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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최유식의 온차이나] ’리커창 대망론’이 쏟아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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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 시진핑 연임 포기설과 건강이상설, 리커창 승계설 등 보도했지만 근거 약해

경제 추락, 외교 고립 등 잇단 실정에 대한 당내 반대여론 표출인 듯

지난 한주 베이징 정가를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어요. ‘시진핑 주석이 뇌동맥류로 작년 말 입원했다’ ‘시 주석이 20차 당 대회에서 연임하지 않고 리커창 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5월2일 장쩌민 전 총서기 등 당 원로들 주도로 열린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시 주석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는 등입니다.

일부는 홍콩·대만 매체와 미국 등 서방 매체에도 소개되기도 했죠. 하지만 근거는 미약해 보입니다.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미국 내 반중 인사들이 ‘본국에서 전해 들었다’는 식으로 올린 글을 기반으로 한 보도였어요. 일부는 조작의 흔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전례 없는 ‘은퇴 원로 함구령’

공교롭게도 이런 소문이 쏟아질 즈음, 중국 내에서도 평소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일이 일어났어요. 그 중 하나가 우리의 대통령실에 해당하는 당 중앙 판공청에서 공개한 ‘새로운 시대 은퇴 당 간부 건설 공작에 관한 의견’이라는 문건입니다.

이 문건에는 “은퇴한 당 원로들이 당 중앙의 큰 정책 방향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전파해서는 안 되며, 불법 사회조직 활동에도 참여하지 마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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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0일 당 중앙 재경공작회의에서 연설 중인 시진핑 주석. 잇단 실정으로 중국 내 연임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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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지도부 출신 은퇴 원로들은 각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현직 최고지도부에 보고되는 문건을 공유하고, 정치국 확대회의 등에도 참석하죠. 설 명절에는 현직 최고지도부가 당 원로들에게 인사를 다니기도 합니다.

이런 은퇴 원로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는 식의 경고 문건이 나온 건 전례가 없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정말 베이징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힘을 얻습니다. 주룽지 전 총리 등 상당수 원로가 시 주석 연임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해요.

◇인민일보 지면 속 리커창

베이징에서 최근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약세 총리’로 분류되는 리커창 총리가 중국 관영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리커창 총리는 4월25일 국무원(정부) 5차 반부패공작회의에서 연설했는데, 9000자에 이르는 장문의 연설이 인민일보 5월14일 자 2면 전체에 실렸어요. 관영 신화통신도 이날 새벽에 리 총리의 연설을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이틀 뒤인 5월16일에는 리커창 총리가 샤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통화를 했다는 소식이 인민일보 1면에 게재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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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총리가 파키스탄 총리와 통화했다는 소식을 전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5월17일 자 1면. 인민일보 1면에 단골로 나오는 시진핑 주석은 이날 등장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1면은 권력층 실세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진핑 주석 기사는 거의 매일 나오는 반면, 리 총리 소식은 거의 볼 수가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리커창 총리가 자주 등장하니 외부 관측통들의 눈에 띈 겁니다. 하필 그 며칠 사이 시 주석 기사가 1면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보니 시 주석이 중병에 걸렸다, 은퇴 원로들이 나서서 시 주석을 밀어내고 연임을 못 하게 했다는 등의 소문이 속출한 겁니다.

시 주석은 그 며칠 뒤 다시 인민일보 1면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5월15일에 나온 당 기관지 ‘구시(求是)’에도 작년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했던 연설이 실렸습니다.

◇잇단 실정에 대한 당내 불만 반영

시 주석 연임 포기설 등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일을 해프닝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시 주석의 실정에 대한 당과 여론의 불만이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줍니다.

시 주석은 최근 들어 대내외적으로 실정을 거듭하고 있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 편에 섰다가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을 불렀습니다. 안으로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다가 경제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었죠. 공동부유라는 극좌적인 경제정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민영기업들을 숨도 못 쉬게 하였습니다. 임기 내내 미국과 고집스럽게 맞서는 바람에 화웨이 등 중국 첨단 기업들이 미국 제재로 큰 타격을 입었죠.

조선일보

작년 12월10일 당 중앙 재경공작회의에서 연설 중인 시진핑 주석. 잇단 실정으로 중국 내 연임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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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리커창 총리는 지방 정부 재정 책임자들과 잇달아 회의를 열고, 민생 현장을 다니면서 안정적인 성장과 취업난 해소를 강조해 왔습니다. 고집스럽게 제로 코로나를 밀어붙이는 시 주석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죠.

하지만 국가 주석과 총리의 역할이 달라서 그런 것이지, 리 총리가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시 주석의 권력이 흔들리는 조짐도 보이지 않아요.

◇반대세력 언론 플레이 가능성

권력 교체기에는 과거에도 해외 언론 폭로전이 벌어졌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시 주석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직전인 2012년에도 시 주석 일가와 원자바오 총리 일가의 재산 규모 등이 뉴욕타임스 등에 보도됐죠.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낙마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세력에서 흘렸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최근 소문도 공산당 내 시 주석 반대세력의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여요. 시 주석이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는 소문은 중국 당국이 확인한 건 아니지만, 그냥 헛소문이라고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시 주석 집안은 혈관 쪽 질환으로 숨진 사례가 여러 건 있다고 합니다. 시 주석의 이복형인 시정닝 전 하이난성 정법위 서기도 1998년 57세의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했어요.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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