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尹정부서 깨어나는 '북한인권법'…1조부터 틀렸다, 6년째 방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취임 후 북한인권법 및 법에 명시된 북한인권재단 문제를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12일 국회 인사청문회)

입법 후 사실상 첫 발조차 떼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 내내 잠잤던 북한인권법이 윤석열 정부 들어 6년만에 다시 조명받고 있다. 다만 조항 자체에 어폐가 있거나 애매모호한 서술로 논란의 불씨를 남긴 대목이 곳곳에 있어 본격 시행도 전에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도 결국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추동력을 받기에 시의적절하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마스크 두 개를 겹쳐 쓰고 평양 내 약국을 찾은 모습. 조선중앙통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北 인권법, 충실하겠다지만…



'북한인권법의 충실한 집행'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와 함께 윤석열 정부 북한 인권 공약의 양대 축이다. 북한인권법은 2016년 3월 여야 대립의 진통 끝에 통과됐지만, 연내 북한인권재단 출범 등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듬해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엔 사실상 사문화됐다. 북한을 자극할까 정부 차원에서 인권 문제 논의 자체를 꺼린 탓이다.

이와 별개로 제정 단계에서부터 미흡한 부분이 많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우선 법의 목적을 밝힌 1조에서 규정한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유엔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인권규약에 규정된 자유권과 생존권을 추구한다"는 대목부터 기술적으로 틀렸다. 세계인권선언은 조약에 해당하는 국제인권규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세계인권선언이 상당 부분 국제 관습법화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으로 채택됐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에 해당하는 국제인권규약과는 구별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국제 인권 규범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갸우뚱할만한 대목이란 지적이다.

중앙일보

북한인권법의 제1조, 2조, 3조 캡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국제인권규약의 양대 기둥은 '자유권'과 '사회권'인데, 북한인권법에선 '사회권' 대신 유독 '생존권'을 내세워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다. 인권 전반을 다루려면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되는 생존권 대신,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까지 포괄하는 '사회권'으로 바꾸는 게 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특히 법안의 영문본에는 '생존권'을 'right to survival'이 아닌 'right to life'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 인권 규범상 자유권에 속하는 '생명권' 개념이다. 국제사회에 법을 소개하면서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안의 입법 때부터 학계에선 국제사회에선 의아해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지적을 국회에 여러 차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여야 간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법안의 일부 대목이 논리적, 개념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새 정부에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6년 3월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지만 출범하지 못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호한 조항, 논란 불씨



내용 자체가 모호한 조항도 있다. 입법 과정에서 여야 이견을 급히 봉합하려다 벌어진 일이다.

3조는 북한 주민을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 직계가족ㆍ배우자ㆍ직장 등 생활의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에 '북한 밖에 있는 주민은 북한인권법의 지원 대상이 아니냐'는 논란이 곧바로 벌어졌다. 해외 체류 탈북민 등이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당시 통일부는 "해외파견 노동자 등 제3국에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북한 주민도 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유권 해석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논란의 소지는 북한인권재단의 이사를 여야 동수로 추천하도록 한 데서 발생한다. 통일부 장관 추천 2명을 포함해 여당 추천 5명, 야당 추천 5명 등 총 12명으로 이사진을 꾸리게 돼 있다.

동수 추천인 만큼 이를 둘러싼 여야 갈등은 입법 때부터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 한쪽에서 추천 명단을 내지 않아 재단 출범이 지연되기도 했다.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과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업무를 법에 명시하면서도 의무로는 규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북한인권대사는 2017년 9월 초대 이정훈 대사가 물러난 뒤 공석이고, 북한인권기록센터도 지금까지 한 번도 북한 인권 실상 관련 공개 보고서를 낸 적 없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관련, 남북 교류를 추진하는 통일부에 북한 인권 기록 업무를 맡긴 게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북한 인권 침해 기록은 국제 인권법과 국제형사법 등 보편적 규범 위반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고 대북 접촉 부담이 없는 법무부 등 다른 부처가 맡는 게 낫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ㆍ미 정상회담서도 北 인권 부각 전망



코로나19 확산에도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 채 강력한 봉쇄에만 의존하며 주민들의 백신 접근권을 제한하는 북한 당국의 최근 조치는 근본적으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앞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펴낸 북한 인권 관련 보고서에도 "팬데믹 이후 북한 당국의 각종 통제 조치로 북한 주민의 인권은 더욱 후퇴했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이에 오는 21일 열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는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인권 측면에서도 북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5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에선 한층 진전된 문안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인권 외교'를 지향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앞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관이 일맥상통하는 가운데 북한 인권의 논의와 관련 법의 정비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