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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위해 무기 살 돈도 깎았다”… 국방비 또다시 삭감된 이유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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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TA-50 훈련기들이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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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0억원. 윤석열정부가 코로나19 소상공인 피해 보상 등을 위해 추진하는 59조원 상당의 2022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을 위해 삭감된 방위사업청 소관 방위력개선비 삭감 규모다.

지난해 말 국회의 2022년도 예산심의 과정에서 6122억원이 줄어든 것까지 감안하면 몇 달 사이에 1조원이 넘는 무기도입예산이 사라진 셈이다.

군 당국은 공급망 차질로 부품 조달이 어려운 사업 등 연내 집행이 지연된 것들을 중심으로 감액해 대비태세에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국방정책이 예산 삭감이라는 점에서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삭감된 주요 전력증강 사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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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해군 MH-60R 해상작전헬기들이 초계활동을 하고 있다. 호주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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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원회에 따르면, 추경예산 확보를 위해 삭감된 방위력개선사업과 감액 규모는 각각 해상초계기Ⅱ(1359억원), 무기체계 운용성 향상 지원(777억원), 피아식별장비 성능개량(575억원), 해상작전헬기(526억원), 잠수함구조함Ⅱ(400억원) 등 23개 사업으로 삭감 폭도 상당하다.

한반도 일대를 감시할 이동형장거리레이더 사업은 108억원에서 71억7200만원이 삭감됐다. 지난해 예산안 편성 당시에는 올해 장비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지난 3월 제안서 평가 결과 유찰되면서 연내 계약 체결이 어려워졌다. 방위사업청은 삭감된 비용만큼 2026년에 증액해 조정할 방침이다.

공군 훈련기 소요 보충을 위한 TA-50 블록2 사업은 훈련체계 구축을 위한 선금 지급 차원에서 올해 129억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시뮬레이터실 준공이 늦어지면서 훈련체계 설치도 지연, 관련 비용 55억원이 줄어드는 등 총 203억원 삭감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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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공군 P-8A 해상초계기가 바다 위를 비행하며 정찰활동을 하고 있다. 호주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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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탐지에 투입될 P-8A 해상초계기와 MH-60R 해상작전헬기를 들여올 해상초계기Ⅱ, 해상작전헬기 사업은 감액이 상대적으로 크게 이뤄졌다.

P-8A와 MH-60R 도입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사청이 주미계약지원단에 제안요청서(LOR)를 보내면, 지원단은 미국 정부에 계약서(LOA)를 요청한다. 미국 정부가 계약서를 보내면 방사청이 기종 결정을 하고, 미국 정부에서 수락하면 계약이 체결된다.

그런데 P-8A 도입은 코로나19로 미국 정부와 보잉 간 시뮬레이터 계약 체결이 늦어졌다. 올해 예산 1985억3000만원 중 시뮬레이터 비용 1358억9200만원이 감액됐다.

MH-60R 도입은 시설공사 연구용역 지연으로 시설 관련 예산 37억원이 감액됐고, 사업추진 일정 지연에 따라 약 322억원이 추가로 깎였다. 탑재 어뢰 도입 관련해서도 미국과의 계약서 체결 지연으로 167억3600만원이 삭감됐다.

한미연합작전 수행 등에 쓰이는 공지통신무전기(SATURN) 성능개량 사업은 올해 약 293억원이 책정됐다.

이 가운데 육해공군 연합암호장비를 미국 FMS 방식으로 도입하기 위한 선급금 개념으로 60억원이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육군과 공군에서 미국과의 선행협의 절차가 늦어져 관련 예산 중 50억원이 깎였다.

유사시 오인사격을 방지하는 피아식별장치 성능개량도 올해 2421억원에서 575억원이 삭감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약으로 시제기와 시제함 제공이 지연된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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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이 보유한 신형 백두정찰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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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금강 백두 정찰기(RC-800B/G), HH-32 헬기, VH-92 헬기, TA-50 훈련기, UH-60 헬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등이 포함됐다. 기존에 설정된 사업 기간인 2024년까지 사업을 완료하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CN-235 수송기와 P-3CK 해상초계기 등은 2025년에야 사업 목표를 달성할 전망이다.

국회 국방위는 “원활한 연합작전 수행을 위해선 사업이 추가 지연되지 않도록 면밀한 사업 관리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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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C-130H 수송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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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부대 공중침투 지원용 C-130H 성능개량도 올해 예산 250억원 중 약 86억원이 깎였다.

C-130H 성능개량과 관련,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지향성적외선방해장비(DIRCM)를 확보하고자 올해 사업비에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시험평가에서 전투용 부적합 판정 등을 받았다.

이에 따라 새로운 입찰공고와 제안서 평가, 시험평가 등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할 때 연내 계약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돼 약 86억원이 감액됐다.

국회 국방위는 “해당 사업은 2016년, 2018년, 2019년 총 세 차례에 걸쳐 사업기간이 2021년에서 2024년으로 연장됐다”며 “사업이 추가 지연되지 않도록 보다 면밀한 사업관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대형 무기도입 신규 발주 영향 미칠 가능성

추경 편성 과정에서 거액의 방위력개선비가 삭감된 것과 관련, 군 당국은 군사대비태세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벌써부터 국가안보를 위해 쓰일 국방예산을 늘렸다 줄였다 해도 안보에 지장이 없는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전력증강에 영향을 미친다면 추경의 당위성에 국가안보가 밀린 것이고, 영향이 없다면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방예산 편성과 집행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국회에서 매년 지적되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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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TA-50 훈련기가 비행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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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든 ‘국방비는 필요할 때 칼질해서 쓸 수 있는 쌈짓돈’이라는 인식을 정부와 정치권에 심어줄 위험이 있다.

국방예산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흔들리면, 그 피해는 전력증강사업 추진을 염원하는 장병들에게 돌아간다. 국방부와 방사청이 “대비태세에 지장은 없다”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군이 필요로 하는 대형무기도입 사업 추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사업 규모가 큰 해군과 공군 관련 사업에서 이같은 문제가 두드러진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모든 정부부처는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첫 정책을 통해 향후 5년간의 정책 기조를 가늠한다.

국방부와 방사청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추경을 위해 거액의 예산을 삭감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집행이 늦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예산 삭감이 큰 폭으로 이뤄지면서 대형 무기도입 신규 소요 제기나 집행 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수천억원을 깎은 후에 총사업비 1조원 이상의 신규 무기도입사업을 일선에서 국방부나 합참 등에 올릴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조만간 있을 장군 인사를 통해 들어설 새 군 수뇌부도 이번 예산 삭감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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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이 지난 3월 25일 우리 군 공군기지에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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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군 안팎에서는 공군의 핵심 사업으로 수조원이 소요될 차기전투기 2차 사업(F-X) 등의 착수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 나온다. 군 소식통은 “덩어리(규모)가 너무 크다는 인식이 있어 사업 조기 착수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국방예산이 ‘성역’이었다. 경제가 어려워도 국방비는 삭감되지 않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정부도 국회도 삭감을 꺼려하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큰 폭의 예산 삭감이 발생한 이유다.

국방부와 방사청은 예산 편성과 집행을 더욱 철저히 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에 대한 예산을 다루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국방예산은 정말로 정부와 정치권의 쌈짓돈이 될 수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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