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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벤처하는 의사들] 정원규 레디큐어 대표 “방사선 요법 통해 치매 정복… 기억력·학습능력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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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6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만난 정원규 레디큐어 대표가 자사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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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인 정원규 레디큐어 대표는 지난 2016년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둔 동료 교수에게 논문 한 편을 건네받았다. 정 대표는 “동료 교수가 논문을 보는데, 처음엔 치매 환자인 어머니 생각이 먼저 들었다가 곧이어 내 얼굴이 떠올랐다는 말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논문엔 미국 율리안 버몬트 병원에서 치매에 걸린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내용이 담겨있었다. 병원 연구팀은 치매에 걸린 쥐의 뇌 중 절반에만 방사선을 쏘고,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둔 다음, 두 부분의 차이를 비교했다. 방사선을 맞은 뇌에선 치매를 유발하는 이상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등이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정 대표는 논문을 읽은 직후 ‘방사선 요법으로 암뿐만 아니라 치매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건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논문 내용을 직접 검증해보고 싶었던 정 대표는 한국연구재단에 연구 계획을 제출, 연구 지원금을 받아 곧바로 실험에 나섰다.

정 대표는 율리안 버몬트 병원이 쐈던 것보다 강도가 약한 ‘저선량 방사선’을 치매에 걸린 쥐의 뇌에 쐈다. 그러자 단순히 치매를 유발하는 이상 단백질이 사라지는 걸 넘어, 쥐들의 퇴화했던 학습능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지 했다. 이후 충북대병원이 정 대표 연구 방식을 활용해 치매에 걸린 사람을 대상으로 방사능 요법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실험군에서 3명 중 2명 꼴로 인지기능 개선이 확인됐다. 인간의 치매에도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정 대표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방사선이 뇌에 있는 면역세포인 ‘마이크로글리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마이크로글리아는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 이상 단백질을 없애고 뇌 인지기능을 유지·관리하는 ‘뇌 속 청소부’로 통한다.

그런데 이상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이 쌓이면, 마이크로글리아가 ‘과활성 상태’에 빠져 이상 단백질과 정상 작동하는 신경세포를 모두 공격해 인지기능을 더욱 퇴화시킨다. 치매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저선량 방사선이 뇌를 통과하면 과활성된 마이크로글리아가 천천히 균형을 찾으며 제 기능을 회복한다. 뇌에 쌓여있던 이상 단백질만을 골라서 제거하고 퇴화한 인지기능을 개선한다. 치매 환자 뇌 속의 마이크로글리아가 과활성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면 치매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정 대표는 지난해 9월 레디큐어를 창립했다. 이후 반 년 만에 7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정 대표가 정립한 방사선 치매 치료 기술은 현재 강동경희대병원, 충북대병원, 보라매병원에서 임상 진행 중이다. 회사는 2025년까지 방사선 치매 치료 기기인 ‘AMG-300′을 완성해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쓰이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매진 중이다. 목표는 ‘치매 극복’으로 잡았다. 정원규 대표를 지난 6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강동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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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만난 정원규 레디큐어 대표가 저선량 방사선으로 치매를 치료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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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치매라는 병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치매는 뇌 속에 이물질이 쌓여 뇌세포 간에 신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이물질이 덩어리져 뇌 속에 들러붙는 등 침착현상이 발생한 결과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생기는 병이다. 치매를 앓다 사망한 환자를 부검해보면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등의 단백질이 나온다. 뇌세포막에 있는 정상 단백질이 분해, 생성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상 단백질’이다. 이들이 이물질처럼 쌓이는 것이다.”

一 치매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인은 파악됐지만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네페질과 같은 약이 있긴 하지만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출 뿐, 떨어진 인지기능을 개선하진 못한다. 그래서 ‘불가역적 퇴행성 질환’이라 불린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평균 수명이 늘면서 노인이 많아지니 환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65세 이상 치매 발병률은 5~10%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치매 환자가 7초에 한 명씩 생기고 있다. 국내 치매 환자가 2030년엔 114만명까지 늘어날 거란 분석도 있다.”

一 전공인 방사선종양학과는 치매와 관련이 없지 않나.

“사실이다. 나는 방사선 요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사람이다. 치매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그런데도 레디큐어를 창업한 건, 2016년에 어느 논문 한 편을 읽은 게 시작이었다. 미국 율리안 버몬트 병원에서 치매 걸린 쥐의 뇌 중 절반에만 방사선을 쏘고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뒀더니, 방사선을 쏜 부분에서만 이상 단백질이 크게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동료 교수 중 모친이 치매를 앓고 계시던 분이 소개해줬다. 논문을 읽다가 어머니 생각에 바로 이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인류가 오랜 세월 극복하지 못한 질병이 치매인데, 내가 여태껏 갈고 닦은 의료 기술이 치매를 낫게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一 논문을 접한 건 2016년인데 창업은 2021년이다. 그 사이에 어떤 과정을 거쳤나.

