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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미워할 수 없는 악동,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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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지지로 이제야 누명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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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심을 얻고도 천심을 얻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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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포옹하는 홍준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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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천심이라는데 이 사람은 민심을 얻고도 천심을 얻지 못했다.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이기고도 당원 투표에서 져서 본선행이 좌절되었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패배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사람의 경선 승복 연설은 불과 세 문장, 발언을 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쳤을 텐데 그런 마음을 가차없이 걷어 내고 단 세 문장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드리고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이 모두 합심해서 정권 교체에 꼭 나서주도록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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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 연설문은 사전에 준비를 했습니까.
"나 그런 거 준비하고 가지 않아요. 그런 거 정리하는 데는 20-30초면 충분해."

이 사람이 당내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여론조사 지지율은 불과 4%, 당시 윤석열 후보는 40%가 넘었다. 이겼다면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역전극 이상의 드라마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여기가 패착이었다, 아니면 그때 거기서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안 드세요?
"나는 복기 같은 거 안 해요. 내가 바둑 아마 4단인데 복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복기를 한다는 것은 지난 일에 집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 안 합니다. 끝났으면 그게 끝이죠.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그걸 갖다가 아쉬워해 본들 내가 얼마나 초라해지나. 털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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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 참석한 홍준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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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선거캠프 해단식은 수백 명의 인파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출범식보다 몇 배나 뜨거운 그 열기가 오히려 안타까웠던지 그날 이 사람 얼굴은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참으로 애매한 표정이었다.

"선거에 떨어지면 세상이 나를 버린 거 같거든. 선거에 안 떨어져 본 사람은 그걸 모르죠. 사실 해단식 할 때도 속에 좀 불이 났지. 세상이 나를 버린 것처럼 그렇게 돼 있는데 웃고 떠들고 할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 한 300명 왔는데 한 바퀴 돌면서 다 악수는 해줬지."

큰소리 치는 것은 여전한 이 사람에게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잠시 틈을 두고 답이 돌아왔다.

"외롭다기보다 가슴이 좀 공허하지. 민심을 얻고 당심에서 참패를 하니까 이게 거꾸로 된 거 아이가. 당심을 얻고 민심에서 졌다면 수긍이 되는데 26년간 헌신한 이 당에서 내침을 당하니까. 민심에서 압승하고 당심에서 져서 본선에 못 나가니 허망하지. 요즘 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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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의원이 경선 직후 만든 인터넷 공간 <청년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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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 사람을 위로해주는 게 <청년의꿈>을 통한 젊은 세대의 응원이다. <청년의꿈>은 청년들이 와서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 하나 만들어준다는 생각으로 경선 직후 만든 인터넷 공간이다. 청년들이 묻는 질문에 이 사람이 직접 답하는 <청문홍답>이 핵심인데 만든 지 사흘 만에 1천만 뷰를 돌파하더니 두 달여 만에 6천만 뷰를 넘었다. 안철수가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했고 이재명이 이 사람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를 언급했을 정도다. 2017년 대선에서 20대 유권자에게 받은 지지율은 8.2%로 다섯 명의 주요 후보들 가운데 꼴찌였다(19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그 이후에도 그저 '꼰대'였을 뿐인 이 사람에게 왜 지금은 청년들이 환호하는지 궁금했다. 2000년대 초반 여의도 정치권을 취재할 때 얼굴을 보긴 했지만 안다고 할 만한 사이는 아니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겠거니 싶었는데 한 번 보자는 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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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회관 벽 높은 곳에 자기 사진을 걸어 두고 있었다. 누군가의 사진을 걸어야 한다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사진을 걸어야 될 자리였다. 전·현직 대통령 사진을 방에 걸어 두는 의원들이 가끔 있지만 자기 사진을 걸어 두는 사람은 본 기억이 없다. 이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인 게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일류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콤플렉스가 있고 검사가 되고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비주류였지만 그런 것이 열등감으로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뚫고 내 인생 멋지게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람, 세상이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1월 18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2. 마음은 이미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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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장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다. 마음이 거기에 가 있는 듯했다.

