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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해열제도 없는데…김정은 '핵돌진 10년'이 부른 코로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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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5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의약품들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1면 보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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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뚫리기 시작하자 북한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백신은 물론 제대로 된 해열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더 큰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결국 보다 근본적 원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집권 10년 동안 주민의 안전 및 생명권보다 핵‧미사일 개발을 우선시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런 인권 경시가 계급이나 성분을 가리지 않는 팬데믹이라는 촉발제를 만나 대형 재난으로 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16일 북한 매체들은 14일 18시부터 하루 사이 유열자 39만 2920여명이 새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진단 키트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확진자나 감염의심자 대신 유열자로 표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4월 말부터 전국적 유열자가 121만 3550여명 나왔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이제 와 “가정에서 준비한 상비약품들을 본부 당위원회에 바친다”(14일 정치국 협의회)며 ‘애민 정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그간 북한은 주민을 위한 기본적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보다 핵‧미사일 개발에 더 큰 돈을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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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ICBM 발사 명령을 하달하고 현장에 참관해 발사 전과정을 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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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거리 미사일 발사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은 한 번 쏠 때 드는 비용을 100만~150만 달러(약 12억~18억원)으로 추산한다. 장거리 미사일까지 포함하면 10년 동안 미사일에 천문학적 액수를 들였단 이야기다. 김정은은 자위권 확보를 우선적 명분으로 삼았지만, 이 중 일부라도 주민 건강이라는 인권을 위해 투자했더라면 어땠겠냐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제수용소 운영 등 각종 권리 침해 외에 건강권 경시 역시 심각한 인권 유린이라는 점이 코로나19를 통해 다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 및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그간 핵‧미사일 무력 증강에만 혈안이 돼 기본적인 의료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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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5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전국에서 총 39만2920여 명의 신규 유열자(발열자)가 새로 발생했으며 8명이 사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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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해 북한의 곡물 부족량은 86만t(유엔식량농업기구(FAO)·세계식량계획(WFP) 지난해 7월 보고서)으로 추정될 정도로 고질적 식량난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북‧미 협상 재개 조건으로 주민 생필품이 아니라 ‘선물 통치’ 필수품인 고급 양주와 양복 등을 요구했다.(지난해 8월 국정원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지금 북한 주민들은 상비약조차 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동신문은 14일 보도에서 경증 발열환자 치료법으로 “금은화를 한 번에 3~4g씩 또는 버드나무 잎을 한 번에 4~5g씩 더운 물에 우려서 하루에 3번 먹는다”는 민간요법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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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인 류영철은 16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14일 오후 6시 현재 각 지역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발열자 수를 상세히 소개했다. 사망자 42명 중 약물부작용은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7명으로 나타나 북한 주민들이 의약품이 없어 확증되지 않은 약물치료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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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와중에도 책임은 각 기관에 돌아가는 모양새다. 오히려 부각되는 것은 이에 대한 김정은의 ‘격노’다.

16일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15일에도 당 중앙위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소집하고 “국가가 조달하는 의약품들이 약국을 통해 주민들에 제때에, 정확히 가닿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각과 보건부문 일군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말로만 외우면서 발 벗고 나서지 않는 데 기인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매체들은 김정은이 “엄중한 시국에조차 아무런 책임도,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중앙검찰소 소장의 직무태공, 직무태만행위를 신랄히 질책했다”고도 전했다. 국가 정책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를 집행하는 관료들의 기강 해이가 문제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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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5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의약품들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1면에 보도했다. 그는 의약품 공급 실태 점검을 위해 직접 약국을 현지지도하기도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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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김정은이 자신의 책임을 시인할 경우 ‘최고존엄’으로서의 지위에 흠집이 생기는 딜레마도 작용했을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열린 열병식 연설에서 “단 한 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하니 이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직접 북한이 코로나 청정지역임을 강조했는데, 본인의 실정으로 상황이 급속히 악화한 걸 순순히 시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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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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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북한 당국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등 국제사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북한이 ‘SOS’를 친 상대는 중국이다. 지난해만 해도 북한이 중국산 백신은 한사코 거부하며 화이자나 모더나를 요구했던 점을 고려하면 다소 모순적이다.

여기엔 중국이 우방국이라는 점 외에도 정상적 외부 지원에 따라붙는 감시 및 확인 절차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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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백스(COVAX·국제 백신 공동 구입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백신 지원을 위한 ‘현장 모니터링’이 필수다. 구호 요원들이 함께 현지에 가서 백신 운송, 보관 등이 적절히 이뤄지는지 확인하고 누가, 어떻게 맞는지도 현장에서 점검한다.

코로나19 백신은 보관 온도를 조금만 잘못 맞춰도 부작용이나 효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마련해둔 제도적 정치다. 의료 체계에 대한 전반적 점검도 사실상 함께 이뤄진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내부의 열악한 사정이 노출되는 것을 꺼릴 수 있다. 또 평양 등 특정 지역이나 지도층 등 특정 계층 우선이 아니라 전 지역 주민들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백신이 배분되는지 외부 인사들이 확인하는 과정을 우려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정권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두는 셈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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