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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으로 나섰던 평창' 김선수에게 특별했던 진짜 올림픽[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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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김선수. 전북체육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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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 전북체육회 제공여자 바이애슬론 간판 김선수(33, 전북체육회)의 이력은 독특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 참가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올림픽이라는 '꿈의 무대'를 심판으로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가입 선수는 자격증이 없어도 올림픽 심판이 가능한 덕분이었다.

그만큼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김선수는 중학교 진학 후 바이애슬론을 시작했다. 스키와 사격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고 매력을 느꼈다. 이후 여자 바이애슬론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올림픽 1년 전부터 IBU 주관 월드컵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야 출전이 가능하지만, 김선수는 매번 올림픽 1년 전에 큰 부상을 당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2014년 소치 올림픽을 그저 바라만 봤다. 평창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부상은 없었지만, 귀화 선수인 압바꾸모바 예카테리나, 안나 프롤리나에 밀려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안나 프롤리나가 개인 사정으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서 김선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김선수는 국가대표 후보군 중 월드컵 성적이 가장 좋았다.

김선수는 그렇게 국가대표가 된 지 17년 만에 첫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심판이 아닌 선수로서.

김선수는 7일 바이애슬론 여자 15km 개인전에서 84위를 기록했다. 이어 11일 여자 7.5km 스프린트에서는 8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목표였던 60위권 진입은 좌절됐다.

하지만 김선수에게는 특별했던 올림픽이다. 대회 전 "최대한 목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할 것"이라던 김선수의 말대로, 고독한 레이스라 불리는 바이애슬론에서 완주라는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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