-대구시장을 말씀하시는 것은 바둑으로 치면 돌을 던질 자리를 찾는 것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반전과 변화를 찾으려는 생각입니까.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지 그걸 생각 중이죠. 그 중에 하나가 대구시장이야. 고향 가서 4년 봉사하고… 그럼 70이 넘어요. 물고 뜯고 하는 여의도 정치에 계속 몸 담기보다 이제는 정리하고 털고 하방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 아니냐 뭐 그런 뜻이지."

대선 결과에 따라 당신 행보도 달라지는 거 아니냐, 당신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호통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정치를 하면서 내가 종속변수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중앙정치가 어떻게 변하고 달라지든 내가 거기에 종속되는 정치는 해본 일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3월 9일 이후에 우리가 정권을 탈환하든 실패하든 간에 그거는 상관없이 내 정치를 할 겁니다."

초선 시절 원내부총무를 잠깐 한 것을 빼면 한 번도 副(부) 자 붙은 직책을 맡은 적이 없고 그런 자리는 아무리 화려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자리는 가기 싫고 죽어도 2인자는 못할 사람이다. 검사가 된 1982년 이후 시늉으로라도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본 적이 없고 빈말로라도 남의 비위 맞추기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초중고를 다닌 고향에서 정치를 마무리하는 것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 말이 정치를 그만 둔다는 말은 아니었다.
"지금 던지기에는 내가 보살펴야 할 참모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만 두면 그 사람들한테 너무 가혹하지. 지금 던지기에는 내가 보살펴야 할 참모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던질 수가 없어."

자신의 절친이 그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감상에 젖었던 이 사람이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이 세상에서 활동할 시간이 얼마나 부여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렇게 악착스럽게 살 필요가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데 내가 신세졌거나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그래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입장이 되면 어떤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도와주는 게 그것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냐 그런 생각도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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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홍준표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정치적 미래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 계파를 만들지 않았다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사람들을 챙기려고 한다. 이번 경선을 거치면서 혼자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이 사람의 옆자리는 늘 허전했다. 국회의원 5선에 두 차례나 당대표를 지냈고 재선 지사에 제1야당 대선 후보까지 지냈지만 이 사람 옆에 서있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 '부덕의 소치'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자기 잘못이 아니란다.

-가깝게 있던 사람들이 중요한 정치적 고비에서 곁에 서있지 않더군요.
"그거는 그 사람들이 나쁜 거지. 내가 나쁜 게 아니지. 나한테 은혜를 입고 나한테 혜택을 받고도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은 그 사람들이 나쁜 거지. 홍준표의 문제가 아니고 나를 배신하고 간 사람의 인성의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동지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 거 같다고 했더니 동지라는 말을 쓰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라고 했다. 지금 정치는 의리가 아닌 이해관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남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3. "이재명 당선은 막아야…윤석열 찍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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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회동 하루 전인 18일에 이어 회동 다음 날인 20일 다시 만났다. 양자 회동을 전후해서 두 번 만났으니 그 당시 입장은 꽤 들은 셈이다. 두 사람 회동은 이 사람이 특정 인물의 공천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감정의 앙금만을 남긴 채 끝났다. 윤석열을 가볍게 봤다가 덜컥수를 둔 느낌이고 체면을 구겼다. 차라리 출당시키라는 말까지 했지만 대선 국면에서 이 사람 선택지는 정해진 듯하다.

-3월 9일 윤석열을 찍고 싶나요?
"찍어야지. 그거는 이 당에 있는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그러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우리 당 후보인데…."

-선대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진짜 있습니까?
"이재명을 당선시켜서는 안 되니까. 이재명을 당선시켜서는 안 되니까."

-윤석열과 만났을 때 술도 한 잔 하셨습니까.
"술 한 잔 했지. 그런데 나는 술을 많이 안 해. 윤석열은 많이 하더만. '술 그만 무라' 그랬지. '아 괜찮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어.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하늘 문이 나한테는 열리지 않았다. 하늘 문이 윤석열 후보한테 열렸다. 내가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생겼다. 내가 열심히 해줄게."

두 사람 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확인하는 자리였을 테고 알려진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권영세가 깽판을 놓아버렸잖아. 그러니까 윤석열이 수습을 어떻게 하는지 봐야지."

