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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李총재 '빅스텝 발언'에 韓銀도 진땀…"원론적 입장"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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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추경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찬을 겸한 회동에 앞서 두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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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던진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한마디에 채권시장이 출렁거렸다. 이 총재는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추경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와 조찬 회동을 한 직후 취재진과 만나 "향후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달 26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앞두고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예상한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앞서 이 총재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을 통해 밝힌 "한국에서의 빅스텝은 필요성이 낮다"는 입장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측면에서 시장이 요동쳤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지표금리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 총재의 발언이 알려지자 오전 장중에 전 거래일보다 17.5bp(1bp=0.01%포인트) 오르며 3.082%까지 찍었다. 이후 한은이 "원론적 입장"이라는 고위 관계자의 해명을 내놓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한때 3% 밑까지 급락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국제유가 상승이나 환율뿐 아니라 최근 인도의 밀 수출 금지 조치와 같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을 통해 연내 기준금리 수준을 더욱 높여 잡는 분위기가 우세해졌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오후 장 후반에 다시 상승세를 타며 13.5bp 오른 3.046%에 거래를 마감했다. 나흘 만에 3%대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10년물 금리는 5.6bp 오른 3.277%에 마감했다. 달러당 원화값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 종가보다 0.1원 내린 1284.1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각각 5번 남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추가로 2회 더 빅스텝을 한다는 전제하에 미국 기준금리는 연말까지 2.75%(상한 기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도 당초 2~3회에서 3~4회로 인상 횟수를 늘려 현재 1.50% 수준에서 2.25~2.50%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 높은 물가 부담으로 새 정부의 대응이 적극적일 공산이 커진 만큼 한국 기준금리 압력도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당장 5월과 7월까지는 매회 인상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중앙은행 수장이 내놓은 발언의 여파로 시장이 들썩이자 이 총재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는 평가도 나왔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연준도 그렇고 중앙은행 총재는 '페드스피크(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오는 애매모호한 어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오늘 발언이 시장에 시그널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추 권한대행과 이 총재는 이날 조찬 회동에서 경제·금융 현안에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재정당국과 주요국 긴축 기조에 맞춰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통화당국의 엇박자 논란을 불식하는 데 애쓰는 모습이었다.

추 권한대행은 대규모 추경 편성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우려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번 추경은 이전 지출 중심으로 가서 물가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물가나 거시 안정과 관련해 한은과 적절한 정책 조합을 만들어 나가며 종합적인 물가 안정 대책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 공조 방식으로 추 권한대행과 이 총재는 재정·통화당국의 공식 협의체를 보강하기로 했다. 현재 공식 협의체로는 거시정책협의회와 가계부채협의회, 외환·금융대책반 회의 등이 있다. 분야별 간담회나 세미나 등 실무진 간 소통 수단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동조하기보다는 국내 여건에 맞게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이날 발표한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률이 더 높고 경기 회복세가 더 강한 미국과 유사한 정도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우리 경제에 요구되는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KDI는 한국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 경우와 미국의 기조에 동조할 경우를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상황에서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것이 사회후생 관점에서 우월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만약 한국의 물가가 더 급증하고 경기가 과열될 우려가 있다면 빅스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지만 그 이유는 한국 경제의 내부적인 상황 때문이지, 미국이 올려서 따라 올리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날 빅스텝 가능성을 언급한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선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겠다는 발언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병준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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