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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낯선 사이] 위스키 온 더 락, 얼음의 법칙을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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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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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노동시장 연공서열제는 문제이지만, 나는 모든 이들이 나이와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연령은 계급, 젠더와 함께 중요한 사회 구성 요소로, 모든 분야가 노소(老少)에 따른 ‘우선권’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의 전쟁터다. 나이는 다른 사회 구조와 다르게 ‘어려도’ ‘어중간해도’ ‘늙어도’ 맥락에 따라 차별받는다. 이처럼 연령주의는 간단한 주제는 아니지만, 논외는 있다. 사람들이 “그만큼 해(처)먹었으면 됐지”라고 지칭하는 이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평생을 양지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해온 사람들은 그만 일해도 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가 대표적이다. 물론 공직자로서 그의 부적절성은 나이(1949년생)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이제 쉬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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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학자


정치인이나 관료 중에 한덕수씨처럼 자격 미달에도 불구하고 더 일하고 싶다는 이들을 보면, 비판 이전에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은퇴 비용이 있다면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 책만 실컷 읽고, 일 때문에 미룬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 주변을 잘 정돈하여 민폐 없이 준비된 안식을 맞고 싶다. 대부분 생계 노동은 고달픈 일이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한숨 쉬다가 더 힘들 수도 있는 귀농, 귀어, ‘자연인’을 꿈꾼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총리 업무는 쉬운가 보다. 혹은 격무에도 불구하고 ‘두 번 총리’로 역사에 남기 위해?

‘위스키 온 더 락’.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주제곡 중 하나다. 2003년, 당시 44세의 최성수씨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원곡이다. 드라마에서는 편곡된 곡을 가수 김연지씨가 부른다. 노희경 작가 팬인 나는 이 드라마를 정주행, 역주행을 반복하는 낙으로 산다. 그러다 이 노래의 가사가 심상치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인생을 다루고 있지만, 어차피 관객은 자기 식대로 본다. 나에게 이 드라마는 나이 듦에 관한 사유다. 중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원곡의 주인공 최성수씨가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중년‘만’이 가능한 절창이라고 느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가사는 멋지지만 대개 나이 듦에 대한 언어가 그렇듯 모순적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다”. 나이 듦을 애써 좋게 말하지만, 결국은 호오 심지어 시비의 기준은 젊음인 사회여서 꼭 ‘아쉬운 꿈’ 운운하는 가사가 나온다. 꿈과 희망은 젊은 날의 전유물이 아닌데도 말이다. 꿈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죽는 게 소원인 중증 우울증 환자도, 죽고 싶거나 낫고 싶은 꿈이 있다.

인간의 본질은 몸의 사라짐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생명체로서 지구의 일부분이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지만, 더 근원적인 법은 생사의 법칙이다.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를 압도할 때, 즉 사회적 삶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때, 나도 타인도 지구도 망한다. 중년이 되면 지인들의 부고가 흔해지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의 죽음, 남의 죽음(간병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대나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최고의 통치 방식인 이유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통치를 거부해보자.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인간은 수억만의 생명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지구에는 파괴를 일삼는 골치 아픈 존재의 졸(卒). 인간의 죽음은, 사자에게는 안식이고 지구에는 온전함을 선사한다. 죽음만 한 평화가 없다. 저출생을 문제 삼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인구학에 기반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위스키 온 더 락’은 자연의 이치에 대한 좋은 비유다. 이 노래에서 술은 인생이고, 얼음은 젊음이다. 주변 온도나 마시는 속도에 따라 위스키의 농도는 달라지겠지만, 얼음이 녹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술맛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얼음이 녹아가는 술잔을 놓고 “나는 뭘 하며 살았나” “그래도 너는 뭔가 이룬 게 있잖아” 같은 대화가 오간다.

가장 성숙하지 못한 접근은 나이 듦에 대한 타자화다. 나이가 들면 경험, 성숙, 세월의 멋, 지혜 등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처럼 말하는 방식이나 반대로 노추(老醜), 노욕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이나 ‘곱게 늙음’에 대한 강박과 칭찬이 난무한다. 나이 듦에 대한 타자화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특정 연령대에 대한 임의적 규정이다. 앞에 적은 특성들은 개인차일 뿐이다. “세월의 멋”을 체현한 이들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이 훨씬 많다. 나이 듦 = 세월이 멋이라면, 동안 타령과 관련 산업은 덜 번창할까? 나이 듦은 그저 “감당 못하는 서늘한 밤의 고독…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운”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곱게 나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싫었다. 일단 돈과 건강, 외모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얘기인 데다, “곱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나이 든 사람의 정당한 분노는 ‘곱지 않다’. 그들의 ‘지나친 의욕’도 거북하다. 나이가 들면, “이러지 말아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통념의 심문을 받는다. 이는 폭력이다. 성장이 멈추는 시간부터 바로 노화다. 인간은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되며, 25세부터 허리가 굽는다. 나이 듦은 평생의 과정이라는 얘기다. 나이 듦에 대한 찬양도 기피도 모두 차별이다. 나이 듦을 생명체의 본질로 받아들이기보다 온갖 특성을 갖다붙이는 것은 사회적 담론의 결과다. 평균 수명, 생애 주기가 시대와 지역마다 다른 이유는 노화 담론의 역사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완벽한 지구화는 빙하가 녹는 것

기후위기. 당대 지구 파괴는 인간이 자신의 두 가지 실존적 조건 중 사회성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결과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형은 의미를 추구하는 생산적인 사람이다. 약간의 조증(躁症)도 필요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는 통념의 구체성을 생각해보자. 이름을 남기려면 평생 노력해야 한다.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 좌절하는 사람, 그 주변 사람 모두 불행하다. 게다가 이젠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과정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은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의 수치다.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의 ‘가죽’을 취할 자격이 없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모습대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장기나 피를 팔아야만 하는 처지의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도 예외가 많아졌지만, 대개는 다양한 형태의 입신양명이나 최소한 회고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타인과 자연을 해치고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는 인생은 얼마나 끔찍한가.

인간이 지구의 주인으로 등극한 지난 1~2세기, 문명화 논리와 과학의 발달은 인간 조건의 균형을 깨뜨렸다. 위스키의 얼음은 녹는 게 자연스럽다. 이 이치를 인정할 때, 지구상의 얼음이 녹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한 인간 때문에 인구 증가, 불평등, 극단의 양극화와 함께 얼음이 정말로 급격히 녹기 시작했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야말로 완벽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물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물질이다. 이 현상은 물을 매개하기 때문에, 전 세계 곳곳에 예외 없이 스며든다. “물 샐 틈 없이”가 언제나 안보 담론과 짝을 이루는 이유다.

지금 인간이 자신과 지구를 살리는 길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생태사회주의가 주장하는 탈성장만이 답이다. 내겐 강남 좌파든 강남 우파든, 열심히 사는 부자들의 인생이 최악이다. 이들은 자연 파괴를 가족 단위로 세습한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도리, 자연과의 관계에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한다? 역사적 평가에 맡긴다?” 여기서 역사는 발전주의에 기반한 근대 역사주의의 산물이지, 사실이 아니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가 아니다. 이제 혁명은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여야 한다.

‘무의미한 인생’이야말로 ‘없는 우리’의 최고 무기다. 기존의 역사는 상대화하면 그만이고, 무엇보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2초 이상 타인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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