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팀장 칼럼] 위기의 한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한국전력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하자 ‘한전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인수위는 ‘민영화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즉각 부인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한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전 혁신의 첫 단추는 친정부 성향의 고위 공직자가 돌아가며 사장을 맡는 관행을 끊어내는 것이다. 연료비 급등에도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해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한전의 원자력발전 전문 자회사 한국수력원자력이 탈원전에 앞장서는 등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한전 경영 폐해는 대부분 이런 관행에서 비롯됐다.

한전이 1분기에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연결기준)을 기록한 것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연료비는 치솟았는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 경영인도 연료비와 전기요금에 좌지우지되는 한전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대규모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주기만 바라보며 사실상 영업손실을 방치하는 지금의 경영 방식은 곤란하다. 4월 말 기준 한전의 차입금이 51조5000억원까지 불어나면서 이마저도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이런 경영 위기에 긴축하고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전은 인력을 늘리고 연봉을 인상했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 6곳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력을 5만명이나 늘렸다. 인력 감축 등을 통해 공공기관 효율화에 나선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대조적이다.

경영 악화에도 최근 2년간 한전은 약 700만원, 한수원은 약 3000만원씩 임원 연봉을 인상했다. 수조원의 적자를 내도 한전 사장은 매년 정부 경영평가에 따라 1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챙겨간다. 이런 전력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인건비 과다 지출은 적자 누적과 부채 증가로 이어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국전력 직원의 비위는 매해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직원 비위를 숨기고 감싸준다.

한전의 혁신은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유지하면서 역량은 강화하고 체질 개선을 통해 경영 효율성은 증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돼 비대해진 조직을 정비하고 미래 산업을 발굴·투자하고 성과 중심의 경영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없는 공직자 출신에게 이런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민간에 한전의 경영을 맡기면 공공성이라는 공기업의 본분이 훼손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지속 가능 경영과 사회적 책임까지 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삼성, SK, 현대차, LG 등 세계에서 손 꼽히는 글로벌 기업을 보유한 국가다. 그만큼 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본업만 충실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젠 기업이 생존하려면 경쟁사보다 우월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이런 글로벌 경영 환경에 민감한 전문 경영인이 한전 사장을 맡더라도 성과주의에만 천착해 공공성을 외면할 가능성은 적다는 뜻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단기 성과에만 집착했다면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지금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산업은 탄생할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전이 혁신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정부가 만든 가짜 혁신의 틀에 자신의 몸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한전은 한국과 미국 증시에 상장돼있는 상장사다. 국내 어떤 기업보다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을 해야 한다.

이젠 진짜 혁신을 할 때다. 우수한 전문 경영인을 사장으로 발탁해 한전에 민간 혁신 DNA를 심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처럼 정치 유불리를 따져 전기요금을 올리고 내리는 ‘에너지 정치화’를 막겠다는 취지에서도 전문 경영인 선임은 의미가 있다.

[송기영 산업부 재계팀장]

송기영 기자(rcky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