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경제'는 왜 '안보'가 됐나···팬데믹·전쟁 쇼크, 국제질서 재편 '생존 게임'[뉴스분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22.5.21.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가 안보, 안보가 경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꺼낸 핵심 의제는 ‘경제안보’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도 경제안보 시대에 맞춰 발전하고 진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경제 안보 기술 동맹 구축’과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 공식화’를 핵심 성과로 꼽았다.

‘경제안보’가 주요국의 핵심 의제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국제경제 질서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촘촘히 연결된 공급망(GVC·Global Value Chain)을 통해 ‘저비용·고효율’의 분업 체제를 구축했던 세계화는 이제 무력해지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경제의 성장은 자유무역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 앞다퉈 관세 장벽을 낮췄고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거래 비용은 줄어들었다. 기업은 비용 최소화 전략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팬데믹과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큰 충격을 가했다. 물류가 멈추자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공급이 막히면서 각국의 물가가 크게 뛰었다. 공급망이 멈춰선 사이 미·중 갈등은 첨예해졌고 각국은 이해 관계에 따라 문을 걸어잠갔다. 미·중은 동맹국과 함께 본격적인 블록화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따라 에너지, 식량과 같은 먹고 사는데 필수적인 원자재는 물론 산업 필수재에 해당하는 반도체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국가적 ‘안보’의 문제가 됐다. 감염병과 지정학적 위기를 경험하면서 각국은 지나친 상호의존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과거 냉전기는 안보영역이, 탈 냉전기는 경제영역의 우위가 존재했던 시기라면 이제는 안보와 경제가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형태의 구조적 결합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거창한 국제경제 질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제안보’는 민생문제와 직결돼있다. 공급망 교란은 요소수 사태와 반도체 수급난을 불렀고 장바구니 물가마저 치솟게 만들었다. 대러제재가 강화되면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고, 곡물 가격도 오르면서 밥상 물가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중단하고, 인도가 밀 수출을 멈추겠다고 선언하는 등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원·부자재 조달이 흔들리면 당장 서민들의 삶이 직격탄을 맞는다. 올 4월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4.8% 뛰었다.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물가대응을 위해 오는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대로 크게 올려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빼더라도 이미 미국과 중국은 경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기존 공급망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미국은 경제안보 핵심 품목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신뢰할만한 나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꾀했다. 지난 4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의 전략과 경제적 국가책략’보고서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동맹과 통상관계를 재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과도한 중국 의존성을 줄이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수십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세계화 체제는 이제 종식됐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패권주의로 가면서 전 세계가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진영으로 나뉘는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협의체인 IPEF 출범이 본격적으로 ‘지경학(Geo-economics) 시대’를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경학은 무역과 투자·금융통화 정책, 에너지·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 경제적 수단을 사용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뜻한다. IPEF는 단순한 경제협력체를 넘어선 ‘경제안보 플랫폼’으로 간주된다. 핵심 소재 및 산업(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디지털 경제, 무역원활화, 탈탄소·청정 에너지, 인프라, 노동자의 권리 등 6개 분야별로 참여국들간의 합의에 기반한 협의체로 추진된다. 중국이 주도한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대항마적 성격이 짙다. 경제동맹을 지향하는 만큼 한국이 IPEF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연구센터장은 “공급망 경쟁에 따른 통상·안보 환경의 변화가 자유무역 혜택을 축소하고 역내 무역 왜곡과 국내 산업경쟁력 저하를 야기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