-윤석열은 어떻습니까?
"쟤는 아직도 검찰총장이야. 지가 1인자니까 탁탁 지시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아. 정치적 성숙도가 없는 친구야."

윤석열과의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한마디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말로 들렸다.

4. "세상에 큰소리치려면 나부터 깨끗해야"



15대 국회에 처음 등원한 지 3년 만인 1999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임기 도중 의원직을 잃었지만 2년 후 보궐선거를 통해 재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여당 원내대표에 당 대표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했지만 실세는 아니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경남지사 선거를 통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가장 큰 위기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다. 그것으로 정치 인생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2심과 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 24%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이 사람의 분투로 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던 제1야당이 살아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났고 2020년 총선에서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대구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을 때 정치적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보였지만 국회로 8년 만에 복귀해서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에서 선전을 펼쳤다. 거듭된 정치적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신감, 그 험난한 과정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 사람 이야기에는 좀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슬롯머신 사건 수사에서 외압을 막아준 당시 서울지검 간부들의 이름은 잘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나 혼자로 족하다는 태도인 것이다. 이 사람의 오만과 거침없는 언행에 질리고 거리감을 넘어 심지어 모욕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도 홍준표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 사람의 일관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덕의 부족은 말하지만 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검사 시절부터 독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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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시절 사무실에서 법전을 읽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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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검사 시절 처남이 무슨 일로 구속이 돼서 장인어른이 좀 봐줄 수 없나 그러시길래 '그건 변호사가 하는 일입니다. 내 나중에 검사 그만 두고 변호사 할 때 그리 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리고 나서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해서 '합의 보더라도 석방하지 마라' 부탁했어요. 처남이 합의 보고도 8개월 살고 나왔어요. 그 이후로 가족들 누구도 나한테 부탁 안 해."

-부인께서 섭섭하다고 안 하셨습니까.
"섭섭해도 그게 옳잖아. 그게 바르잖아. 그게 옳은 길이잖아. 그게 옳은 건데 어떻게 섭섭하다고 이야기를 해."

-원래 정의감이 강했습니까.
"정의감이 아니지. 내가 남한테 꿀리지 않고 내 마음껏 큰소리치며 살 수 있으려면 내 뒤가 깨끗해야 돼. 적당히 타협하고 부족한 수단 동원해서 내 가족도 도와주고 그렇게 살았다면 내가 세상을 향해서 큰소리 못 치고 살죠. 나 편하자고 그래 사는 거야. 나 편하기 위해서."

이 사람 자전적 에세이를 보면 울었다는 말이 숱하게 나온다. 서럽게 울고, 펑펑 울고, 한없이 울고…. 울산 현대중공업 바닷가 모래밭에서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밤샘 경비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피눈물을 흘렸고 사과 광주리를 지고 고갯길 넘어오는 어머니를 보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9급 면서기를 해서든, 막노동을 해서든, 장사를 해서든, 아니면 일찍 변호사를 해서든 부모님 한번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고 했는데 다시 산다고 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할 거 같지는 않다. 꼭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에 큰소리치면서 살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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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시절의 홍준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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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라는 말을 정의라는 말과 등치시킨 사람이다. 검사 시절은 행복했다. 정의감이 앞섰는지 아니면 공명심이 앞섰는지는 본인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어쨌든 두 가지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고 거기에 이 사람 특유의 개성도 한몫했다. 노태우 정부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 구속으로 이어진 슬롯머신 수사는 이 사람을 '모래시계' 검사로 만들었고 입신양명의 발판이 되었다. 모든 언론이 이 사람 말과 행동에 주목했고 평검사인 이 사람 인사가 기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이 사람보다 능력이 있는 검사는 그 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을 모르지만 이 사람만큼 유명한 검사는 없었고 이 사람만큼 성과를 낸 검사도 찾기 힘들다.

검사 시절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으니 변호사 되어 죄 지은 사람들 변호하는 일로 직성이 풀릴 리 없다. 가족을 지키려는 뜻도 물론 있었지만 공명심 강한 이 사람에게 정치 아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꼭 보수의 가치가 좋아서 당시 여당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정계 입문 권유는 야당인 DJ의 국민회의와 민주당에서 먼저 왔고 마음이 거기로 기울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바뀌었다지만 정치적 실익을 따져본 결정이었을 것이다.

