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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산재적용 첫발 뗐지만…43만명 배달기사 여전히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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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류 2.0 이젠 안전 ◆

매일경제

배달 기사들이 배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차량 사이를 넘나들며 운전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업무 중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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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문화가 확산되면서 배달 종사자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배달 라이더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를 노무 제공자로 재정의하면서 이들에게 일정한 소득과 노동시간을 규정한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의결했지만 입직 신고 문제, 보험금 이중 배상, 이륜차 안전 대책 등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43만명에 달하는 배달 노동자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서 질주하고 있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이 없어 국회 본회의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이 수정 없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새 산재보험법은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22일 '플랫폼 배달업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방향 관련 브리핑'에서 "플랫폼 배달업을 안전한 일자리, 일하다가 다치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125조에 따라 배달 기사를 비롯한 특고도 산재보험 가입 대상자이지만 일반 근로자와 다른 '특고 전속성' 요건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전속성'이란 두 군데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라이더가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이 115만원 이상이거나 93시간 이상을 일해야 산재보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준을 의미한다. 근로자인지가 애매한 특고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에 가까운 전속성이 있는 경우에만 산재를 보상해주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규정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산재보험료를 내고도 산재를 적용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해 노동계를 중심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가 적극적인 법 개정 의지를 보인 이유로는 종사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근로자 중 특고는 56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배달 기사는 42만8000명이었다.

법 개정에 대한 각계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대형 플랫폼 업체들은 배달 라이더들의 보호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플랫폼 분야 중소 업체·신규 진입 업체들은 업체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면 중소 업체들이 기존 대형 업체들과 경쟁하기 어렵고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법이 개정되더라도 적용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고 언급한다. 현재 산재보험은 가입자와 기업이 공동 부담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배달 기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입직 신고를 해야 하고, 입직 신고를 한 기업이 배달 기사와 함께 산재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여러 앱에 동시에 등록해 콜 배정을 받아 일하는 배달 기사의 업무 특성상 어떤 기업으로 입직해야 하고, 어떤 기업이 산재보험료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지 등 논란이 예상된다. 한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서로 같은 직종에서 노무를 제공할 경우 중복 입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배달 기사가 여러 업체의 일을 할 때마다 입직과 이직 신고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밝혔다.

배달 업무 특성상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 현장 등과 달리 배달 중 사고는 교통사고가 주를 이루는데, 이 가운데 배상이 허용되지 않는 배달 기사는 현행법상 산재 신청과 상대방의 교통사고 보험 처리 중 한 가지 보상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산재 신청보다 교통사고 보험 처리가 배달 기사에게 더 유리해 산재를 신청하기보다는 보험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전속성을 없애는 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처 강화가 더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배달 기사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이륜차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 및 부상 건수도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각각 410명, 1만8621명이던 이륜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2019년 사망자 422명·부상자 2만3584명, 2020년 사망자 439명·부상자 2만3673명으로 늘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고용노동부에서 배달 플랫폼 업체의 배달 기사 56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가운데 교통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약 47%(2620명)로, 평균 2.4회의 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 원인으로는 상대방 또는 본인의 교통법규 위반(1909명·73%)이 가장 많았고, 날씨 상황(333명·13%)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사고에 대비해 이륜차 안전 대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 차량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자동차에만 실시됐던 안전검사를 이륜차에도 신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안전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오토바이 면허를 자동차와 별도로 취득해야 하는데 한국은 운전 면허만 있으면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다"며 "면허 취득 과정에서 안전 교육만 강화해도 사고 확률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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