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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성 선택은 축복" 50대 아버지가 눈물 흘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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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성소수자 험지' 대중문화에 움튼 다양성
청소년의 성별 선택 여정 그린 4부작 'XX+XY'
성소수자 배우 '이성애 로맨스' 흥행 우려 딛고
'브리저튼'2 영어 시리즈 역대 최고 시청시간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은 소수자 큰 의미"
인종차별은 안 되고, 성소수자는 혐오?
켄드릭 라마, 신곡서 비판
한국일보

4부작 단막극 'XX+XY'에서 재이(안현호·오른쪽)는 한 몸에 두 개의 성별을 지닌 청소년이다. 이 소수자를 연기하며 안현호는 16일 극에서 재이가 그랬듯 나를 사랑하고 믿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믿고 받는 법을 이 작품을 통해 얻고 배웠다고 말했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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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대중문화산업에서 성소수자에 견고하게 세운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안방극장에선 남녀 유전자를 모두 지니고 태어난 청소년이 성별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가 처음으로 제작됐다.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영국 배우 조너선 베일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브리저튼' 시즌2는 넷플릭스 역대 영어 시리즈 부문 최고 흥행작이 됐다. 성소수자 배우들이 시청자의 반감을 이유로 주류 로맨스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얼굴을 내밀기 어려웠던 그간 경향을 고려하면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상징적인 사건이자,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성소수자에 공격적이었던 힙합 시장에선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가 "우리 이모는 이제 남자"라며 신곡을 통해 트랜스젠더 이슈를 진지하게 꺼냈다.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앞두고 최근 국내외 대중문화시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날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일보

4부작 단막극 'XX+XY'에서 재이의 신생아 확인서. 비고란에 인터섹스 즉 두 성별이 한 몸에 공존하는 참남녀한몸으로 적혀 있다. tvN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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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성별'을 모두 지닌 청소년의 미래 찾기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를 그리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성애는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과거에 쓴 글로 구설에 오른 10일, TV에선 성별의 선택권을 화두로 던진 드라마가 방송됐다.

tvN 4부작 단막극 'XX+XY'에서 50대 아버지 정연오(윤서현)는 신생아실에서 "저 아이는 축복받은 아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아이는 한 몸에 두 개의 성별을 지닌 '참남녀한몸'(인터섹스)으로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버림받았지만, 정씨 부부를 새 부모로 만난다. 드라마는 그렇게 자란 정재이(안현호)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여정을 덤덤하게 쫓는다. 어딘가 존재할, 성별 선택을 앞둔 이들에 대한 연대다. TV 드라마에서 성소수자 문제가 파멸로 치닫거나 혹은 이색적이고 강렬한 로맨스의 소재로만 그간 다뤄진 것에 비춰보면, 다양성 존중에 한 발짝 다가간 시도다. 안현호는 16일 한국일보에 "극에서 아빠가 재이에게 한 '이거 하나만 기억해. 재이, 너를 너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거라는 거. 그 외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너를 이해하는 사람들하고만 살아가도, 세상은 충분히 잘 돌아가니까. 너는 그 안에서 선택하면 돼'란 말이 연기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드라마 '브리저튼2'에서 앤소니(조너선 베일리)가 비를 맞으며 케이트 샤르마(시몬 애슐리)를 품에 안고 있다. 이 드라마는 앤소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앤소니를 연기한 배우는 성소수자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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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배우' 흥행 필패? 편견을 부수다

성소수자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는 흥행하지 못한다는 건 이제 편견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브리저튼'2는 지난 3월 25일 공개된 뒤 4주 동안 한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6억5,626만 시간 동안 재생됐다. 기존 영어 시리즈 흥행 역대 1위였던 '브리저튼'1(6억2,549만 시간·2020)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브리저튼'2는 브리저튼 가문의 장남 앤소니가 샤르마 가의 자매와 엮이며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공개 전 업계에선 우려가 컸다. 앤소니 역을 맡은 베일리가 2018년 공개적으로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터라, 성소수자가 이성애 로맨스를 연기하는 데 시청자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베일리도 최근 영국 GQ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회적 실험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실험은 통했다. 문화 다양성을 향한 목소리와 필요성이 점점 사회적으로 커지고 있는 데다, 글로벌 OTT들이 다양성 증진의 밑거름이 된 게 성공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기획차장은 "성적 지향은 어디까지나 지향일 뿐 그 지향과 상관없이 배우가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 즉 연기를 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발언 금지가 어느 때보다 미디어 환경에서 중요한 이슈가 됐기 때문"이라고 이런 변화의 배경을 짚었다. 베일리뿐 아니라 '브리저튼' 시즌 1~2 속 샬롯 여왕을 연기한 영국 배우 골다 로슈벨도 성소수자다.
한국일보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35)의 신작 '미스터 모럴 앤드 더 빅 스테퍼스' 표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라마는 가시관을 쓰고 가족 그리고 소수자에 대해 랩을 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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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모는 이제 남자" 읊조린 '랩의 시인'

앨범 '댐'(2017)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삶의 고단함을 들춰 래퍼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라마는 13일 낸 새 앨범 '미스터 모럴 앤드 더 빅 스테퍼스'에선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 목소리를 선명하게 낸다.

그는 수록곡 '앤티 다이어리즈'에서 "우리 이모는 이제 남자"라며 "전도사여, 우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내가 종교 대신 사람을 선택한 날, 우리 가족은 더 가까워졌고 모든 것이 용서됐다"고 랩을 한다. 아울러 인종차별엔 분노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동료 래퍼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호모', '호모', '호모', 우리 다 같이 외쳐보자. 다만 네가 백인 여자가 '깜둥이'라고 부르는 걸 허락한다면". 이 곡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라마는 과거 동성애 공포증을 고백하면서 설득력 있게 일부 교회 등을 비판하고 있다"며 "주류 힙합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평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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