5. "청년들의 지지로 이제야 누명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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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지지는 얻었지만 60-70대에겐 비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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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지지는 이 사람의 구애의 결과라기보다 청년들이 뒤늦게 '준표 형'의 가치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선 것이다. 정의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의 위선적 행태에 질린 사람들에게 투박하지만 진솔한 이 사람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보고 주저하고 머뭇거릴 때 거침없이 말을 하는 이 사람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막말, 거친 말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 언사가 후련하고 통쾌하게 들리는 것이다. 보수화 경향을 띠는 2030 남성들의 증가도 이 사람 인기 몰이의 한 원인일 것이다.

-청년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굉장히 기쁘지 않으세요?
"기쁘다기보다 누명을 벗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죠. 예전에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먹혀 들어가지 않다가 이제 청년들한테 신뢰를 얻었으니까 그게 나로서는 누명을 벗었다는 생각이 들죠.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젊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게 전달이 되니까 나로서는 누명을 벗었다. 그거밖에 할 말이 없죠."

청년들의 지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고 한때의 바람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할 말 하면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젊은 사람들 요구를 무조건 수용한다고 나를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야단칠 때는 야단치고 잘못한 거는 바로잡아 주는 거고. 젊은 사람들한테 아부하며 따라가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되죠. 어른이 존재를 해야죠."

젊은이들한테 누명을 벗은 대신 예전에 지지를 받던 60-70대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 사람들은 틀튜브한테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그 사람들이 욕을 하든가 말든가 나는 관심이 없어요. 매일같이 '문재인 벌벌, 폭망, 이제 끝났다'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틀튜브들이 60-70대를 세뇌한 게 4년이나 됐어요. 내 그런 것을 보면서 참 대한민국 수준 낮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수준 낮다는 표현은) 제가 안 쓰겠습니다.
"써도 돼, 써도 돼. 정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선동에 놀아나냐 이 말이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 수준 낮다고 나는 그래 생각합니다."

남자는 무조건 강하고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고 사내다워야 되고 그래야 여자에게 존경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한다.

-아무리 봐도 대표님 같은 분을 마초라고 그러는 거 같습니다.
"마초 같은 사람이지…. 근데 나는 마초라기보다는 상남자라는 표현을 제일 좋아합니다. 내 여자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 내 여자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용의도 있다. 내 가족은 절대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조국한테 사내 새끼 아니다. 부인이 어려운 일 당하면 내가 대신 감옥 간다고 떠들어야지 부인 감옥 보내놓고 밖에서 트위터질 하는 저게 사내냐.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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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큰누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남자는 보호하는 존재, 여자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고,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구별이라는 것이고 남들이 뭐라 하든 그게 옳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어렸을 때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버지가 마흔한 살, 어머니가 서른아홉에 본 늦둥이였고 외동아들이었다. 누나들과 여동생에 비하면 부모님의 지독한 편애를 받으며 컸다.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특권을 누렸고 어쩌다 쌀이 생기면 이 사람 밥그릇에 담겼다. 이 사람 한 명을 위해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여자 형제들이 희생했다. 자기보다 훨씬 야무지고 똑똑한 작은 누나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 이 사람 뒷바라지를 했다. 제사 한 번 올릴 때마다 열두 번 절을 하는 집안이었고 여자들은 제사상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능하지만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다. 지금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6. "나보다 권력욕 강한 사람은 YS와 DJ뿐"



이 사람만의 언어가 있고 이 사람만의 화법이 있다. 남이 써준 것을 그대로 읽는 법이 없고 남의 말을 자기 말인 양 읊조리는 일도 없다. 정책이든 주장이든 뭐든 그렇다. SNS를 통해 직접 싸운다. 남을 내세우거나 남의 입을 빌리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싸워줄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남의 입과 손을 빌려 싸우는 것은 이 사람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다. 복잡한 사안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논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거 같지만 의외로 빈틈이 없다. 보수의 대표 논객이라고 할 만하다. 유시민과의 토론을 보면 논리에서나 순발력에서 밀리지 않는다. 목소리만 큰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런 글을 보면 자신을 살피고 자신과 대화하는 데도 익숙한 사람이다.
"비주류를 오래 하다 보면 늘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고 이해심이 부족해지고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철이 들고 난 뒤부터 나는 이 점을 늘 경계해왔다. … 나는 내 자식들이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사는 주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전적 에세이-나 돌아가고 싶다> 중


