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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명인데, 칫솔은 2개…71년만에 참호 나온 160cm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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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의날 앞두고 유해발굴작전 한창

중앙일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 일대에서 6.25 전사자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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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17일. 38선 이북. 강원도 인제 가리봉 방어선을 두고 사흘째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한계리에서부터 밀고 내려오는 적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사활을 건 방어전. 국군은 여러 차례 교전을 거듭한다. 치열했던 가리산공방전(1951년 5월 15일~17일). 얼마나 살아남고…. 얼마나 쓰러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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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 일대에서 3포병여단 장병들이 6.25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흙을 파헤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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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 일대에서 3포병여단 장병들이 6.25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흙을 파헤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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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7일. 가리봉 남쪽에 위치한 한석산을 굽이도는 장승고개.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인제군청에서 20분 남짓 만에 도착했다. 고갯마루의 신록은 6월이 코앞이지만 아직 여리기만 하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자 3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지 여기저기서 100여명의 장병이 조를 이뤄 삽질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부터 한석산 일대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지원하는 3포병여단 장병들이다. 마침 이날은 능선 바로 아래 참호에서 교전하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1구를 수습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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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71년만에 발견된 6.25 전사자 유해. 이 분은 지난 1951년 5월 15~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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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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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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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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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위로 드러난 작은 두개골, 한뼘 남짓한 팔뚝뼈. 치아 마모 상태 등을 점검하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규상 감식관은 "160cm 안팎의 25세 이상의 청년으로 추정된다"며 "영양 상태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 사람과 달리 대부분 체구가 작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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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수습한 6.25 전사자가 지녔던 유품.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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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수습한 6.25 전사자가 지녔던 약병.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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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글자가 선명한 스테인리스 숟가락은 야속하리만치 멀쩡했다. 최근 보급받은 것이라 해도 속을 듯하다. 감식관은 작은 약병을 들어 보이며 진통제가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외에도 이빨이 부러진 작은 빗과 모가 다 닳은 칫솔이 두 개가 나왔다. '사람은 한명인데. 왜 칫솔이 두 개일까….' 감식관은 전투 당시에는 참호에 두 명이 있었을 것으로만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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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수습한 6.25 전사자가 지녔던 군용품. 판초우의와 탄띠 그리고 M1탄알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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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수습한 6.25 전사자가 착용했던 배지. '대한'이란 글자가 7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명하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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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전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갔을 이 봄날. 왜 이분은 비탈진 이곳에 남겨져야 했을까. 다 쏘지 못한 총알을 두고…. 옷깃에 달았던 녹슨 '대한' 배지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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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6.25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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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6.25 전사자의 척추뼈에서 흙을 긁어내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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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수습한 6.25 전사자의 유해를 해부도에 맞게 배열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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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수습한 6.25 전사자의 유해를 해부도에 맞게 배열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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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들이 수습한 6.25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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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 끝났지만 끝내 유해는 온전하게 발굴되지 않았다. 하체 부분이 없었다. 이날 현장 발굴팀장 임건홍 상사는 "완전한 모습의 유해가 수습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자연 부식도 있지만, 전사 당시 포탄에 의한 유실, 야생동물의 훼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군번줄도 나오지 않았다. 71년 만에 귀환 명령을 받은 무명용사는 이렇게 참호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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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이 수습한 6.25 전사자의 유해를 오동나무관에 넣기 전 한지로 싸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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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의 유해를 봉송할 오동나무 관.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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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사업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지난 2000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2007년에 정식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을 창설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유단에는 290여명의 전문 감식 장병이 근무하고 있다.

이날 발굴에 참여한 허제빈 상병(22)은 대학에서 역사교육과를 다니다가 "뜻깊은 군 생활이 될 것 같다"며 국유단에 지원했다. 지난 1년 동안 22구의 유해 수습에 참여했던 허 상병은 이날도 오동나무관을 정성스럽게 관포(태극기로 덮는 의식)하며 "발굴지를 다니다 보면 지형이 험난한 곳이 많은 데 전쟁의 공포속에서 무거운 군장을 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고인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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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허제빈 상병(왼쪽)과 김한빈 상병이 수습한 유해를 안치한 관을 태극기로 덮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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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김한빈 상병(왼쪽)과, 허제빈 상병이 수습한 유해를 안치한 관을 태극기로 덮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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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은 지난해까지 1만2930명(국군 1만1174명, 유엔군 29명, 적군 1727명) 발굴했고, 올해 5월 17일 현재까지 191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국유단 김진용 공보장교는 "전사자 대부분이 자녀를 보지 못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자녀가 있더라도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안 계신 경우가 많아 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비록 가족을 찾는 비율이 낮아도 유가족에게 찾았다는 사실을 알릴 때 가장 보람된다"며 "지금도 6.25 실종자 가족에 대한 DNA 시료 채취 홍보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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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포병여단 장병들이 수습한 6.25 전사자를 운구하기 전 현장에서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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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포병여단 장병들이 수습한 6.25 전사자를 운구하기 전 현장에서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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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작전은 국유단에서 우선 6.25 전사(戰史) 등을 연구하며 발굴지를 광범위하게 설정한 뒤 현지 지역을 탐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대략의 위치가 파악되면 관할 부대의 협조를 받아 기초 발굴을 시작한다. 대규모 인원이 흙을 파헤치다 탄피 같은 작은 단서라도 나오면 국유단 전문 감식 요원이 투입돼 정밀 발굴을 실시한다. 지난해에는 전국 41개 부대. 연인원 10만여 명이 투입돼 370구의 유해를 찾아냈다. 올해도 전국 38곳에서 발굴 작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발굴된 유해는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서 각각 1년에 두 번 합동 안장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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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과 3포병여단 장병들이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71년 전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한 병사를 수습해 귀환시키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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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산 현장에서 6주째 유해발굴작전을 지원하고 있는 3포병여단 천도대대 포대장 박태일 대위는 "처음에는 부대 주변에 이런 격전지가 있었는지 몰랐지만, 전투와 관련된 설명을 듣고 직접 발굴한 유해와 유품을 보니 뭉클함을 느꼈다"며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순국선열을 찾아 귀환시키는 사업은 지속되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국방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6.25참전 용사 중 미복귀 인원은 13만3192명이다.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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