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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카르멘’… 전설적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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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 별세한 전설적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 1958년 이탈리아 잡지 라디오 코리에레와의 인터뷰 때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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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전설적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Berganza·89)가 13일(현지시각) 마드리드에서 별세했다.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맡았던 역할들, 특히 비제의 ‘카르멘’으로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명성을 얻었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당대에 이미 전설적 존재가 된 성악가였다. 저음에서 부드럽고 온화하며 고음에서 경쾌하고 재빨라서, 대단히 화려하고 빠른 장식음을 고도로 기술적으로 구사하는 콜로라투라(coloratura) 메조 소프라노였다. 독일 가곡(lieder)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노래들, 스페인의 전통 음악극 사르수엘라(zarzuelas)와 오페라 아리아, 집시 발라드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도 사랑받았다. 카라얀은 그를 “금세기 최고의 카르멘”이라고 상찬했다.

베르간사는 가족이 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고요히 떠나고 싶다. 공식 발표나 알림은 원치 않으며, 이 세상에 올 때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떠날 때도 그러하길 소망한다”고 했다. 엘 파이스는 “그녀가 떠나면서 오페라의 역사에 거대한 공허의 빈 자리를 남겼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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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별세한 전설적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89).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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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3월 16일 스페인 내전 발발 전야에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그녀가 수녀가 되길 원했고, 왕립 마드리드 컨서버토리에서 피아노, 오르간과 성악을 배워 수도원 합창단이나 가톨릭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길 바랬다. 하지만 베르간사의 성악 재능은 부모의 종교적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뛰어났다.

1954년 성악으로 음악원 1등상을 수상했고 1955년엔 첫 콘서트를 가졌다. 1957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음악 축제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로 데뷔했고, 같은 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도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 해 영국 글라인드본 극장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이어, 이듬해 런던 코벤트 가든 무대에 올랐다. 1959년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카라얀의 지휘 아래 데뷔했다. 1967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역할로 데뷔했다.



1977년 에딘버러 킹스 시어터에서 처음 ‘카르멘’으로 무대에 섰다. 카르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오페라의 기반이 된 중세 소설들을 연구하고, 집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스페인 남부에서 여러 주 동안 동굴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했던 일화도 널리 알려졌다.

오페라 무대에서 검고 커다란 눈을 빛내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것은 물론, 배역에 대해선 매우 엄격히 절제되고 분석적인 접근을 했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라 체네란톨라’를 공연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정확히 악보에 쓰인 완벽한 속도감과 정교한 박자로 노래한다”고 평했다.

1992년 ‘카르멘’의 실제 배경이 된 스페인 세비야의 담배 공장에서 멀지 않은 마에스트란사 극장에서 공연한 ‘카르멘’이 그의 마지막 오페라 무대였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출연을 그만둔 뒤에도 70대까지 리사이틀을 이어갔다. 1992년 세비야 엑스포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노래했다.

프린스 오브 오스트리아 어워드, 로시니 그랑프리, 국제 오페라상 평생 공로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스페인 왕립 예술 아카데미의 첫번째 여성 회원이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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