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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50조 증발' 피눈물에도···'테라2.0' 강행하는 고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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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50조 증발에도···'新루나·테라 체인' 부활 이유는]

투표 참여한 38곳 중 33곳 찬성

사전투표와 달리 정족수 목전

일부는 100배 수익 얻고 엑시트

개인들 "反공동체적" 반발에도

이르면 27일 '테라 2.0' 가동

'큰 손' 오리온머니·해시드 등

미투표자 향방이 결과 바꿀수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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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암호화폐 ‘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가 제안한 블록체인 재건안이 개인투자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다. 일찌감치 투자금을 회수해 막대한 차익을 누린 곳도 있어 ‘루나 사태’는 개인투자자들만의 무덤이 될 상황에 놓였다. 자칫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 등을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로 서울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 고소·고발했다.

19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권 대표는 18일 오후 8시 17분께 테라 블록체인 지갑 사이트 테라스테이션에 ‘테라 네트워크 부활안’ 찬반 투표를 올렸다. 이날 오후 6시 30분 기준 투표율은 39.52%로 정족수 충족까지 180만 표(0.5%)만 남겨두게 됐다. 현재 대규모 루나 투자사 38곳 중 33곳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찬성률은 77.96%에 달했다. 반대와 기권 비중은 각각 0.35%, 1.39%에 불과했고 거부권 행사율은 20.3%였다.

권 대표가 제시한 테라 네트워크 부활 계획은 ‘하드포크(Hard Fork)’다. 기존 테라 블록체인을 복사해 새 블록체인 및 새 루나 코인을 만들되 문제를 일으킨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는 새 체인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권 대표의 계획에 개인투자자들은 “‘고래(비트코인 대형 투자가)’에만 유리하다”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기관과의 투표권 대결에서 밀리면서 권 대표의 새 체인 ‘테라 2.0’은 부활이 유력해졌다.

대규모 투자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새로운 체인에서 신규 루나가 생성되면 대형 투자자 위주로 루나가 분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업계의 한 전문가는 “새로 코인을 발행하면 백서가 나오는데 그 안에는 누구에게 코인을 얼마나 주겠다는 분배 정책도 담겨 있어 그 부분이 대형 투자자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테라 체인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존 테라 체인을 버린다는 것인데 결국 소액 투자자들이 손해를 다 보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실제 권 대표는 처음 제시한 ‘테라 에코시스템 회생 방안2’ 중 루나 코인 배분 계획을 일부 수정한 뒤 최종 버전을 투표에 부쳤다. 변경안에 따르면 새 루나 코인은 1달러 가치 붕괴 전 기존 루나 및 앵커 테라USD(UST) 보유자에 각각 35%, 10%, 27일 기준 루나 및 UST 보유자에 각각 10%, 20%가 분배된다. 나머지 25%는 테라 커뮤니티 풀의 몫이다. 폭락에도 루나와 UST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분배한다는 내용이다. 체인의 부활을 꾀하는 상황에서 앞서 발표한 권 대표의 보상안은 공수표로 치부되고 있다. 루나파운데이션가드는 16일 보유 자산 내역을 공개하며 “남은 자산으로 소액 투자자부터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 커뮤니티에는 “테라 체인 부활은 ‘고래’에만 좋은 일” “해당 제안은 반(反)공동체 권위주의” 등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루나 대형 투자사 중 가장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국내 블록체인 기업 DSRV의 김지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DSRV는 기존 체인의 외부 자산이 안전하게 외부로 출금될 때까지 인센티브 없이 기존 체인을 지원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으로는 오리지널 체인을 지키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가장 정상적인 보상과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DSRV와 마찬가지로 이번 투표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비중이 33.4%를 넘기면 투표는 자동으로 부결된다. 하지만 총 투표율이 40%를 넘기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권 대표의 신규 체인 구상안의 진행이 가능해진다. 권 대표는 계획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르면 27일부터 신규 테라 체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주요 투자자 중 투표 영향력이 8.65%로 가장 큰 오리온머니와 루나 보유량 비중이 3.52%인 국내 최대 암호화폐 투자사 해시드 등은 아직 투표하지 않았다.

한편 국내외 일부 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테라 생태계가 붕괴되기 전 일찌감치 엑시트(투자금 회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테라폼랩스 급성장에 일조한 초기 투자자 헤지펀드 판테라캐피털은 지난해 수차례에 걸쳐 보유한 루나의 80%를 팔아치웠다. 회사 관계자는 170만 달러를 투자해 투자금의 100배인 1억 700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고 밝혔다.

국내의 경우 두나무의 100% 자회사인 두나무앤파트너스가 2018년 4월 루나 2000만 개를 취득한 뒤 ‘셀프 상장’ 논란이 일자 지난해 3월 보유한 물량을 전량 매각했다. 당시 시세를 따졌을 때 두나무앤파트너스가 루나로 벌어들인 차익은 약 1370억 원으로 추정된다. 2019년 테라폼랩스 자회사 플렉시코퍼레이션에 투자해 루나로 상환권을 얻은 카카오벤처스 역시 사태 발생 전 투자금을 분할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형 투기 자본 및 기관의 무책임한 행태가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암호화폐 플랫폼 테조스의 창업자 캐슬린 브레이트먼은 “루나와 UST의 흥망성쇠는 이 시스템을 지원한 기관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 초래됐다”며 “기관은 몰락한 개인을 위로한다지만 방어책은 내놓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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