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1960년대 미국서 낙태 도운 ‘더 제인스’, 그들은 누구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더 제인스(The Janes) 멤버들로 왼쪽부터 마사 스콧, 잔 갈라처-레비, 애비 페리서스, 쉴라 스미스, 매들린 슈벵크. 1972년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더 제인스가 남긴 마지막 단체 사진. 선댄스 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인의 전화번호가 맞나요?”

1972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공중전화 부스 안. 당시 21세의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에일런 스미스 씨는 신문 광고에서 본 ‘제인(Jane)’의 전화번호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이윽고 전화기 너머로 자신을 제인이라고 소개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려움에 떠는 스미스 씨에게 임신몇 주차인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아파트 주소를 소개하며 전화를 끊었다.

14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내리기 전 여성들의 낙태 시술을 도왔던 단체 ‘더제인스(The Janes)’를 소개했다. 1969년 시카고에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전업주부, 직장인, 학생 등 7명의 여성이 활동했다.

스미스 씨는 전화로 제인이 소개해 준 아파트를 찾았다. 낙태 시술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들은 스미스 씨는 아이를 지웠다. 그는 “정말 구체적인 정보를 들었고, 안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후 본인이 직접 더 제인스의 멤버로 합류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여성들의 임신 중절 시술을 도왔다.

○ ‘더 제인스’의 기원

더제인스는 1960년대 미 전역을 휩쓴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1969년 당시 미 50개 주에서 낙태가 합법이었던 주는 4곳에 불과했다. 더 제인스 멤버 중 한 명인 로라 캐플런 씨는 “1960년대 시카고의 괜찮은 아파트 월세가 150달러였는데 불법 낙태 시술비는 평균 500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캐플런 씨는 “우리는 전국의 다른 여성 해방 단체들처럼 여성들이 불법 낙태 시술로 고통 받는 것을 돕고 싶어 모였다”고 했다. 특히 더 제인스의 특별한 점은 낙태 시술을 할 경제적 능력이 없던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 여성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게 된 점이 라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는 것을 돕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나중엔 직접 의사들과 연결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른 멤버 마사 스콧 씨는 불법 낙태 시술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라고 했다. 스콧은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고 가난한 흑인 혹은 라틴계 여성이었다. 그들은 낙태가 합법인 주로 이동할 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의대생으로 더 제인스의 멤버가 된 앨런 바일랜드 씨는 “불법 시술로 인해 방광, 질, 자궁 등에서 화학적 화상을 입은 것을 숱하게 봤다”며 “일부 여성들은 패혈성 쇼크를 앓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72년 경찰 체포의 밤

1972년 5월 3일 점심. 더 제인스가 활동하던 아파트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시카고에서 불법이었던 낙태 시술을 제공한다는 혐의로 아파트에 있던 모든 사람을 체포했다. 더 제인스 멤버 7명과 시술을 받으러 온 환자 6명이었다.

경찰이 아파트를 휩쓸자 더 제인스 멤버들은 서둘러 의료 기기를 창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환자 정보가 담긴 용지들을 지갑에 숨기거나 입에 넣고 삼켰다. 집에 있던 모든 사람은 시카고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7명의 제인은 낙태 혐의로 기소됐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1973년 1월 22일.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내리면서 더 제인스 멤버들에 대한 모든 고소가 취하됐다. 낙태 시술이 합법화되며 더 제인스 멤버들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달 2일 유출된 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미스 씨는 “해당 문건은 시대를 역행한다. 지금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위해 싸워온 모든 시간이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고 분노했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최종적으로 뒤집는다면 더제인스 같은 단체가 다시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