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원작 웹툰은 2009년 작품이지만 시리즈 공개 직후 조회수 80배, 주간 거래액은 59배 늘어나는 등 '역주행'을 했다 . 네이버웹툰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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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한해 1조원이 넘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 따르면 2020년 시장 규모가 1조538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64.6% 늘어난 수치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고소득 작가가 나오고, 작가 지망생이 넘쳐난다. 지난해 네이버 웹툰 작가의 연평균 수입은 2억8000만원. 최고 수익을 올린 작가는 무려 124억원을 벌었다. 이런 정식 작가가 되려고 신인 발굴 코너인 '도전만화'에 작품을 올리는 네이버 예비 작가만 14만 명에 이른다.
웹툰 시장이 이렇게 급성장한 배경에는 갈수록 가치를 인정받는 지적재산권(IP)이 존재한다. 똘똘한 웹툰 IP(스토리, 세계관)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몇 배의 부가수익을 내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도 웹툰이 원작이다. 드라마가 성공하면 광고, 캐릭터 사업을 통해서도 매출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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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플랫폼 사이 '중간 회사' 우후죽순
문제는 IP가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플랫폼과 웹툰 작가가 맺는 계약 내용이 그만큼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시장의 계약 관행에 어둡고 협상력이 떨어지는 작가가 그만큼 밑지는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웹툰 시장 초기에는 작가와 플랫폼 간 1대 1 계약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분업‧협업이 늘어나고 2차 저작물이 늘어나 계약 형태가 복잡해지면서 최근에는 에이전시 혹은 콘텐트제작사(CP)로 불리는 ‘중간 회사’가 부상했다. 에이전시 등 중간 회사들은 웹툰의 핵심 요소인 그림‧글(스토리) 이외에 주변 작업을 분담하거나 웹툰 플랫폼과 계약을 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중간회사와의 계약 역시 작가들 입장에서는 자칫 함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콘진원이 7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1 웹툰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2.8%가 ‘계약 과정에서 불공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차 저작권이나 해외 판권과 관련해 제작사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을 하거나(23.2%), 정산 내역을 제공하지 않은 경우(17.5%), 계약서 수정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12.1%)도 많았다. 작가가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는 경우는 58.2%, 에이전시‧제작사‧스튜디오 등 중간 회사와 계약하는 경우는 39.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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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기밀유지' 조항에 떠는 작가들, 문제 모으기도 쉽지 않아
레진 코믹스 전 대표이사 한희성씨는 지난달 저작권법 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한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자료 서울중앙지방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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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업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달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창립자 한희성씨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는 상징적이다. 한씨는 2013년 레진코믹스에 작품을 연재한 B작가의 작품에 자신을 ‘글작가’로 표기하고 수익의 30%를 가져갔지만, 법원은 "한씨가 창작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동 저작권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9년 기소된 한씨는 법원이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을 내렸으나 그에 불복,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가 최근 1000만원 판결을 받은 것이다.
웹툰작가노동조합 김동훈 위원장은 “웹툰 해외 판매를 위해 2019년 한 에이전시와 계약하려고 했으나 IP의 40%를 요구하는 데다 2차 저작물에 대한 권한도 모두 갖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내밀어서 포기하고 돌아선 적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에이전시는 "다른 작가들도 모두 이렇게 한다"며 계약을 진행하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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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정비 안 된 문화예술계, 불공정 페널티도 약해"
웹툰 업계에서는 계약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인 데다, 웹툰 작가들이 겪는 불공정 사례를 취합해 체계적인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운 환경을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꼽는다. (사)웹툰협회 권창호 사무국장은 "연재 계약서의 기밀 유지 조항 때문에 작가들이 문제가 있어도 이를 공개하기를 꺼려해 불공정 계약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작가 실태조사를 진행한 콘진원 관계자는 “에이전시가 난립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당한 계약 과정을 외부에서 일일이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스트 법무법인의 김종휘 변호사는 “문화예술계는 건설업계만큼 하도급이 많은데 정비가 안 되어있고, 불공정 계약이 적발됐을 경우 페널티도 약하다. 특히 웹툰 업체와 작가의 불균형이 심해 부당한 일을 겪어도 목소리 내기 쉽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만화가협회 신일숙 회장은 "올해는 협회 차원의 실태조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25일 웹툰 작가 4명, 플랫폼 관계자 2명, 법조계 1명, 학계 1명 등 모두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웹툰작가 상생협의체’를 발족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웹툰 플랫폼의 불공정 계약 관행이 문제가 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14개 웹툰 작가 단체가 협의체 참가 작가 선정을 두고 최근까지 의견이 엇갈리는 등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는 “플랫폼과 작가 간 불공정 거래는 사적 계약인 만큼 규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법률 용어가 낯선 작가들이 많고, 저작권 같은 핵심 용어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다른 경우 분쟁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반영해 계약 과정에서 꼭 챙겨야 할 부분을 알려주는 표준계약 해설서 등을 정부가 수시로 업데이트해 제공하는 것이 우선 시도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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