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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천재보다 집단지성이 진보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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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세아니아 섬나라는 전통적으로 모든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며 삶의 조건이 비슷하다. 대부분 섬들은 멀리 떨어져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아 독자적 문화가 탄생했다.

인구가 적고 외딴섬인 뉴헤브리디스제도 말라쿨라섬에서는 어업에 사용하는 도구가 13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폴리네시아 하와이제도의 가장 큰 섬에서는 어업 도구 종류가 말라쿨라섬의 다섯 배가 넘었다. 똑같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데 왜 이곳에서는 원시적 장비를, 저곳에서는 정교한 장비를 사용했는지 연구했던 미국 인류학자 미셸 클라인과 로버트 보이드는 집단적 뇌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구가 많고 주민 간, 문화 간 교류가 활발할수록 주민들이 활용하는 기술도 훨씬 더 정교했다. 물질 문화뿐 아니라 언어도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표현이 더욱 풍부해졌다. 인구가 많은 섬에서는 새로운 단어들이 더 빨리 더 멀리 확산됐다.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고고학은 물론 뇌과학,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을 통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몇몇 천재들의 번뜩이는 영감이 역사를 바꿨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창조적 사고는 뇌와 뇌, 사람과 사람, 지식과 지식이 연결될 때 비로소 발현되므로 교류와 협력이 창조성의 근원이고 인류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인간의 창조적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지적 여행을 안내한다. 330만년 전 인류가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음을 입증한 로메크위의 석기유적지부터 구텐베르크 인쇄술, 에이다 러브레이스, 앨런 튜링, 인공지능(AI) 알파고까지 경이로운 창조의 순간을 생생하게 그렸다.

특히 영국 인지과학자 마거릿 보든이 "인간이 발휘하는 창조성의 97%는 탐구적 창조성"이라고 한 것에 주목한다. 탐구적 창조성이란 가능성의 범위를 탐색해 아무도 다루지 않은 가설을 모색하는 것이다. 마치 콜럼버스와 같은 신대륙 발견자의 자세다. 계속 스타일을 변화해 가능성의 지평을 탐구해온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위기 요인이 됐다. 기존 컴퓨터도 뛰어난 연산능력으로 인간보다 더 넓은 가능성 범위를 탐색했지만, AI는 게임규칙을 입력하면 스스로 게임전략을 개발해 자기만의 판단을 획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보다 빨리 해결책을 모색하는 세상에서 인간 지성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저자는 창조성이 재능이 아니라 삶의 자세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삶의 자세가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조성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책을 덮으니 영화 '매트릭스' 세계관이 떠오른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프로그래밍돼 있다. 변혁을 이루는 열쇠는 지능이라기보다는 자율성에 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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