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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여성이란 이유로 얼마나 죽임당하는지…국가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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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이드’ 집계 않는 정부

[경향신문]

경향신문

혐오범죄 다신 없길…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6년을 맞은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서울여성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피해자 추모제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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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이후 끊임없는 살인
수사기관 범죄동기 분류엔
‘여성혐오’ 항목 여전히 없고
여가부조차 피해 통계 손 놔

유럽, 해마다 보고서 발간
중남미는 ‘형법 죄목’ 명시

한 여성이 서울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됐다. 이 사건 이후에도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살인사건은 매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현상)와 관련한 정부의 공식 집계가 없어 실태 파악은 아직도 요원하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범죄를 막으려면 페미사이드에 관한 제대로 된 통계를 토대로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엔은 2012년 ‘국제 여성폭력추방의날’을 맞아 페미사이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인 여성이나 소녀를 살해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초기에는 ‘묻지마(무차별) 범죄’로 명명됐다. 하지만 범인이 범행 동기로 “여성들에게 무시당했으며 그 화풀이를 피해자에게 한 것”이라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진 뒤 여성혐오 범죄로 평가됐다.

여성가족부는 2019년 12월부터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라 오는 6월 ‘여성폭력 관련 실태조사’ 결과를 처음 발표한다. 그러나 1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번 실태조사에 페미사이드 혹은 여성혐오와 관련한 살해 통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여가부가 3년 주기로 발표한 성폭력·성희롱·성매매·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도 페미사이드 피해 현황은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기관도 ‘여성혐오’가 동기인 살해사건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2020년 경찰청 범죄통계는 살인 동기를 생활비 마련, 보복, 가정불화, 우발 등 16가지로 분류했는데, 그중 ‘혐오’ 혹은 ‘여성혐오’ 항목은 없다. 대검찰청의 ‘2021 범죄분석’에 기재된 살인 동기 20개 항목에도 혐오 관련 항목은 없다.

정부의 공식 통계가 없다보니 민간부문이 여성 피해 살인사건 통계를 내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는 매년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 수를 집계한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분석한 이 통계로는 여성혐오 살인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다.

해외에서는 페미사이드 범죄 예방을 위해 관련 통계를 꾸준히 모으고 있다. 유럽성평등연구소(EIGE)는 페미사이드 범죄 목록을 구체화해 매년 관련 보고서를 낸다. 페미사이드 사건이 비교적 많이 일어나는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들은 페미사이드 범죄의 범주를 법적으로 정해놓고 이를 형법 죄목에 추가하기도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를 근거로 특정 현상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면서 “혐오범죄 통계를 통해 왜 이런 범죄가 나타났는지 살피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구조 개혁, 통합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혐오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일 때 국가의 자의적인 판단을 막기 위해 혐오범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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