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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환율은 금융위기 수준인데, 달러 유동성은 왜 멀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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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의 이게머니]환율 2009년 후 첫 1288원 마감

스와프 베이시스 마이너스 60선에서 양호한 상태

외화예수금 쌓여 있어…"달러자금 부족 상태 아냐"

美연준 양적긴축 시작땐 달러 유동성 팍팍해질 수도

이데일리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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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이후 또 다시 1300원에 육박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달러 유동성 지표는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팬데믹 위기때는 달러를 빌리는 스와프시장에도 불이 나면서 통화스와프를 통해 달러 공급을 확충해야 했지만 최근엔 환율 수준 자체가 높은 상황에서도 달러 유동성은 멀쩡하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긴축(QT)에 돌입하면 달러 유동성이 팍팍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위기 맞먹는 환율과 달리 달러 유동성 지표는 양호

17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대표적인 달러 유동성 지표인 원·달러 3년 만기 스와프 베이시스는 이날 마이너스(-) 65.5bp(1bp=0.01%포인트)로 작년 말(-63.5bp)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팬데믹 공포에 휩싸였던 2020년 3월, 환율이 1300원을 육박했던 당시엔 스와프 베이시스가 -170bp에 육박했으나 그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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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기 CRS와 IRS 금리 차이(출처: 마켓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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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프 베이시스는 달러를 원화로 교환할 때 지급해야 하는 원화 고정금리, 일명 통화스와프·CRS 금리와 이자율 스와프·IRS 금리(CD변동금리와 고정금리 간 이자율 교환시 지급하는 금리)의 차이를 말하는 데 스와프 베이시스 마이너스 폭이 커진다는 것은 달러 조달 여건이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0년 3월엔 CRS 금리(3년물) 자체가 마이너스로 가면서 달러를 빌리는 데 담보로 제공한 원화에 대해서까지 이자를 받기는 커녕 이자를 얹어줘야 했을 정도로 달러 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CRS 금리와 IRS 금리가 모두 상승하고 있다. IRS 금리는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에 CD금리가 오르면서 같이 상승하고 CRS 금리는 국고채 금리가 상승, 외국인이 달러를 원화로 바꿔 투자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덩달아 오르고 있다.

2020년 3월엔 해외 지수가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이 해외 지수를 기초로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선물 투자 마진콜(추가 증거금)로 인해 곳곳에서 달러를 구하느라 CRS 금리가 급락하면서 스와프 베이시스가 크게 확대됐고 그로 인해 환율이 급등했지만 최근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스닥지수가 4월에만 13% 넘게 급락하고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는 연초 이후 15% 넘게 하락, 증권사의 선물 투자 증거금이 늘어나고 있지만 작년 초 ELS 발행 관련 일정 비율 이상의 달러를 자체 확보하도록 증권사 달러 유동성 규제가 생기면서 달러 스와프시장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팬데믹 때는 증권사 마진콜로 외화자금시장(달러를 빌리는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외환시장(원·달러)으로 번졌으나 최근엔 환율이 달러인덱스, 위안화 약세를 따라 상승했을 뿐 외화자금 시장은 오히려 수급이 괜찮은 편”이라고 밝혔다.

절대적인 달러 조달 비용은 높아지고 있지만 달러 유동성은 괜찮은 편이란 분석이다. 현물환율과 선물환율을 교환할 때 소요되는 비용인 스와프 레이트는 2개월물까지 마이너스 폭이 커지면서 달러 조달 비용이 늘어났지만 내외 금리 차가 축소된 것이 반영된 것일 뿐, 달러 유동성이 악화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왑레이트 2개월물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한국 투자자가 스와프시장에서 원화와 달러화를 2개월 간 바꿀 경우 1년 뒤 원금이 깎인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스와프 레이트는 만기가 긴 쪽부터 마이너스로 바뀌기 시작해 2개월물까지 마이너스가 내려왔고, 1개월물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면서도 “스와프 레이트가 빠지더라도 내외 금리 차가 축소된 것만큼 빠진다면 달러 유동성엔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에 외화 예수금이 상당히 쌓여 있다는 점도 달러 유동성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3월 말 거주자가 외국환은행이 맡긴 달러 등 외화 예금은 927억1000만달러로 집계돼 역대 최대 수준(작년 11월말 1030억2000만달러)에 가깝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가 벌어놓은 달러가 많아 외화 예수금이 상당히 많은 데다 은행들도 달러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美 양적긴축 시작되면 달러 유동성 팍팍해질 수도

그러나 미국 통화긴축, 중국 경기 둔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이 원화 약세와 맞물려 자본 유출이 심화할 경우 달러 자금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선 연초 이후 15조원 넘게 순매도했고 채권 순투자 규모도 쪼그라들고 있다.

앞선 1, 2월까지만 해도 매달 30억달러 순투자했으나 3월과 4월엔 각각 5억4000만달러, 4억7000만달러로 순투자액이 크게 줄었다. 만기 2년 이하의 통화안정증권의 경우 금리 상승에 채권 수익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며 석 달 연속 순상환이 나타나기도 했다. 미매각에 발행액도 4월 7조원 수준으로 1, 2월보다 3억원 가량 줄였다.

국가 신용 위험도를 보여주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45bp 수준으로, 작년 말(21.7bp)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지는 등 50bp를 넘어섰던 2020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호주, 중국, 뉴질랜드 등도 CDS 프리미엄이 모두 상승했다. 해외에 나가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조달금리가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의 양적긴축이 변수로 떠오른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아직까지 글로벌 유동성이 직접적으로 국내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달러·엔 스와프 베이시스는 하락하면서 반응을 하고 있다”며 “연준이 양적긴축에 돌입할 경우 해외로 나간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달러 유동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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