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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물가와의 전쟁, 정부·기업·노동계 고통 분담밖에 해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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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거시 금융 점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가 매우 어렵다”면서 선제 대응을 주문했다. 첫 수석 비서관 회의의 화두도 물가였다. 4월 소비자 물가가 전년 대비 4.8% 올라 13년여 만의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고 외식비와 생활 물품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물가 잡기가 새 정부의 최우선 민생 과제로 떠올랐다.

지금 국민 생활에 고통을 주는 고물가는 여러 원인이 중첩된 복합 현상이어서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전 세계에 돈이 너무 많이 뿌려진 상황에서 원자재 수요 급증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쳤다. 원유·광물·곡물값 급등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달러 강세는 원화 환율 급등을 초래해 수입 물가 상승세를 더욱 가파르게 하고 있다.

산업계에선 ‘임금·물가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IT기업들이 인재 이탈을 막으려 큰 폭으로 임금을 인상하면서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59조원의 2차 추경 요인도 대기하고 있다. 이 돈이 시중에 풀리면 역시 물가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곳곳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나 1900조에 달하는 가계 부채가 걸림돌이다. 정부는 씀씀이를 최대한 줄여 재정발(發) 인플레이션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선 공약 지킨다고 현금을 뿌릴 때가 아니다. 기업이나 생산·유통업자들이 인플레이션 심리에 편승해 과도하게 가격 인상에 나서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도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이명박 정부처럼 국민 핵심 생필품 가격을 중점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고용 유지와 임금 인상 자제를 골자로 한 노·사·정 고통 분담 모델을 통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선례가 있다. 기업은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하고, 고용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동계는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근로소득세 감면, 공공요금 인하, 소비 쿠폰 지급 등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저마다 이익을 취하려 하면 다 손해를 보고, 모두 손해를 감수하면 결국 이익이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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