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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국은 투피스, 중국은 원피스"…'中 한복공정' 조목조목 반박한 이 사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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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고대 복식 전문가인 권준희 박사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직접 재현한 한복 저고리를 들고 웃고 있다. 권 박사는 "한국 전통 복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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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최근 한국 전통 복식인 한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 한복이 중국 한푸(漢服)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한복 공정'을 펼치면서다. 중국의 한복 공정 움직임은 유튜버 등 민간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최근 중국 당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하면서 우리 국민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소수민족 문화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한복이 중국 문화의 하나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준희 박사는 한복 공정이 부상하기 수십 년 전부터 한복과 사랑에 빠진 고대 복식 전문가다. 서울대 의류학과에서 신라 복식을 전공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대학 강사로 전통 복식에 대해 강의한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 사업에 참여해 옛 한복 모습을 고증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는 우리 한복과 중국 한푸는 그 기원이 명백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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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복식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직접 만들어보는 실습이 좋아 의류학과에 진학했다. 옷이라는 것은 사람과 연결돼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걸 배웠다. 옷차림은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간 관계를 말해주기도 한다. 의류학과에서 한국 복식 관련 학부 수업은 한국 복식사와 한복 구성, 단 두 과목뿐이었다. 나머지는 다 서양 복식에 관한 내용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세부 전공을 정하면서 내가 모르는 걸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한국 복식사를 선택하게 됐다.

―고대 복식 연구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실물이 없는 고대 복식은 시각자료와 문헌자료를 기초로 연구가 이뤄진다. 복식사를 공부하려면 옷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실물 옷이 출토되는 것은 고려 시대까지다. 그 이전 시대를 볼 수 있는 것은 고분벽화 같은 회화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신라는 고분벽화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라 시대 고분벽화로 영주 순흥 읍내리 고분벽화와 어숙묘 벽화가 있기는 하지만, 박락이 심해 당대 보편적인 복식 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로는 한계가 있다. 신라만의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바위에 그려진 선각화가 있다. 그리고 흙으로 빚은 인형인 토우, 토기 장식에 나타난 인물 모습도 참고가 된다.

―신라 복식의 특징은 무엇인지.

▷신라 복식은 기본적으로 모자, 저고리, 바지, 신발로 구분된다. 당나라 역사서 '양서'에 따르면 신라에서 모자를 유자례(遺子禮), 저고리를 위해(尉解), 바지를 가반(柯半), 신발을 세(洗)라고 칭했다. 모자는 고대 복식에서 신분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신라에는 화려한 금관과 함께 삼국에서 공통으로 착용한 삼각형의 변형모(弁形帽), 립(챙이 있는 모자), 건 등이 있었다. 그중 모자 끝부분이 앞으로 살짝 숙여진 형태의 건은 신라에서만 발견된다. 경주 단석산 신선사 공양인물상과 쪽샘 출토 토우의 모자에서 끝이 앞으로 살짝 기운 형태의 건이 확인된다.

저고리는 좌우 몸판을 서로 겹쳐서 여미는 교임과 곧은 깃이 특징이다. 이는 현재 한복 저고리에까지 이어지는 형태다. 다만 삼국시대에는 옷고름이 아닌 허리띠를 둘러 착용했고, 여밈과 밑단 부분에도 선 장식이 있었다. 신라는 저고리 밑단에 주름 장식을 더하기도 했다. 바지는 볼륨감이 특징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같은 바지라도 날렵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신라 단석산 공양인물상이나 이차돈 순교비 등을 보면 바지통이 더 넓고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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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한 내용을 소개해준다면.

▷2019년 경남 김해시에서 추진한 '가야 복식 복원사업 연구용역'에 참여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김해는 현재 국내에서 고분 발굴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지역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사료 중 금관가야에서만 발견된 특징적인 복식으로는 모정, 즉 모자 끝이 길며 뾰족한 립을 들 수 있다.

―삼국시대 복식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한복 고유의 특징이 있다면.

▷삼국시대 복식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의와 하의가 나뉜 일종의 투피스 양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삼국시대 이전에 기마 생활을 해온 북방 유목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 한복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동아시아 이웃 국가와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 중국 만주족 복식인 치파오는 모두 원피스 형태를 띠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한족도 자료를 보면 한나라 때부터 남녀 모두 길이가 긴 원피스 형태의 옷을 입었다.

―중국에서 한복이 중국 한푸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거듭되고 있는데, 이른바 '한복 공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복이 중국 한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맞는 말이다. 반대로 중국 한푸가 한복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복이 한푸에서 기원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다. 기본 형태가 투피스와 원피스이기 때문에 기원이 다르다. 다만 전통 복식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측면이 있다. 한복이 한푸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는 고려양이다. 원 간섭기 때 원나라에 끌려간 공녀들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고려 복식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복식이 한푸의 영향을 받은 사례로는 조선이 명나라 관복을 들여온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사대교린 외교 방침에 따라 중국은 황제국, 조선은 제후국 지위로 품계를 한두 개씩 낮춰서 들여왔다. 그런데 관복을 예로 들며 한푸가 한복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중국 관복의 디자인 역시 애초에 중국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다. 중국 관복의 특징인 단령(둥근 목둘레)은 본래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 유목 민족의 복식에서 이른 시기부터 나타난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아시아와 교류하면서 단령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접 국가끼리 복식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두고 문화적 예속을 논한다는 자체가 유아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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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대놓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복을 자국 문화로 흡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주로 민간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도 공식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 최대 검색 엔진인 바이두 백과사전에 '한복'을 검색하면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의 전통 복식이라고 나오고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통 복식이라는 얘기는 쏙 빠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국제사회에서도 한복이 한국 문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강력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복을 계승하는 구체적 방법이 있다면.

▷한복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 디자인에 채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한복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현대 복식 디자인에는 주로 조선 시대 복식 요소만 차용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학계에서 한복 연구의 맥이 끊기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한복을 전공하면 취업이 어려운 탓에 한국 복식을 전공할 후학을 뽑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학에서도 전통 복식 학과나 한복 관련 수업을 줄이고 있는 형편이다. 네티즌도 중국의 한복 공정에 분개하지만 한복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한복 문화의 정체성을 계속 이끌어 나가려면 고대 복식을 제대로 연구하고 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 권준희 박사는…

1968년생.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대 복식 전문가.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부산대 한국전통복식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거쳐 수원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앞서 서울대, 부산대, 인하대 등에서도 수업을 맡아 강의했다. 신라 고취대 복식을 재현하고, 경주시에서 개최한 전시 '신라인의 옷, 신라의 美'에 고증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활약을 이어 가고 있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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