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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 재산 다 뜯기고 요양원 버려져, 기억도 안나는 끔찍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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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31)



A(남·80)는 청주에서 2남 1녀의 차남으로 태어나, 19세 되던 해 빈손으로 상경했다. 밤낮없이 일해서 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고, 늦었지만 결혼도 하였다. 그런데 슬하에 자녀가 없어 형님의 아들 B(60)를 양자로 입양하려고 하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동네 사람의 소개로 고아를 양자로 들였는데, 부인이 사망한 2014년경 이후로는 성인이 된 양자로부터 폭행과 학대를 당하게 되었다. A는 견디다 못해 조카인 B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A는 그즈음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쯤 그 양자를 파양(罷養. 양자 관계를 끝내는 것) 하였다. A가 뇌 검사 등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2017년경에는 A 소유이던 시가 50억 원 상당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소재 지상 5층 건물이 B 명의로 이전 등기되었다. 2018년경부터 A는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는데,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A의 여동생 C가 A를 다른 요양원으로 옮기고, B를 비롯한 다른 친척들의 접근을 막은 채 A의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정기예금을 해약해 치료비로 사용하였다.

그러자 조카 B는 A가 치매로 인지능력이 거의 없는데, A의 여동생인 C가 다른 친척들의 접근을 막은 채 A의 예금 등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A의 성년후견인이 되어 A의 신변을 보호하고 재산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재판을 신청하였다. B는 제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중앙일보

후견은 정신적 문제의 정도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일반적으로 후견인은 가족 중에서 합의하에 추천된 사람으로 지정된다. [사진 pix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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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에서는 부인도 자녀도 부모도 없는 A를 둘러싸고, A의 추정상속인인 형제자매 또는 그들의 자녀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입양된 양자가 A를 잘 모셨더라면 A가 이런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평안한 노후를 맞았을 것이고, 양자도 향후 단독 상속인으로서 A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A에게 치매가 점점 진행되고 단독 추정상속인이던 양자가 파양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조카 B가 처음부터 A의 재산에 욕심을 낸 것은 아닐 수 있다. 예전에 자신을 입양하려고 했던 작은 아버지 A가 자신의 집으로 피신할 때만 해도 A를 진심으로 보살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A의 정신상태와 판단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나 죽으면 이 재산은 어려울 때 날 보살핀 너에게 다 주겠다”는 A의 지나가는 말을 고모 C나 다른 사람들의 방해가 있기 전에 즉시 실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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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이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준비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진 pix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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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후견제도’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로 혼자서는 자신의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도움을 주는 사무에는 재산에 관한 사무도 있지만, 거주지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어떤 사람과 만날지, 어떤 전화나 우편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신변에 관한 것도 있다.

후견에는 그 정신적 문제의 정도에 따라, 혼자서는 거의 사무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중한 경우에 시작되는 좁은 의미의 ‘성년후견’과 일정한 몇몇 사무에 한해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한정후견’으로 나뉘고, 특정한 사무에 대해서만 지원을 받는 ‘특정 후견’도 있다. 후견을 받아야 할 사람(피후견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후견인을 누구로 할지,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서 후견인이 될 사람과의 계약을 통해 미리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것을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후견인은 가족들 사이에 정서적으로 피후견인과 가장 가깝고 피후견인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 보통은 가족 중에서 합의로 추천된 사람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족들이 서로 후견인이 되려고 하거나, 되지 않겠다고 싸우고 있는 경우, 돌볼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변호사나 사회복지사와 같은 전문가가 선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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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정신상태나 판단력에 문제가 없어야 앞서 이루어진 장애인 재산의 처분이 유효하다. 재산 침탈과 관련된 성년후견 사건에서 이미 재산을 많이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후견개시에 반대하는 이유다. [사진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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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능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재산 침탈이 문제가 되는 성년후견 사건에서, 인지능력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재산을 이미 많이 받은 사람, 보통 그를 모시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후견개시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의 정신상태나 판단력에 문제가 없다고 해야만, 이미 이루어진 장애인 재산의 처분이 유효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남은 재산을 자신이 조종하고 지배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례에서는, A의 재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당 건물을 받은 B 쪽에서 먼저 후견 신청을 하고, 오히려 나중에서야 A의 신병을 확보한 여동생 C 쪽에서는 A의 정신이 멀쩡하다고 주장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알게 된 것은 A에게 당초 분당 건물 외에도 20여억 원의 예금이 더 있었고, C가 B로부터 A의 신병을 탈취한 2018년경까지만 해도 10억 원 이상의 돈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B는 이 돈마저도 C가 마음대로 쓰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했다.

정신감정 결과 A는 중증 치매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결국 A에게는 성년후견이 개시되었고, 성년후견인으로는 B나 C가 아닌 전문가 후견인인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그런데 후견인이 A의 재산 상태를 조사해 보고는 A에게 남아 있는 재산이 불과 200만 원이 전부라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알고 보니 성년후견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에 여동생 C가 A의 뜻을 빙자해 C의 아들에게 10억 원을 증여한 것이다.

지금은 후견인에 의해 C의 아들과 B에 대한 재산 환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재산을 다시 A에게로 돌려놓으려면 증여 당시 A에게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치매의 특성상 A가 과거의 특정 시점에 그러한 상태였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더욱 씁쓸한 것은 A는 이제 그들의 목적을 다 달성한 B나 C는 물론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요양원 6인실에서 아무런 재산도 남아 있지 않은 채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제 뜻대로 쓰이도록 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가족이 여럿 있다거나 재산이 풍족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의 계획과 정리를 위해서는, 치매나 갑작스러운 뇌출혈,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이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준비가 될 것인지 지금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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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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