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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전쟁·가뭄에 공급부족 장기화…밀 값 상승 끝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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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도 아마다바드의 한 방앗간에서 16일(현지시간) 인부들이 밀 포대를 옮기고 있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13일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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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에 이은 인도의 밀 수출 금지 조치가 글로벌 식량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치솟은 식량 가격에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정정 불안마저 부추기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유로넥스트 시장에서 거래된 밀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인도 정부가 전격적으로 내린 밀 수출 금지의 여파가 본격화된 것이다. 인도 정부의 조치에 대해 주요 7개국(G7)은 "인도의 밀 수출 중단이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위기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인도 현지 곡물 중개업자 등을 인용해 인도 정부의 밀 수출 규제로 항구 등에서 대기하다 수출길이 막힌 물량이 180만t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가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한 것은 자국 내 밀 가격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밀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다. B.V.R. 수브라마니암 상무부 차관은 전날 "인도 국내 밀 가격이 20~40% 올랐다"며 "현재 가격 상승은 공급 부족이나 갑작스러운 수요 급증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공황 반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도의 수출 금지 조치는 올봄 최고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밀 주요 생산 지역인 인도 북부가 이상 고온 피해를 입어 올해 인도의 밀 생산량은 지난해 1억900만t에서 최소 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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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밀 수입업자들은 새로운 공급처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세계 밀 수출의 4분의 1을 담당하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 수입이 막히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인도마저 밀 수출을 중단해 또 다른 대체 지역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인도산 밀의 주요 도착지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네팔, 터키 등이다. 전통적인 곡물 수출국인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호주도 밀 작황 부진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많은 밀을 수확하는 프랑스는 가뭄 위험에 처해 있다. 프랑스의 한 곡물 생산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최악의 경우 올 생산량이 예년보다 30~50%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50개 주 중 30개 주가 가뭄을 겪어 밀 생산·수출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지난해 가을 대홍수로 토양이 물에 잠기면서 뿌리가 썩어 들어간 밀이 많다는 점이 문제다.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유엔이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곡물을 국제 시장에 유통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구테흐스 총장이 서방의 제재로 수출길이 끊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칼륨 비료 수출을 돕는 대신에 우크라이나 곡물 선적을 일부 허용해줄 것을 러시아에 요청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WSJ에 "우리는 핵심 원자재의 유통 보장을 포함한 위기 대응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곡물을 철도 등 육로와 다뉴브강을 이용한 수로로 운송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미 인도를 포함해 많은 국가가 식품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밀과 밀가루를 포함한 일부 필수 식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몰도바와 헝가리, 세르비아도 일부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터키는 필요할 경우 정부가 밀가루 수출을 통제할 수 있게 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아르헨티나는 대두유 등에 붙는 수출세를 연말까지 33%로 2%포인트 올렸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보호주의 정책으로 돌아선 나라는 23개국에 이른다.

식량난에 따른 사회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식량 보조금 삭감으로 촉발된 이란의 시위는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로 커졌다. 스리랑카는 총리 사임 이후 내부적인 소요 사태 확산의 중요한 배경으로 식품 가격 상승이 지목되고 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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