영남 출신에 어려운 집안, 법조인을 거쳐 정치인이 된 것까지 여러모로 비슷한 이재명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나는 부자나 잘 사는 사람을 증오해본 적이 없어요. 이재명하고 나하고 극명하게 다른 점이야. 어렵고 힘들게 살았어도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러웠어.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그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이재명은 그 사람들을 증오하며 자랐어. 그러니까 걔는 양아치야. 그게 무슨 대통령이야, 양아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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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어머니, 누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이야기를 하는 도중 몇 군데서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오곤 했다. 사고의 회로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다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 보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 덕분이라고 했고 정치를 시작한 것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가족은 자신이 확장된 분신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가족들이 소중하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자기 이름을 드는 것을 정당 대표가 되고 도지사가 되고 5선 국회의원이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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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원 큰아들의 돌잔치 날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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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가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고생에 빠뜨리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서 참 아버지답지 않다. 나는 크면 절대 우리 아버지처럼 저렇게 하지는 않겠다. 내 가족만큼은 내가 무한 책임을 지고 안고 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어요."

권력에 대한 욕망은 날 것 그대로다. 일체의 가식이 없는 이 사람 욕망은 싱싱하다. 그 욕망이 오늘의 이 사람을 만든 원동력이다.

-본인보다 강한 권력욕을 가진 정치인을 본 적이 있습니까.
"YS, DJ.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권력욕이 있었으니까. 난 목숨 걸고 그런 생각은 없는 사람이고."

-왜 정치를 하십니까.
"처음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했고 3선부터는 내 나라를 정상 국가로 만들어 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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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에 걸쳐 5시간 정도 만났다. 악동인 것은 틀림없는데 마냥 미워하기는 어려운 악동이다. 말의 절반이 반말이고 호통치기 일쑤고 막무가내일 때도 있다. 사전에 양해했던 영상 취재를 현장에서 거부하기도 했다. 학동을 가르치는 훈장 같은 이 사람 화법이나 어투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룹이 생겼지만 여전히 비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이와 서열을 따지고 권위의식에 물든 사람이라는 평도 있지만 대학 시절 코미디언 시험을 보라는 방송사 PD의 권유를 받은 적도 있고 검사 시절 음반을 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예인이랄까 광대의 기질도 다분한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악동이라는 것은 아시죠?
"재미있는 악동이지. 나는 악동 기질이 대학 시절부터 있었어."

돼지 발정제를 언급해 엄청 두드려 맞았던 것도 그 시절 이야기다. 말하지 않은 악동 짓도 꽤 있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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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재학시절의 홍준표 의원


-대학 하숙하던 시절 이야기들도 다 그런 거지요?
"그럼… 우리끼리 모여서 악동짓 하고 그랬지… 지금도 나는 진짜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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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냉큼 그러자고 답한 것은 물어볼 것이 더 있기도 했지만 이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7. 주류들의 부패 카르텔을 부수고 싶다



2020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탈당한 것을 빼면 1996년 신한국당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보수 정당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현 여당과의 싸움이 절반이라면 보수 진영 내부에서의 싸움이 나머지 절반이었고 그 싸움이 외부와의 싸움 못지 않게 치열했다. 보수 정당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보수의 본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단 한번도 자신이 주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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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전 대표 시절 홍준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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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주류지만 너무나 주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고 내 아들이 꼭 주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류에 대한 한이 맺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2017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 당 대표로 복귀했을 때 한 언론사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 언론사 사주 말이 '탄핵 대선이고 누가 나가도 떨어지니까 당신한테 기회가 간 거지 정상적인 대선이라면 당신한테 기회가 갔겠나' 그 말을 듣고 내가 이제 주류인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아웃사이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의 주류들이 형성한 이 부패 카르텔은 잘 무너지지가 않아요. 주류들이 만든 부패 카르텔은 다른 대통령이 들어와도 무너뜨리기 어려워. 자기들끼리 형성한 부패 카르텔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이 사람 안으로 한발 더 들어가보았다.

