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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타살 아니다” 당시 수사 책임자 31년만에 주장,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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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반발

조선일보

’개구리 소년 ’의 학부모들이 지난 1991년 12월 30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당시 10개월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다섯 아이들의 사진을 소형버스에 걸어놓고 행인들에게 실종 아이들의 사진을 담은 전단을 돌리고 있다. /조선DB


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히는 ‘개구리 소년 사건’이 타살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26일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이다. 아이들은 2002년 9월26일 마을 인근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이 같은 주장은 사건 수사를 책임졌던 김영규 전 총경(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이 제기한 것으로, 김재산 국민일보 기자가 최근 펴낸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에 실렸다.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손수호 변호사가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김 전 총경의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손 변호사에 따르면, 이 책에는 범행 동기가 없고 살해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개구리 소년 사건은 타살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총경은 3명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ㄷ자’ ‘V자’ 모양의 상처를 타살이 아닌 근거로 제시한다.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 상처들이 흉기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고 ‘명백한 타살’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범행 도구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점이 결국 ‘타살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연결됐다고 손 변호사는 설명했다.

대신 김 전 총경은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여름에 비가 내리면서 날카로운 돌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생긴 골절흔이라는 것이다. 또 아이들마다 상처의 개수가 제각각이었는데, 이에 대해선 사체의 위치가 달라서라고 한다. 두개골에 상처가 가장 많았던 우철원군의 사체는 폭포 쪽에 가장 가까웠으며, 이보다 상처의 개수가 적었던 나머지 두명의 사체는 우철원군보다 아래쪽에 있었다는 의견이다.

김 전 총경은 저체온증으로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발견 당시 우철원군의 두개골은 체육복 상의에 싸여있었다. 김영규군의 하퇴부에는 체육복이 매듭지어져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총경은 저체온증으로 추위에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상의를 뒤집어쓰거나 발목에 묶었다고 본다.

손 변호사는 “저체온증 사망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옷을 벗거나 들춘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저체온으로 인해서 체온조절 기능이 무너지면 오히려 열감을 느껴서 탈의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 매듭을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볼 증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종된 아이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에 대해 유족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BS에 따르면 유족 측을 대변하는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1991년 3월26일 당시 오전에 살짝 이슬비가 왔을 뿐, 기온은 영상 5도였다”고 반박한다. 또 와룡산은 해발고도가 300m 채 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평소 놀이터처럼 뛰어놀던 동네 뒷산으로 조난 당할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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