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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해외선 ‘K타투’ 열풍… 국내선 ‘불법’ 꼬리표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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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벽’ 도전하는 K타투이스트

국내시장 규모 1조2000억원 달해

바늘 위생·잉크 안전성 우려 눈살

밝고 아름다운 K타투 전세계 각광

합법화 찬성 52%… 인식 변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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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한 벽돌 건물. 외벽에 간판 하나 붙어있지 않은 이곳의 1층 타투(문신) 아카데미에서 10여명의 젊은 수강생들이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사람 피부 감촉과 흡사한 실리콘 패드에 타투를 새겼다.

같은 건물 지하 1층은 타투숍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330㎡(100평) 가까운 공간 곳곳에 고풍스러운 소품과 만화 피규어가 무심하게 진열돼 있었다. 한쪽에서는 침대에 엎드린 한 고객이 팔 부위에 문신을 시술받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손으로 도안을 그리는 중이었다.

홍대 일대에는 현재 이 같은 타투숍이 300개가량 성업 중이다. 대다수 업체가 이곳처럼 간판을 따로 달지 않는다. 위치도 비공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대일 대화로 고객에게 신청받으면 위치를 귀띔하는 식이다.

법리를 따지면 이들 타투숍은 엄연히 ‘불법’이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타투를 시술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형과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의료법상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3월 말 이 같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타투업계는 헌재의 판결을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만 1조2000억원(추정치)에 달할 정도로 타투가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음에도, 법제도는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서 20대와 30대에서 각각 26.9%, 25.5%가 타투 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정섭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장은 본지와 만나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단속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과 마찬가지였던 일본마저도 2020년 최고재판소 결정을 통해 입장을 바꿔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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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은 “‘K타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타투 업계의 모든 유행이 한국에서 나오는 추세”라며 “패션을 공부하러 프랑스 파리에 유학 가듯, 한국으로 타투를 배우러 오는 외국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투박하고 거친 기존 문신에 비해 K타투는 얇은 선을 활용한 밝고 아름다운 느낌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자국에선 오히려 범죄자 취급받는다. 그는 “경찰 단속이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오히려 최근 들어 단속이 강화된 추세다. 엊그제(8일)에도 경찰이 신고를 받고 왔다 갔다”며 “범죄자처럼 숨어서 일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해외로 나가는 타투이스트들이 많다”고 말했다.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 합법화의 가장 큰 쟁점은 위생 문제다. 바늘로 색소를 피부에 찔러 넣는 행위인 만큼, 비의료인이 시술할 경우 감염 등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매번 발목을 잡았다. 대한의사협회 또한 “의료법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의 문신 시술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타투를 받다가 누가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염증 등 가벼운 부작용 사례가 드물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바늘을 재사용하는 게 새 바늘을 쓰는 것보다 훨씬 귀찮고 번거롭다”며 “시술에 쓰이는 제품들도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마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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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투박한 기존 문신에 비해 얇은 선을 활용해 밝고 가벼운 느낌을 강조한 ‘K타투’.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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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시술 과정에 쓰이는 잉크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기도 한다. 의사이자 타투이스트인 조명신씨는 저서 ‘타투하는 의사’에서 “타투의 실질적 위험은 오히려 타투 시술의 여러 단계에서 선택하는 물질의 안정성이나 시술 범위에 있다”고 꼬집었다. 주로 영세 업체들이 타투 잉크를 제조하다 보니 최소한의 유해성 검증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환경부 조사 결과 국내 유통 중인 타투 잉크 중 상당수에서 중금속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다른 걸림돌은 편견이다. 타투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신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 한 뒤 댓글을 확인해 보면 100개 중 99개는 욕이다.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지 나이 먹으면 후회한다’는 내용이 많았다”며 웃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빠른 속도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합법화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비의료인의 타투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52%로 절반을 넘어섰다.

타투는 젊은이들의 ‘치기’나 겉멋으로만 치부돼왔지만 최근엔 50∼60대 고객도 종종 온다. 한 60대 노인은 ‘네버 기브업(Never give up)’이라는 문구와 함께 특정 날짜를 새겨 달라며 찾아왔다고 한다. 항암치료 중이던 그에게 담당 의사가 해당 날짜까지 버티면 완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타투로 각오를 다지려고 한 것이다. 신 회장은 “맹장 수술이나 제왕절개 등 수술로 남은 흉터를 가리기 위해 이른바 ‘커버업(cover up)’ 문신을 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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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문신사중앙회 주최로 문신사 법제화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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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안팎서 ‘시장 양성화’ 채비… 총 6개 법안 계류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타투를 시술하면 불법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어느 때보다 합법화 논의가 활발하다. 국회에 여야 3당이 각각 발의한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20일 현재 국회에는 타투 합법화와 관련된 법안 총 6건이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주민 의원의 ‘문신사법안’, 최종윤 의원의 ‘문신·반영구화장문신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 송재호 의원의 ‘신체예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률안’ 등이 발의됐다. 국민의힘 역시 엄태영 의원이 ‘반영구화장·문신사 법안’, 홍석준 의원이 ‘반영구화장사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황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도 ‘타투업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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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타투 스티커를 등에 붙인 채 타투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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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법안은 타투 시술을 별도의 ‘업’으로 분류하고,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자격을 갖추면 시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를테면 류 의원 발의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교육과정 이수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라 자격 취득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외국 면허 취득 등에 해당할 경우 면허를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와 마약류 중독자, 감염병 환자, 미성년자 등 결격 사유 또한 규정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8일 오후 공청회를 열고 6개 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연기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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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재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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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밖에서도 합법화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입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인권위는 “문신 시술의 전문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시술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피시술인의 개성 발현의 자유 등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시술 요건‧범위 및 관리‧감독 체계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타투업계 일각에서는 헌재의 기각 결정에도 불구하고 합법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며 고무적인 분위기다. 헌재는 3월 31일 문신 관련 단체들이 문신을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기각한 바 있다. 이석태·이영진·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문신 시술은 치료목적 행위가 아닌 점에서 무면허 의료행위와 구분된다”며 “오로지 안전성만을 강조해 의료인에게만 허용한다면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오히려 불법적이고 위험한 시술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비록 기각으로 끝났지만, 2017년 헌법소원 당시 반대 의견이 2명에 그쳤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고무적이라는 기대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문신 등 시술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의 제도적 공백을 계속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는 생각해 볼 일“이라며 “미국의 법제도 사례, 일본의 판례 및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문신 등 시술행위의 양성화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가 임박했다”고 제언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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