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다. 윤 당선인은 한국 정치 사상 정치 입문 뒤 최단 기간에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이 됐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짧은 기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 윤 총장”이 문재인 정부를 교체한 ‘윤 당선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과거 어떤 대선 후보보다 드라마틱했다. 압도적 대세론은 추락했고, 깊은 수렁에서 반전의 모멘텀이 만들어졌다. 지난 1년 5일의 시간 중 윤 당선인의 행로에 큰 영향을 미친 결정적 장면들을 추려봤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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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검찰총장 사퇴
“어느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습니다.”
지난해 3월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280자 사퇴 입장문을 읽고 검찰을 떠났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마지막 장면이자 ‘정치인 윤석열’의 서막이었다. 윤 총장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계기로 야권의 '예비 후보'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구심점 없이 헤매던 보수진영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충돌을 겁내지 않고 거침없이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윤 총장에게 관심을 보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로 두 동강이 났지만, 윤 총장은 여론조사에서 순식간에 야권 대선 주자중 1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추·윤 갈등’은 정치인 윤석열의 탄생에 날개를 달았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징계 청구와 윤 총장에 대한 정직 처분, 이후 법원의 집행정지 판결로 인한 직무복귀까지. 때릴 수록 커지는 존재감에 윤 총장은 대선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4일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끝에 검찰총장직에 대해 사의를 표명한 뒤 모습.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꽃다발을 들고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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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대선출마 선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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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국민의힘 입당 4개월 만에 대선후보 선출
윤 당선인은 여러 악재 속에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적으로 입당했다. 입당 시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호남을 방문하던 때라 ‘대표 패싱’ 논란이 일었다. 경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TV토론 중 윤 후보 손바닥에 적힌 ‘왕(王)’자 무속 논란,“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실언이 시련이었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추월을 당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윤 당선인은 당원 조사의 압도적 승기로 지난해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격을 거머쥐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 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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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윤핵관’ 파동과 김종인과의 결별
입당 때부터 삐걱댔던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은 11월 말 이른바 ‘윤핵관’ 문제로 폭발했다. ‘윤핵관’을 “파리떼”"하이에나"로 비판하며 잠행에 돌입한 이 대표와의 갈등 봉합을 위해 윤 당선인은 12월 3일 직접 이 대표가 있던 울산으로 향했고, 이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선대위에 전격 영입하면서 갈등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경력 논란 속에서 이 대표가 선대위를 떠나며 윤 당선인의 지지율도 곤두박칠쳤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후보는 연기만 하라”는 발언이 결정타였다. 윤 당선인은 1월 5일 선대위 전면 해체를 통해 김 전 위원장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다음날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의원총회에서 윤 당선인과 이 대표의 극적 갈등 봉합이 이뤄졌다. 이준석 표 '여가부 폐지'공약은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급속히 끌어올리며 국면 전환을 주도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3일 울산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 후 포옹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이 대표는 당시 이른바 '윤핵관'을 둘러싼 갈등을 빚었고, 이날 울산합의로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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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마지막에 뚫린 단일화 장벽
상승세를 탄 윤 당선인의 지지율은 단일화 대신 ‘자강론’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 13일 먼저 “여론조사 경선을 통한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윤 당선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대표가 연일 안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양당 갈등의 골만 깊어졌고, 결국 안 대표가 먼저 20일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역대 대선에서 DJP연합(1997년)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의 최대 피해자였던 '보수 진영의 대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단일화 실패로 아슬아슬하게 지게 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7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스타필드하남 앞 광장에서 열린 ‘시민이 행복한 나라, 시민이 주인 되는 나라’ 경기 하남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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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성지원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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