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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팩트체크] "정부 지원은 꼭 이렇게…" 선택적 원칙론에 큰 항공사만 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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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기자]

코로나19 국면에서 기간산업이 타격을 입자, 정부는 2020년 4월 '기간산업안정기금'이란 지원책을 꺼냈습니다. 9개 업종이 대상이었는데, 그중엔 항공업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객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던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 모두 단비를 맞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항공업계 안팎에서 그 효과를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결국 '돈 많은' 항공사만 혜택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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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부가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두고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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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문을 걸어 잠갔던 세계 각국이 빗장을 풀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어쩌면 코로나19 이후 가장 깊은 침체기를 겪은 산업이 항공업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하늘길이 꽉 막히면서 상당수 저비용항공사(LCC)는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자구책으로 대형 여객기를 개조해 화물운송에 뛰어든 대형항공사(FSC) 역시 "인건비 · 유지비 등 고정비용만 매달 4000억~5000억원"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었죠.

이 때문에 항공업계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이란 정부 지원금도 받는 업종에 선정됐습니다. 2020년 4월 정부는 국가경제에 큰 파급력을 미치는 기간산업 중 9개 업종을 지정해 지원금을 주기로 했는데, 항공업도 조선 · 기계 · 자동차 등과 함께 포함됐죠.

재정난에 시달리던 국내 항공사들로선 기안기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회사에 남은 돈(잉여금)이 하나도 없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던 LCC들로선 단비를 맞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부가 기안기금을 마련한 지 2년이 흐른 지금, LCC 업계는 되레 기안기금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LCC 업계의 주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안기금은 대기업의 배만 불려놨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대형항공사만 기안기금의 혜택을 누렸을 뿐 존폐 위기에 놓인 LCC 업계는 아무런 수혜를 입지 못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LCC 업계의 말대로 정부의 기안기금은 '대기업 전용'으로 쓰인 걸까요? 지금부터 팩트를 체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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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LCC 업계의 얘기는 '절반의 사실'입니다. 국내에는 총 12개의 국적항공사가 있습니다.[※참고: 이는 화물 전용 항공사인 에어인천을 포함한 개수입니다. 12개 국적항공사 중 LCC는 총 9개입니다.]

이중 기안기금을 받은 곳은 2개 항공사뿐입니다. 대형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과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입니다. 결과만 두고 보면 제주항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LCC는 기안기금을 받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까다로운 요건… 기안기금 모순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까다로운 요건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기업 중에서도 '총차입금 5000억원 이상 · 근로자수 300인 이상'이란 두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항공사에만 기안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럼 당시 항공사별 형편은 어땠을까요? 정부가 기안기금을 신청받았던 2020년 6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단기차입금만 1조원이 넘었습니다(2020년 1분기 기준 대한항공 1조1550억원 · 아시아나항공 1조6860억원). 근로자 수는 각각 1만8681명(대한항공), 8833명(아시아나항공)으로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훌쩍 뛰어넘었죠.

2020년 5월 기준 부채 비율만 6279.8%에 달했던 아시아나항공은 기안기금을 신청해 총 300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대한항공은 "자산 매각, 유상 증자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상태"라며 기안기금을 신청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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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LCC 중 정부가 내건 조건에 해당하는 항공사는 제주항공과 에어부산뿐이었습니다.[※참고: 2020년 1분기 기준 제주항공의 총차입금은 6417억원, 근로자 수는 3285명입니다. 같은 기간 에어부산의 총차입금은 5805억, 근로자 수는 1439명입니다.]

이중 제주항공은 두차례(2020년 12월 · 2021년 12월)에 걸쳐 총 1821억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반면 에어부산은 기안기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지원금을 받으면서 '계열사 간 중복 수령 금지' 조항이 적용된 탓입니다. 당시 에어부산의 부채 비율은 2064.5%로 아시아나항공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더 큰 규모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쪽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대부분 LCC 기안기금 받지 못해

그렇다면 9개 LCC 중 남은 7개 항공사들의 사정은 어땠을까요? 2019년 탄생한 신생 LCC(플라이강원 · 에어로케이 · 에어프레미아)들은 차입금 규모를 따지기 이전에 근로자 수 300인이란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4개 LCC(진에어 · 에어서울 · 티웨이항공 · 이스타항공)는 총차입금 5000억원의 벽을 넘지 못했죠. 결국 이들 7개 LCC는 기안기금을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2020년 기안기금의 첫발을 떼던 당시 정부는 이런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국민경제, 고용안정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하겠다." 기안기금의 운용 계획을 수립했던 한 금융기관의 관계자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안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되는 것이다. 세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공적 자금을 '너도 쓰고 나도 쓰는' 식으론 국회의 문턱을 넘기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무너졌을 때 파급력이 크면서도, 정부가 지원하면 자구 노력을 병행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중요 기업'을 중심으로 한정된 자원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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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LCC 업계는 까다로운 요건 탓에 기안기금을 지원받지 못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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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정부와 관계 기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2020년 기준 제주항공을 제외한 LCC들의 총 근로자 수는 약 6500명이었습니다. 총 부채 규모는 2조6411억원에 달했습니다. 각 항공사의 형편을 개별적으로 따져보면 어려움이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한데 모아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기안기금 목적 제대로 이뤘나

이들 중 어느 한곳이라도 무너졌다면 (기업당) 평균 813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평균 3311억원의 부채가 영영 해결할 수 없는 손실로 남았을 겁니다. 이는 국민경제와 고용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정부의 원칙대로라면 이들 LCC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자원의 한계를 이유로 이 원칙을 선택적으로 적용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정부의 기안기금, 과연 그 목적을 다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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