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경찰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시라주딘 하카니 내무 장관.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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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여있던 탈레반 2인자가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장관 시라주딘 하카니(43)는 18일(현지시간) CNN의 크리스티안 아만푸르 기자와 첫 단독 인터뷰에서 여성 교육 문제와 국제사회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그는 아프간에서도 지난 3월 카불 경찰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서방 언론 인터뷰에 나선 건 최초이자 역사적인 일로 평가된다.
하카니는 인터뷰에서 여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과 관련해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여성들은 탈레반 통치 아래 집을 나오는 게 두렵다고 한다’는 지적엔 웃으면서 “우리는 ‘짓궂은’ 여성들은 집에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짓궂은’이란 의미를 묻자 그는 “다른 측의 통제를 받으며 현 정부를 반대하는 여성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라주딘 하카니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장관이 지난 4월 28일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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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약속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중등학교 이상에 재학하던 여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학교에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건 없다. 탈레반이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아프간 문화에 맞는 적절한 교복이 나올 때까지 집에 머물라고 지시하면서다. 하카니는 “소녀들은 이미 6학년까지 학교에 다닐 수 있고, 그 이후 (중등학교 진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실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기간은 명시하지 않은 채 “머지않아 이에 대해 아주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신(神)은 기꺼이 하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 반응은 회의적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여성인권본부 헤더 바 부국장은 CNN에 “탈레반은 처음 아프간을 장악했을 때(1996~2001년)도 항상 ‘지금은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5년간 ‘적절한’ 때는 오지 않았다”며 “여성과 소녀들에게는 항상 너무나 분명한 거짓말이었고 이번에도 그렇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집권한 후에도 여성과 소녀를 존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여성을 새롭게 단속하고 그 수위도 점차 강화됐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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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3인방 중 “가장 위험한 인물”
하카니는 탈레반 1인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61·추정)에 이어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54·추정), 물라 무하마드 야쿠브(30대 중반 추정)와 함께 2인자 3인방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강경파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힌다. 하카니의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조직(무자헤딘)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알려진 잘라루딘 하카니로,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과 친구였다.
지난 3월 경찰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하라주딘 하카니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장관.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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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니는 아버지가 창설한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끌며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최고위급을 타깃으로 테러를 벌여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08년 카불의 한 호텔을 공격해 미국 시민 등 6명이 사망한 테러 이후 그를 현상금 1000만 달러(약 126억7000만원)에 공개 수배했다. 아버지와 빈 라덴과 관계가 가까웠던 만큼 그 역시 “탈레반과 알카에다 사이의 핵심 연결 고리”로 꼽힌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인터뷰를 추진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특히 “미국 등 국제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며 “우리는 현재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국제사회의 (탈레반에 대한) 판단과 연구, 의사결정은 모두 일방적”이라면서도 “우리는 아직 준비 단계에 있다. 정권을 잡은 지 겨우 8달 됐을 뿐”이라며 “우리는 아직 정상화를 이루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선 여성의 권리 문제를 많이 지적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선 이슬람교 국가로서 문화와 전통의 원칙이 있다”며 “이런 원칙의 틀 안에서 우리는 여성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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