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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가난한 사람과 토론 안한다” 루나 창업자 권도형… 전문가 비판은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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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권도형 대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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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된 ‘루나(LUNA)’를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영국의 한 경제학자의 스테이블 코인 알고리즘을 둔 의구심에 대해 한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가격이 10만원에서 1원으로 폭락한 루나의 상장폐지로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그는 루나와 테라 폭락 가능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5일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했다. 영국은 바이낸스의 영국 내 영업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다.

루나와 테라가 폭락하기 일주일 전, 한 외국 소셜미디어(SNS) 방송에 출연한 권 대표는 ‘가상화폐 미래’를 묻는 질의에 “암호화폐의 95%는 사라질 것이다”라면서 “그런 망해가는 회사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권 대표의 조롱은 자신한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권 대표는 미국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엔지니어에서 경력을 쌓고,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를 설립했다.

테라폼랩스는 독특한 알고리즘에 기반해 코인을 발행한다. 테라는 달러 등 화폐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이다.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가 등락하는 다른 코인에 비해 스테이블 코인은 변동성이 적다는 기대로 주목받았다. 1달러를 예치하면 1달러에 해당하는 코인 1개를 발행하는 방식이다. 즉 테라는 미 달러와 일대일 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코인 루나의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일대일 교환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1테라의 가치이고 1달러 보다 내려갈 경우 테라 보유자는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예치하고 대신 루나를 받는다. 1달러를 웃돌면 테라를 루나로 사들여 소각한다. 이와 함께 테라폼랩스는 루나 등 암호화폐를 예치할 경우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이 같은 구조를 두고 일각에서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다이, 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이 현금이나 국채 등의 안전자산을 담보로 하지만 루나와 테라의 거래 알고리즘은 폰지 사기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등 영향으로 떨어지면서 테라도 1달러 밑으로 하락하자,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으로 발행했다.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테라의 유통량을 줄임으로써 테라의 가격을 다시 1달러에 맞추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루나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루나의 가치는 폭락했다. 루나는 이달 1일까지만 해도 10만원대에 거래됐지만 6일쯤부터 급락하더니 9~10일 99% 넘게 폭락했고, 이날 오후 1원을 기록했다. 결국 테라와 루나를 모두 투매하는 뱅크런이 나타났다. 권 대표는 코인 폭락을 해결하기 위해 15억 달러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테라폼랩스가 암호화폐 업계의 여러 기업과 접촉했으나 자금 조달에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권 대표를 비롯한 테라 측이 “방법을 찾겠다”며 폭락 방어에 나섰지만 의미있는 진척은 없었던 것이다.

권 대표는 과거 루나의 근본 구조에 대한 비판에 ‘바퀴벌레’ ‘바보’라고 대응한 적도 있다.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암호화폐의 엘리자베스 홈스(전 테라노스 CEO)”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소송과 형사 고발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그는 “(권 대표가) 함선에 구멍을 낸 뒤 침몰하는 배의 구멍에 쏟아 부을 자본을 찾고자 했다”고 꼬집었다.

루나는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와 국내 거래소에서 퇴출 결정을 받았다. 12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루나와 테라USD(UST)를 상장 폐지했다. 국내 1·2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은 13일 오후 공지를 통해 루나에 대한 거래지원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업비트는 20일, 빗썸은 27일부터다. 고팍스도 16일부터 루나 거래지원을 종료한다고 했다.

이번 폭락 사태로 권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루나 사태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며칠간 UST 디페깅(1달러 아래로 가치 추락)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테라 커뮤니티 회원과 직원, 친구, 가족과 전화했다”며 “내 발명품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고통을 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비롯해 연관된 어떤 기관도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얻지 않았다”며 자신이 폭락 사태 위기에 루나와 UST를 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도 패닉에 빠졌다. 한때 410억달러(약 52조원)까지 불어났던 한국산 코인 루나의 시가총액이 99.9% 빠지자, 투자자들 절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4대 코인 거래소에서 루나 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천만원을 잃었다. 죽고 싶다”는 글도 게시됐다. 마포경찰서도 코인 폭락으로 순찰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에는 루나에 20억 가까이 투자한 인터넷 방송 BJ가 발행업체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난 후 경찰에 자수하는 일도 발생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규제 강화를 외쳤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지난해 암호화폐는 “서부의 황무지(Wild West)”라고 비유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암호화폐가) 부정, 사기, 남용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행동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금융당국도 이런 사태가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소비자 보호를 담은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내년 제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장윤서 기자(pand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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