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무역장벽 허무는 '방산 FTA'···K무기, 미국산 대우 받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미정상회담-국방상호조달협정 체결 추진]

美 국방조달시장 30배 나 큰데

韓, 내수 지키려 '외면' 했었지만

28개국 방산동맹에 외톨이 우려

성사땐 입찰심사 할증 페널티 없어

한화 장갑차·KAI 전투기 진출 탄력

중기 상생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약 500조 원 대 16조 원.’

30배 이상 차이 나는 2021년의 한미 국방조달 시장 규모의 현주소다. 대한민국은 한 해 50조 원 이상의 국방 예산을 편성할 정도로 세계적인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세계 1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이처럼 거대한 방위산업 시장이 대양 너머에 있는데 우리 정부는 국방 분야만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제외해 버렸다. 자칫 국내 영세 방위산업 기업들이 미국의 군산 복합체에 압도당해 내수 시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결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연구개발(R&D) 및 투자에 나섰던 선도 기업들마저도 영세 업체들에 발목 잡혀 미국 국방 시장의 무역 장벽을 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 같은 무역 장벽을 해소하려는 차원이다.

특히 해외 수출용 장갑차인 ‘레드백’ 등을 개발한 한화디펜스, 미국 록히드마틴과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골든이글’을 공동 개발한 경험이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미국 수출에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방산 업계에서 조성되고 있다.

글로벌공공조달연구센터 등에서 활약해온 김만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 책임교수는 “한미 간 국방 분야 FTA 체결이 이뤄지지 않아 국내 기업들이 미국 국방조달 시장에 참여하려면 ‘미국산우선구매법(BAA)’을 적용 받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50%의 할증 페널티를 받아야 했다”며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이 1달러짜리 제품이라도 BAA를 적용 받아 미국산 제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면 50센트의 할증이 부과돼 1달러 50센트의 가격으로 입찰해야 해 국방조달 입찰 심사 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한미 RDP가 맺어진다면 BAA 적용을 회피할 수 있어 미국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BAA는 미국이 과거 대공황에 대응해 국내 생산과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1933년 3월 3일 제정한 법률이다. 정부 조달 시 미국에서 채굴 혹은 생산된 원자재를 획득하거나 미국산 원자재를 ‘상당 부분’ 이상 사용한 가공품만을 ‘미국산’으로 간주하도록 하고 미국산으로 판정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계약 담당 공무원이 조달 입찰 가격 평가 시 할증 가격을 부여해 미국산 대비 가격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상당 부분’의 원자재 비율 기준으로는 현재 ‘55%’가 적용되고 있다. 이 기준선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올라간다. 올해 10월 25일부터는 60%, 2024년부터는 65%, 2029년부터는 75%로까지 상승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부품 비율을 적용 받지 못한 제품은 미국 국방조달 입찰 시 가격에 50%가 할증된 상태로 평가 받아 사실상 가격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방 분야에서 이 같은 BAA 무역 장벽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RDP 체결이다. RDP는 원래 미국과 동맹 간 군 장비 등의 표준화 및 상호 운용성을 증진하고 국방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되는 양해각서(MOU)였다. 해당 MOU에 타국의 계약자들이 불공정한 차별 없이 미국 내 기업과 동일한 경쟁 체제로 국방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골자로 담는 조항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국방 분야 FTA는커녕 RDP 체결도 주저하는 사이에 28개에 달하는 주요국들이 미국과 RDP를 맺었다. 여기에는 독일·영국·이스라엘·이탈리아·일본·프랑스·호주·캐나다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과의 RDP 체결을 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의 방산 네트워크에서 제외된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2016년 체결했는데 무기 수출입에 상대적으로 제약이 있는 자국 특성상 미국과의 공동 R&D를 강화하는 형태로 양국 간 국방조달 관련 협력을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를 구입하고도 정비나 수리 시 우리 마음대로 나사 하나 풀 수 없는 처지이지만 일본은 이미 미쓰비시중공업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자국 내에서 F-35를 생산할 정도로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가급적 RDP를 체결하는 게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2024년 미국 대선 이후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정부처럼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정부가 들어서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RDP 체결의 남은 기회도 한층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방산 분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및 인력, 자본력 차원에서 격차가 큰 만큼 RDP 체결 때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고 해외 수출 대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마련하는 보완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