“우선 논문 내용을 직접 검증해야 했다. 율리안 버몬트 병원에서 쏜 것보다 방사선 선량을 줄여서 한국연구재단에 연구 계획을 제출했다. ‘저선량 방사선’을 써도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 이상 단백질이 줄어드는지 보려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치매 걸린 쥐의 뇌에 쌓여있던 이상 단백질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이에 더해 방사선 요법을 받은 뒤엔 쥐들 인지능력까지 더 좋아졌다. 이후엔 충북대병원이 비슷한 연구를 쥐가 아닌 실제 치매 환자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70% 남짓한 환자들에게서 인지능력 개선이 나타났다. 방사선 요법으로 치매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一 원리가 뭔가. 단순히 방사선으로 이상 단백질을 제거하면 치매가 완화되는 건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아 추가 실험을 거쳤다. 치매에 걸린 쥐에게 5일간 방사선 치료를 한 뒤 4일이 지났을 때와 8주가 지났을 때의 뇌 상태를 비교했다. 방사선 치료 후 4일이 지난 쥐의 뇌에는 이상 단백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8주가 지났을 땐 이상 단백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방사선이 물리적으로 이상 단백질을 없애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一 그럼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치매 증상이 개선되는 건가.

“우리 연구진 실험에 따르면 핵심 요소는 ‘마이크로글리아’다. 마이크로글리아는 소위 ‘뇌 속 청소부’라 불린다. 이상 단백질을 포함해 뇌에 쌓이는 노폐물을 없애주고 뇌 인지기능을 유지·관리해준다. 마이크로글리아는 상황에 따라 M1, M2로 분해된다. M1이 노폐물 제거, M2가 인지기능 관리 기능을 한다. 정상적인 뇌에서 둘은 5대 5 안팎의 비율을 균형있게 유지한다. 그런데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같은 이상 단백질이 과하게 쌓이면 M1이 끊임없이 증식하면서 균형이 깨진다. 이런 ‘과활성 상태’에선 M1이 이상 단백질뿐만 아니라 정상 작동하는 신경세포까지 먹어치운다. 여기에 방사선을 쏘면 M1과 M2 사이 균형이 서서히 맞춰지면서 마이크로글리아가 정상 작동한다. M1이 이상 단백질만을 없애고 M2가 떨어진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조금씩 회복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치매 증상이 조금씩 나아진다. 몇 년 동안 연구하며 밝혀낸 성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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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만난 정원규 레디큐어 대표가 저선량 방사선 치매 치료 기기 'AMG-300' 시제품 옆에 서있다.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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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마이크로글리아 관련 내용까지 파악한 끝에 곧바로 창업했나.

“아니다. 원래는 방사선 항암 요법에 쓰이는 장비를 치매에 활용하는 걸 생각했다. 창업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암 치료용 방사선 장비는 개당 100억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 여러 대씩 들여놓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에 암 환자가 좀 많나. 매년 암 환자만 25만명 안팎씩 쏟아진다. 암 치료용 방사선 장비를 치매 치료에도 쓰려면 장비 한두 개를 암 환자와 치매 환자가 나눠 써야 한다는 건데, 이는 어려울 거라 봤다. 그렇다고 몇 년간 연구해서 밝혀낸 방법론을 버리긴 아까웠다. 결국 의사가 쓸 장비는 의사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게 좋다 생각해 창업을 결정했다.”

一 업력이 짧은데 사업적 성과는 있나.

“지난해 9월에 회사를 만들고, 올해 4월 7억원 규모의 엔젤투자를 받았다. 또 최근 ‘바이오 의료 기술 사업화’라는 정부 과제에 지원했는데, 여기 뽑히면 5억3000만원의 투자를 추가로 받게 된다. 연구 과정에서 정립한 저선량 방사선 치료 방법론은 특허를 등록한 상태다. 또 현재 충북대병원, 보라매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 세 곳에서 저선량 방사선 치매 치료 임상을 진행 중이다.”

一 개발 중인 치료 기기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린다.

“저선량 방사선 치매 치료 기기인 AMG-300을 만들고 있다. 환자가 이 안에 누워있으면 여러 각도에서 방사선이 들어온다. 이 기기가 작동하는 방법론도 특허가 등록돼있다. 현재 실물 기기를 제작하기 위한 설계도를 만들고 있다. 2025년까지 실물 기기를 내놓고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병원 현장에서 치매 환자 치료에 쓰일 수 있게끔 할 계획이다.”

一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저선량 방사선 요법을 치매 치료의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치매 관련 의약품으로 나와있는 제품들 중 인지능력 퇴화를 완전히 멈추고 이를 개선하는 건 없다. 도네페질은 치매 진행 속도는 늦추는 약이고, 지난해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아두카누맙은 아예 효과가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뒤집고 치매라는 분야를 극복해보고 싶다.”

최정석 기자(standard@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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