-그 정점에 조중동 같은 데가 있다고 보는 거죠?
"난 어디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경선할 때도 조중동에게 참 많이 당했지. 참 많이 당했어. 특히 조선일보. 참 많이 당했지. 그래도 내 겉으로 내색을 안 했어."

-왜 내색을 안 했습니까?
"바르게 살려고 하다 보면 적이 많이 생겨요. 그런데 여기까지도 적을 만들면 경선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걸 꾹 참고 석 달을 버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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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 '서민보수'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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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선 때 '서민보수'라는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우리 사회의 강고한 부패 카르텔을 부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그렇지. 서민보수라는 말 속에 다 포함이 돼 있다고. 한국 사회가 몇몇 집단이 모여 가지고 부패 카르텔을 정상에서 형성해가지고 자기들끼리 서로 협조하고 서로 밀어주고. 문재인이가 대통령이 돼 본들 그 집단이 무너지나? 안 무너지니까 그걸 깨자는 게 서민보수란 말이야. 이번에도 결국 못 깼지만은… 로스쿨이라는 게 현대판 음서제도야. 그래서 사법고시 부활을 주장하는 거야. 왜 내가 정시만 하자고 했을까. 수시나 입학사정관제는 서민들 자식들은 못 들어가요."

2017년 대구 유세에서 이 세상이 한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잘 사는 사람이 못 살고, 못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 사람 말은 유세장에서 어쩌다 나온 말이 아니었다. 까막눈에 평생 어렵게 살았던 자기 어머니 같은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일부 언론이 만든 막말 프레임에 갇혀서 본인의 메시지가 전달이 제대로 안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를 하면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논쟁이라도 합니다. 나한테 가장 불리한 순간에도 논쟁을 피하거나 침묵하지 않습니다. 불리한 주제라도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언론기관에 미운 털이 박힌 거지."

8. "노무현에게는 미안, DJ에게는 마음의 빚 없어"



대통령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지만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신나게 살았다고 했다. 이 말을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한껏 실어 이야기했다.

"세상 열심히 살았다. 후회없이 살았다. 재미있게 살았다. 마지막 순간에 좀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없이 살았다. 그냥 신나게 살다 간 사람. 그렇게만 말해도 돼요. 그냥 신나게 살다가 간 사람으로 기억돼도 좋아요."

자신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겨준 문재인과 윤석열을 정치적 라이벌로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사람들은 자신의 라이벌이 못 된다고 했다. 박지원과 유시민은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 15대 국회에 같이 등원한 정동영과 천정배는 일당백의 인재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해찬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의외였다.
"이해찬 씨는 내가 정치권에서 겪어본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 논리를 깨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김어준은 B급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동생이라고 했고 고대 동문인 정세균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유승민, 원희룡은 좋고 싫음을 떠나 자신과 코드가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대 진영 인물에 대해 후하고 자기 진영 인물에 대해서는 박했다.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만섭과 조순형을 들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말로도 들렸다.

"두 분 모두 곧지. 바르고 허튼 짓 안하고. 가식적인 정치 안하고 정직하고. 특히 조순형 의원 같은 경우는 국회의장 한 번 안 시켜주고 은퇴시켰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옹졸함이지. 국회의장을 한번 하고 나가셨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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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너무 힘들게 한 적이 있다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경남지사 시절 명절 선물로 남들에게 한과 보낼 때 권양숙 여사에게는 산양삼을 보냈다. DJ 저격수로 유명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마음의 빚이 있으려니 했는데 DJ 집권 시절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으니 서로 주고 받은 셈이라며 미안한 마음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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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30년 이상 알고 지내는 한 언론인은 이 사람을 두고 검사 시절에는 갓 담근 생김치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익은 김치 같다며 세월과 더불어 유연하게 변했다고 평가했다. 단순하고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이라는 평도 있다. 단순한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게 전부인 게 맞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맞는 듯하다. 다만 이 사람 속이 얼마나 깊은지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이 의외로 깊을 때도 있다.
윤춘호(논설위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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