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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2022년 5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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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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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건
우리가 지금의 상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1960년 5월 엇갈렸던
함석헌과 장준하 입장선
그건 ‘선택’ 문제가 아닌
‘결단’ 문제였을 것이다

2022년 5월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력을 지지함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을 어떻게 만든다는
‘결단’의 표현이어야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도 생각의 갈래를 잡지 못하는 유권자가 많다. 또 지지 정당이 있는 유권자 중에서도 확신이 없는 이들이 많다. 그 중요한 원인 하나는, ‘도대체 이번 선거의 시대적 맥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갈피를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어도, 우리들의 정치적 선택은 항상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나라가 필요한지의 맥락과 흐름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견해에 기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특히 이번 대통령선거를 전후하여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지도에도 해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것인지라 많은 이들이 이러한 방향감각을 잃고 당혹해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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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어제는 5월16일이었다. 나는 1960년대 초 4·19혁명에서 장면 정권을 거쳐 5·16쿠데타를 거쳐 박정희 정권으로 넘어가는 국면을 참조해 보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 두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대략 공유하고 있었던 의식의 흐름을 기술한 것일 뿐이며, 엄밀하게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선거 앞에서 시대적 맥락에 대한 방향감각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생각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1960년 4월19일의 혁명은 무능과 부패와 독재로 일관한 시대착오적인 이승만 정권을 거부했던 전 국민적 합의였다. 하지만 그 ‘혁명정신의 계승자’를 자칭하며 등장한 민주당 장면 정권은 이러한 거사를 일으켰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하고 장기적인 대규모 경제개발계획을 준비하여 발표했지만, 이를 실행할 만한 집행력은커녕 현상악화조차 막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일관하였다. 뿐만 아니다. 민주주의의 강화를 내걸고 국회를 양원제로 개편하고 각급 지자체 의회를 신설하였지만, 이는 상황의 혼란을 틈타 한자리를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정치 낭인들의 각축전을 낳았고 여당 또한 지독한 계파 싸움으로 들어간다. 과거 청산을 내걸었지만 이 혼란 속에서 거의 흐지부지되어버린다. 결국 많은 국민들이 보기에는 당시의 상황이라는 것이 자유당이라는 ‘구마적’이 물러간 자리를 민주당이라는 ‘신마적’이 차고앉는 선수교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능과 부패와 ‘혁명정신을 내세운 정상배’들의 아수라장에 국민들은 신물을 내기 시작했고, 다음해 5월16일 박정희 소장 등 일부 군인 집단이 움직인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의 자료를 보면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은 반대와 찬성 양쪽 모두 10명 중 4명꼴로 팽팽했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난데없이 뛰어든 정치 군인들의 쿠데타가 분명했고 함석헌처럼 초기부터 반대를 표명한 이들도 있었지만, 당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던 것이다. 군인들은 훈련과 조직을 갖춘 집단으로서, 번지르르한 말만 세우는 정치인들과 달리 최소한 무언가 확실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유능함을 갖춘 세력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이들이 이 최악의 혼란 상태에 대해 일정한 질서를 회복해주고 물러선 뒤 그 기반 위에서 다시 정상적인 민주 정치를 재건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훗날 박정희 정권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장준하와 그가 이끌던 ‘사상계’ 또한 권두언과 사설에서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인정하고 지지했던 것이 이러한 맥락이었다.

1960년 상황은 작금에 많은 시사점

이후의 사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박정희 군사 세력은 급속한 산업화 및 경제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뿐만 아니라 쿠바 미사일 위기와 베트남 전쟁으로 급변하는 국제 질서를 배경으로 장기 집권과 독재 정권 수립에 성공한다. 이후 몇 십년의 긴 한국 정치와 사회경제 시스템을 결정하는 틀이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2016년의 탄핵 사태 또한 무능과 부패와 시대착오적 작태를 보였던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계승자’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 또한 커다란 실망을 안겼다.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지만 혼란만 계속되었을 뿐 되레 부동산 폭등이라는 사태까지 낳으면서도 잘될 것이라는 장담과 자기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책임회피만 내놓을 뿐이었다. 적폐청산을 내걸었지만 대체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는 체감이 없었다. 되레 벌어진 일은 대대적인 ‘내로남불’과 권력을 향한 ‘거대한 줄서기’였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온갖 진보와 도덕의 미사여구를 휘둘러댔지만 그 실제의 행동은 다른 지배세력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자리와 이권에 있어서 엄청나게 세를 불리게 되었고, 이에 기존의 정치 낭인들은 물론 ‘시민사회’ 세력 전체가 그와 유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무능과 모순적 언행과 ‘거대한 줄서기’의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이것이 예전의 지배세력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교체되는 사태일 뿐 세상은 똑같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좌절과 분노가 일어나게 되었다.

드디어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지고 난데없이 후보로 뛰어들어 정권 교체까지 벌어졌다. 선거에 나타난 표심은 사실상 47 대 47로 찬성과 반대가 동률이었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권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이들도 똑같이 많았던 셈이다. 검찰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조직이자 세력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이들은 ‘내로남불’ 말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과 달리 그래도 최고 엘리트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 아닌가. 일단은 이들이라도 나서서 이 대혼란의 정치 사회 상황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오히려 ‘촛불혁명’의 정신을 살리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47%의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 달리면 조만간 안 달려도 될 것

이후의 상황 전개는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예측도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산업 패러다임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과제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구적 질서의 격변이라는 새로운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향후 몇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는 물론 사회 및 경제 시스템의 틀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어쩌면 집권세력 스스로도 모를 수 있다. 정권을 잡은 새로운 세력은 과연 ‘상식과 자유’가 보장되는 질서를 회복하는 동시에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심모원려의 결정을 내리고 과단성 있게 실행하는 유능함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무능과 부패와 ‘내로남불’을 선보이면서 더 큰 혼란으로 나라를 빠뜨릴 것인가? 그렇다면 일단 지금으로서는 현 집권 세력이 전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아니면 이 ‘지도에도 해도에도 없는’ 우리의 행로가 더 길을 잃지 않도록 야당을 지지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의 상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해 나가느냐일 수밖에 없다. 1960년 5월 하순의 시점에서 입장이 갈렸던 함석헌과 장준하를 두고 먼 훗날의 역사가들이야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시점을 현재로 살고 있었던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였을 것이다. 2022년 5월 하순을 ‘현재’로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력을 지지하든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단, 그 논리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한국 사회를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가겠다는 ‘결단’의 표현이어야 한다. 피해야 할 반면교사는 시인 김수영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는 결국 난데없이 진나라 시인 도연명을 흉내내며 고향으로 엄마 배 속으로 숨어 들어가며 ‘신귀거래’ 연작시를 발표한다. 차라리 나는 엄혹한 일제시대를 살았던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를 기억한다. 막다른 골목을 미친 듯 달리는 아이 13명 중에는 무서운 얼굴도 있고 또 무서워하는 얼굴도 있다. 괜찮다. 계속 달려주기만 한다면, 길은 뚫린 골목이 될 것이며, 조만간 미친 듯 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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