’라고 했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北 비핵화’

-윤석열·바이든 대통령 공동성명은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협의체 활성화, 한미 군사훈련 확대 합의, 미국의 한국 억지력 확대 약속 언급 등은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핵심 사항이다. 대북 억지 등 역내 이슈에서 한미가 더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란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공산국가 중국에서 세계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썼다.

“오해가 있다면 용어를 명확하게 하는 게 맞는다. 북한의 핵을 폐기하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목표다. 미국은 한국과 동맹국에 핵우산 등 확장 억지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비핵화’가 한미가 원하는 방향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 폐기를 위해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나?

“강한 힘을 보유했을 때가 (협상하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북한과 직접 대화하기 전 한국군 역량을 더 키우고, 한·미·일 간 전략적 협력을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 ‘힘의 위치’에서 대화할 때 레버리지(지렛대)를 극대화하고, 안건을 관철할 확률도 높아진다.”

☞마크 에스퍼

196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조지워싱턴대 공공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병 장교로 걸프전에 참전하는 등 20여 년 복무했다. 2007년 전역 후 미 방산업체 레이시언 부사장을 지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육군장관, 국방장관을 지냈다. 각종 정책을 놓고 트럼프와 갈등을 빚다 대선 직후인 2020년 말 경질됐다.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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