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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심부전과 살아가기]명절 홧병, 제때 병원 찾아 치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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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젊은 시절 어머님을 여의고, 집안사람들을 챙기며 맏딸로서 일을 도맡아 했던 60세 환자는 형제자매가 많은 곳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 집안의 살림을 모두 챙기신다. 꼼꼼한 성격에 음식 솜씨도 뛰어나고 모든 일에 있어서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환자는 자신보다 가족들이 최우선인 분이었다. 53세 경부터 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처음 만났으나 병은 매우 잘 조절되고 있었고, 특별한 문제 없이 외래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명절만 지나고 외래를 보면 너무 많은
이데일리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가족들을 챙기고 손수 음식들을 하고, 다른 가족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 견뎌 그런지 한 번씩 감기가 걸리고 다소 안색이 안 좋아지시곤 했다.

“혈압도 고지혈증도 매우 조절이 잘되고, 현재 심장에 문제도 없으니 좋으세요. 다만 제가 걱정되는 부분은 너무 혼자 다 짊어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언제든 힘들면 오시고, 명절에 조금씩 다른 가족들과 나누고 남편분께도 도와 달라 하셔요”

외래 때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환자분은 작은 웃음만 지으시면서 “이번 명절도 음식을 많이 하느라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잘 먹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좋아요. 시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다만 요즘은 가족들이 너무 당연히 제가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가끔 서러운 마음이 이상하게 드는데 그런 모습이 저 같지가 않아요. 폐경한 이후로 뭔지 모를 힘듦이 있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해도 충분히 제 감정을 알아주는 것 같지가 않아서 이야기도 힘드네요.” 라고 말씀하시며, 손수 만드신 김치를 맛 보라며 건네고 가신다. 마음도 참 고우시지만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계셔서 좀 걱정이 되던 환자였는데, 내가 미국에 연수를 다녀와서 잠시 잊고 지내던 중 설 명절이 지나고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분이 심한 호흡곤란과 폐부종이 생기고, 심장 효소 수치가 증가해서 입원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내가 미국에 간 동안 동네 병원에서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면서 지내고 계셨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 이후 자녀들와 남편 식사 챙기기가 더 많아졌고, 설 명절때는 크게 모이지는 못해도 꾸준히 가족들과 손님들이 집에 오고 가느냐 음식도 많이 만들고 바빴다고 한다. 게다가 시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이것 저것 챙기느냐 좀 더 바빴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가족들에게 좀 도와 달라 이야기를 해도 서로 너무 바쁘다 보니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게 되어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 좀 있던 다음날부터 갑자기 가슴에 조금 불편감이 생겼는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 그런가 보다’,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보다’ 하고 좀 더 참아 봐야지, 참아 봐야지 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자다가 계속 깨고, 숨을 도저히 쉴 수가 없어 응급실로 왔다고 한다.

