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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 이상 밀수 사건만 하라”...검찰 마약 인지 사건 절반 이하로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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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경찰청이 작년 11월 전국 마사지 업소를 거점으로 삼아 필로폰 등 마약을 유통·투약한 내외국인 47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해 이 중 33명을 구속하면서, 이들로부터 압수한 필로폰과 전자저울을 공개한 모습/서울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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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검찰청은 작년 초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2명 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2020년 말 동남아에서 필로폰 약 200g을 국제 우편으로 밀반입한 것을 검찰이 인지 수사해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두 명 중 한 명의 가방에 필로폰 약 10g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것도 동남아에서 밀수한 것이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해당 외국인은 “한국에 사는 다른 외국인 A씨로부터 구매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마약 밀매를 한 두 외국인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A씨의 마약 유통 혐의도 인지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A씨의 마약 유통 혐의에 대해 전혀 수사를 할 수 없었다. 2020년 말까지만 해도 A씨에 대한 추가 수사는 가능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 검찰청법이 바뀌어 검찰은 마약 사건 중 ‘500만원 이상 마약 밀수’ 사건만 경찰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사(인지 수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해당 외국인 두 명을 기소할 당시 필로폰 1g은 도매가 약 7만원, 소매가 약 20만원 정도였다. A씨가 판 마약은 도매가 70만원, 소매가 200만원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결국 검찰은 A씨의 마약 유통 혐의를 알고도 바뀐 법 때문에 A씨를 수사·기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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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이 지난해 국내로 밀반입된 마약류를 1054건(1272㎏) 적발했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적발 건수와 양 모두 관세청 개청 이래 가장 많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투약하고도 남을 양이다. 사진은 컨테이너 입구에 적재된 코카인/관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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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마약 인지 사건 절반 이하로 떨어져

강력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마약 수사는 한 사건을 인지 수사를 할 경우 다른 사건도 나오게 돼 있다”며 “이를 계속 추적해서 마약 밀수·유통·투약자들을 일망타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검찰의 인지 수사 범위가 확 줄다 보니, 이런 식으로 마약 수사가 중간에 뚝 끊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대검 통계에 따르면 검찰이 인지한 마약 사건은 2016년 2477건, 2017년 1994건, 2018년 1674건, 2019년 1483건, 2020년 1684건이었다. 매년 1500건 이상, 많게는 2500건의 마약 사건을 검찰이 인지 수사한 셈이다.

그런데 바뀐 법이 적용된 작년의 경우 1~11월까지 검찰의 마약 인지 사건은 704건이다. 예년과 비교해보면 최소 절반 이상 준 것이다.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 마약 유통 사건도 인지 수사하기 어렵다. 다크웹에선 100만원 안팎의 소액 마약 거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중앙지검 등에 있는 다크웹 전문 수사관들을 비롯해 전국 검찰청의 전문 마약 수사관 약 300명은 현재 경찰에서 넘어온 마약 송치 사건에 대해 보완 수사만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전문 마약 수사관들의 역량을 20% 정도밖에 못 쓰는 셈”이라고 했다.

강력부 검사들은 “경찰도 마약 수사를 잘한다”고 했다. 다만 아직 경찰은 주로 소매상, 마약 투약자 위주의 검거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경찰은 검거 인원수가 많을수록 인사 고과에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한 법조인은 “검찰은 검거 인원수로 승진 점수를 매기는 규정이 없어 시간을 들여 마약 공급·유통 조직을 적발하는 노하우는 아직 검찰이 좀 더 많이 쌓인 편”이라며 “10g짜리 마약 유통 사건을 인지해, 큰 마약 공급 조직을 적발하는 게 그동안의 검찰 마약 수사 방식인데, 작년부터 이런 수사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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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1부가 작년 9월 다크웹 마약 유통 조직 총책 등 5명을 적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 마약 조직이 재배하다 적발된 대마./서울중앙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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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쪼그라든 검찰 강력부

작년 6월부터 검찰 강력부 규모가 준 것도 인지 수사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다. 작년 6월부터 인천·대구지검 외엔 강력부가 특수 사건을 전담하는 반부패부와 합쳐져 반부패강력부가 됐다. 반부패강력부로 된 뒤에도 마약·조폭 등 강력 사건보다는 주로 뇌물 사건 등 특수 사건에 수사 인력을 집중하는 구조라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조폭 두목에게 강력부 검사가 권총 들고 ‘꼼짝마’ 했던, 검사 이미지가 강력부 검사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강력부의 마약 사건 수사 역량도 떨어지게 됐다”고 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없어져, 검경이 마약 사건을 합동 수사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한 강력부 검사는 “스페인은 마약 사건이 인지되면, 경찰을 비롯 여러 기관과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검사 지휘로 합동 수사를 하고, 미국은 법무부 산하에 마약청이 따로 있다”며 “우리나라는 현재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경찰이 따로 논다”고 했다.

◇검경 “따로 놀면 마약 수사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사권 조정과 별개로 검찰과 경찰이 마약 조직 소탕을 위해 힘을 합치는 자구책(自救策)까지 마련하는 일도 있었다. 인천공항, 인천항 등을 통해 마약 밀수가 잦은 인천이 그렇다.

인천지검 강력부와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작년 11월 텔레그램을 이용해 마약을 유통해 온 국내 최대 조직을 적발, 15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2020년 6월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류를 판매하기 위해 조달 및 광고, 권역별 판매, 자금세탁, 수익금 인출 등 역할 분담 체계를 갖춘 범죄집단을 조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작년 3월까지 1억원 상당의 마약을 밀수, 1100여명에게 팔아 5억여원을 벌었다. 마약으로 번 돈은 모두 가상화폐로 돌려 자금 세탁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과 경찰이 이 사건 수사를 처음부터 같이 한 것은 아니다. 인천경찰청 광수대가 단 건, 단 건으로 마약 사범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는데, 인천지검 강력부에서 이들 마약 사범의 행동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인천지검 강력부와 인천경찰청 광수대가 “함께 수사해보자”고 해 마약 조직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수사 이후 인천 검찰, 광수대와 해경, 세관은 작년 12월 말 스페인과 비슷하게 ‘마약 사건 협의체’를 만들었다. 한 법조인은 “마약 사건은 국민을 좀먹게 하는 민생 사건”이라며 “정치권에서 마약 사건 등 민생 사건에는 검찰, 경찰 수사 영역을 구분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든,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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