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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비백인’ 향한 무차별 총격, 배후엔 “대체될지 모른다”는 거대한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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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총에 맞서는 꽃들의 행진 “인종 혐오를 멈춰라”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버펄로시에서 시민들이 인종 혐오를 중단하라고 외치며 무차별 총격사건이 일어난 슈퍼마켓 현장으로 꽃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전날 이곳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10대 청소년의 총격으로 10명이 사망했다. 버펄로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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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뉴욕주 상점서 10명 사망
인종주의 테러로 확실시돼

“유색 인종이 백인 문화 절멸”
‘거대 대체 이론’ 영향받은 듯
극단적 주장의 주류화 ‘문제’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슈퍼마켓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명을 숨지게 한 페이튼 젠드런(18)의 범행 동기가 인종주의였음이 확실시되면서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비백인 이민자들로 백인 중심의 유럽 인구와 문화를 대체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이론은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대형 인종주의 테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배후로 지목됐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젠드런이 인터넷에 올린 180쪽 분량의 선언문 등을 보면 거대 대체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시된다고 15일 보도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 논객 르노 카뮈가 2011년 쓴 책의 제목에서 따왔다. 카뮈는 글로벌 엘리트 집단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여 프랑스 그리고 백인 중심 유럽 인구와 문화를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카뮈는 일본이 중국의 문화로 대체돼선 안 되는 것처럼 백인의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으로 대체돼선 안 된다는 논지를 펼침으로써 백인들이 인종주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2017년 8월 백인 우월주의자, 네오 나치, 인종주의자 등이 일으킨 폭동 사태에 등장했던 구호 중 하나도 ‘당신들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였다.

젠드런은 선언문에서 미국의 백인 문화가 절멸 위기에 빠졌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면서 유색인종은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진보세력이 교육을 통해 백인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했다. 이런 논지는 젠드런이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사건의 범인 브렌턴 태런트가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선언문과 겹친다. 스웨덴 소재 싱크탱크 칼리파 일러 연구소는 젠드런의 선언문은 태런트의 선언문을 28% 표절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2019년 8월 미국 텍사스주 국경 도시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20명을 죽게 한 패트릭 크루시어스 역시 히스패닉이 텍사스의 지방과 주 정부를 장악할 것이라면서 인종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언문을 남긴 바 있다.

문제는 거대 대체 이론에 기반한 주장이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뿐 아니라 주류 정치인과 언론 매체에서도 공공연하게 언급된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중도우파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발레리 페크레스는 지난 2월 지지자 집회에서 프랑스가 ‘거대한 대체’를 당할 운명이 아니라며 모두 들고일어나 맞서자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공화당 스콧 페리 하원의원은 지난해 4월 하원 외교위 소위 청문회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미국 태생 미국인들을 대체함으로써 이 나라의 정치 지형이 영구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로 극우 음모론들을 즐겨 인용하는 터커 칼슨은 거대 대체 이론에 대한 진보 진영과 기성 언론의 비판을 히스테리라고 공격하고 있다.

오슬로대의 심리학자 밀란 오바이디는 워싱턴포스트에 “이런 철학은 더 이상 인터넷 주변부와 가장 극단적인 집단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것은 주류가 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정치인들이 비슷한 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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