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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울기 좋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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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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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태어날 때 왜 우는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양수에 둘러싸여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다가 갑자기 자신의 입과 폐로 호흡을 해야 하는 변화 때문에 운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과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우는 것이라는 말도 그럴 법하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마음이 시원해서 우는 것이라고 했다. 좁고 캄캄한 엄마 뱃속에서 답답하게 웅크리고 지내다가 넓고 환한 세상에 나온 것이 하도 시원해서 참된 소리를 마음껏 지르는 것이다.

박지원은 사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가다가 처음 요동 벌판을 마주하고서 “아! 울기 좋은 자리로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별안간 울고 싶다는 말에 일행이 그 까닭을 묻자, 박지원은 울음의 철학을 펼친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다. 기쁨, 분노, 사랑, 미움 등의 감정 역시 극에 달하면 저절로 울음에 이른다. 지극한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울음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요동 벌판을 마주하는 일은, 박지원에게 있어서 갓난아기가 세상과 처음 마주하는 일처럼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곳이야말로 갓난아기의 울음처럼 참된 소리를 지르며 울 만한 곳이라고 말한 것이다. 산으로 가로막힌 조선의 지형과 달리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툭 트인 요동 벌판을 보고 던진 말이긴 하지만, 그저 지형의 차이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이제까지는 본 적이 없고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인식이 열리는 극적인 순간을 표현한 말이 ‘울기 좋은 자리’이다.

온라인으로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특정한 순간, 특정한 자리에 가야만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일이 점차 줄어든다. 이제 좁고 캄캄한 골방이 아니라 넓고 환한 벌판에 살고 있다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답답함이 아니라 무엇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 무감함이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늘 그래 왔고 그럴 수 있으며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이기에, 더 이상 놀랍지도 화나지도 않는다. 감정의 고조가 없으니 울 일도 없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관건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새로움에 있다. 오늘 우리에게 울기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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