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막말(?)을 했다.
상대방한테 대놓고 '인간이냐'고 하는것만큼 모욕적인건 없다. '인간 같지도 않다' '사람이 할짓이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이같은 인성 논란의 단초는 이후보가 제공했다.
지난달 25일 대선후보 TV토론때 러시아의 야만적 침공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무능 탓으로 돌린건 상식 밖이었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초짜 대통령 젤렌스키가 "무리하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해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다"고 했다.
러시아가 싫어하면 안하면 될텐데 굳이 나토·EU가입을 추진하는 바람에 전쟁이 터졌다는 건데,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는 노골적인 가해자 중심시각이다.
깡패한테 맞은 사람한테, 왜 깡패를 자극했느냐는 식의 한심한 논리다.
이런 억지논리라면 6·25도 한국탓, 일본의 국권침탈도 한국탓이냐는 지적이 나와도 반박하기 힘들어진다.
사실관계도 다 틀렸다.
'충돌'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해 주권국가 영토를 유린하고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푸틴의 야만적이고 일방적인 침공일뿐이다.
나토·EU 가입도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전에 이미 결정됐던 사안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의지로 지난 2019년 개헌을 통해 나토·EU 가입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같은 전후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초보 운운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조롱한건 많이 경솔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바로 다음날 이 후보는 꼬리를 내렸다.
"제 본의와 다르게 일부라도 우크라이나 국민 여러분께 오해를 드렸다면 제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했다.
'표현력' 핑계를 댔지만 그의 '표현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젤렌스키처럼 정치 신인인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를 공격하고 깍아내리려는 그의 메시지는 TV토론을 지켜본 국민들에게 다른 해석의 여지조차 없이 아주 명확하게 전달됐다.
이후보뿐만 아니다. 선대위서 활동하는 추미애, 박용진, 우상호는 "대통령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잠깐 인기 얻어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여러 미숙한 점이 있다"고 조롱했다.
정치경험이 부족한 초보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억지논리를 만들어내기위해 우크라이나 비극을 대선에 끌어들이는건 비열한 짓이다.
이같은 가해자 중심 발언을 서슴지 않는곳은 북한과 중국 등 극소수 몇몇 나라뿐이다. 하나같이 인권후진국에 반민주적 시대착오적 집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치 경력의 길고 짧음도 지도자의 리더십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정치를 오래하면 유능하다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노회한 정치인들의 독무대인 한국 정치는 4류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런 평가에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또 코미디언이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하다하다 직업까지 물고 늘어지는 천박한 인식이 부끄럽다.
주권과 자유를 지키기위해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막아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왜 러시아에게 대드냐"는식의 언사를 남발하는게 정상인가.
러시아가 시키는대로 EU·나토 가입 안하면 문제가 안될텐데 왜 문제를 만드냐는건, 주권 국가의 길을 포기하고 러시아 속국이 돼 노예적 삶을 살라고 윽박지르는거나 매한가지다.
평화라는 미명하에 120년전 나라를 팔아 먹은 이완용의 논리와 똑 닮았다.
하지만 이같은 굴종적 삶을 우크라니아 국민들은 거부했다.
미국의 피신처 제공 제의에 "차가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고 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결사항전의 구심점이 됐다.
3년전 대선에서 젤렌스키에게 패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대통령,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장인 복싱영웅 비탈리 클리츠코 형제는 기관총을 어깨에 맸다.
러시아 침공일날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는 자원입대했고, 할머니들은 화염병을 만들어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더러운 평화' 대신 주권과 자유의 꿈을 택한것이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내는건 힘이다.
전쟁을 하고 싸우자는게 아니다. 우리에게 싸움을 걸지 못하도록 힘을 기르자는거다. 힘의 우위를 통한 전쟁억제다. 힘이 없는 평화는 아무리 정신승리를 한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가짜평화다.
그런 가짜평화를 거부한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결사항전을 지지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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