환자는 심근경색 때나 올라갈 수 있는 심장의 효소 수치들이 올라가 있어 우선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였고, 검사상 관상동맥은 모두 깨끗하고 정상적이었다. 심장 초음파를 보았을 때,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인 심장 기능이 평소의 5분의 1도 되지 않고 특히나 심첨부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심한 페부종이 발생하였는데, 환자는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진단됐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stress induced cardiomyopathy)은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에 의해 유발되는 급성 심장질환 증후군으로, 특징적인 좌심실 심첨부(apex)의 운동장애 양상 때문에 Takotsubo 심근병증(문어를 잡는 항아리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또는 apical ballooning syndrome으로 불리기도 한다. 흉부 통증, 호흡곤란과 함께 나타나는 심근 효소의 상승, 심근 허혈을 의심하게 하는 심전도의 변화, 심초음파 검사에서 국소벽 운동장애 등 임상 양상은 급성 관상동맥증후군과 매우 유사하게 나타나지만 관상동맥조영술에서 관상동맥의 유의한 협착이나 파열된 동맥경화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임상 양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을 진단하게 된다. 이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여성에게 많고, 특히 50세 이후 폐경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심장이 찢어진다” “심장을 도려내듯 아프다”라 표현을 쓰곤 한다. 정말로 심장에 문제가 없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망가질 수 있는데, 이를 ‘스트레스성 심근증’이라 한다. 스트레스성 심근증은 심리적인 충격을 받거나 화상·감염·패혈증 같은 질병을 겪은 후, 심장 근육이 일시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돼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면서 흉통, 호흡 곤란, 두근거림 등이 생긴다. 혈관이 막히는 것은 아니고 일시적이라 안정을 취하면 대개 한 두 달 안에 회복된다. 스트레스를 받고 증상이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대부분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스트레스성 심근증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10명 중 1명꼴로는 폐부종이나 심한 심장 기능의 상실로 쇼크가 올 수 있어 인공호흡기나 혈압 상승을 시키는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위 환자처럼 개인의 성격적 특성상 속상함, 억울함, 증오 등의 감정을 쉽게 풀어내지 못한 분들은 그 감정을 담아두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단순한 화병으로만 치부하고, 가족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못하고 참고 있다가 심한 심부전으로 오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성 심장질환자는 남성과 다르게 가슴 통증과 같은 전형적인 심장질환 증상이 아닌,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듯한 비전형적 증상으로 나타나 단순한 ‘화병’으로 오인하기 쉬운데 여성은 폐경이 지나면 남성보다 심장질환 발생률이 높지만 증상이 모호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위 환자처럼 스트레스 유발 심근병증도 있지만 폐경이후 여성들은 정말 관상동맥이 막혀 발생하는 허혈성 심질환에 의한 심부전도 발생할 수 있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심해지는 여성들이 주요 증상이 여러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경우, 대부분 참기를 잘하는 여성들이 단순히 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화병” 증상이다 라고만 생각하고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의 심장질환 증상이 이와 비슷해 치료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처음 정의된 이래,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진단 검사를 활용하게 되면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의 진단율이 증가하고 질병의 스펙트럼도 확장되고 있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기저 질환의 호전과 더불어 양성 경과를 가진다고 알려져 왔지만, 기존에 심장 질환이 있거나 고혈압, 당뇨등이 있는 환자에게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이 발생하는 경우, 이로 인해 기저질환의 치료가 더욱 어려워지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은 환자의 증상과 징후를 통해 초기에 발견하고, 임상 양상뿐만 아니라 환자가 가진 위험 인자, 다양한 전신질환 및 심혈관 상태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평소에 긍정적인 마음과 스트레스를 올바로 풀 수 있는 방법들도 모색해 보아야 한다.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하루 지낸 후, 병실로 올라와서 며칠간 더 입원 치료를 받은 후 폐부종이 호전되고 심 기능이 다소 호전된 상태로 외래로 방문하였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심 기능은 모두 정상적으로 다행히 회복되었다. 남편과 가족들을 만나 면담을 하였고, 환자분이 혼자 아무 말 없이 일하실 때도 한 번씩이라도 고생하신다.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뭔가 필요한 건 없는지 여쭤봐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가족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도움을 드리려는 마음을 주지 않으면 환자분도 스스로 먼저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자분께도 가족들을 위해 혼자서 모든 일을 담아 두지 말고, 하나씩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이야기하고, 환자의 건강이 가족들을 위해 중요함을 강조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주어야 한다. 특히나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중년 여성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다 자란 자식들과 나이 든 부모님들을 보면서 소외감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들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국이라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기 쉽지 않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사정에 우선 자신만을 살피는 시기이지만, 짧게라도 영상통화라도 가족들과 반갑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에게 필요했던 것들은 없는지 살펴보고 고생하는 어머님께 한 번 정도 필요한 건 없는지, 여쭤도 보고, 한 번 정도 손잡아 드리고, 안아 주면서 관심을 표현해 보면 어머님의 마음 한켠에 생긴 응어리도 풀어지고, 더욱 활기가 생길 것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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