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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을 핵으로 한 신예들, ‘화수분 축구’ 벤투호 득점원 다양화[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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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조규성


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이른다.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설화상의 단지일망정 밝은 앞날을 꿈꾸며 언젠가 한 번쯤은 갖고 싶은 욕망을 일게 하는 물품이다.

전영택은 같은 이름의 단편 소설을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했다. 주인공인 지게꾼 행랑아범 화수분 일가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비극을 통해 당시 우리 민족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통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는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 줬다. 부모의 체온 덕분에 살아남은 나어린 딸을 지나가던 나무꾼이 데려가는 결말을 통해 독자가 ‘희망의 빛’을 발견하며 슬픔 끝에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화수분은 스포츠에서도 곧잘 등장한다.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다수 발굴하여 잘 키워서 주전의 빈자리를 언제든지 메울 수 있도록 팀을 운영하는 일을 빗대어 표현할 때 쓰곤 한다. 밝은 훗날을 기약케 하는 ‘화수분 팀’이야말로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주전 선수들을 FA로 내보내고도 지난 시즌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대표적인 예다.

신예 5인방, 1월 원정길을 자신들의 무대로 장식

한국 축구에도 화수분 같은 팀이 나타났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다. 2022년에 들어서며 벤투호는 매력적 풍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A대표팀 경력이 일천하거나 갓 모습을 보인 신예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고 존재감을 뽐내며 한국 축구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다.

임인년(壬寅年)을 밝히는 원단의 해가 솟은 지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벤투호는 3경기를 치렀다. 레바논(27일)과 맞붙은 2022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1경기와 아이슬란드(15일)·몰도바(21일)와 기량을 견준 친선 평가 2경기였다. 3경기에서, 벤투호는 10득점(경기당 평균 3.33) 1실점(〃 0.33)의 아주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막강 공격력과 철벽 수비력이 어우러진 풍성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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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가장 두드러진 결실은 외형적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골로 나타난 신예들의 맹활약이었다. 조규성·백승호·김진규(이상 각 2골)·엄지성·조영욱(이상 각 1골) 등 비교적 새 얼굴인 5명이 8골을 터뜨렸다(표 참조). 팀 전체 득점의 80%에 달할 만큼 절대적 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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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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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국가대표팀이 이번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과 레바논에서 펼쳐질 최종 예선 7차전으로 이어지는 원정길에 오르기 전, 벤투호엔 다소 막연한 불안감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양쪽 날개인 손흥민-황희찬이 부상으로 합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손-황 듀오가 합류하지 못하면서, “공격력 약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신예들은 마치 “섣부른 예단!”이라고 외치듯 뛰어난 몸놀림으로 불안감을 말끔히 가시게 했다. 물론 친선 경기 성격상 자원의 재능을 타진키 위해 벤투 감독이 운용의 묘를 꾀했다고는 해도, 이들은 출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잠재력을 한껏 분출시켰다. 알토란 같은 존재로 클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아울러 벤투 감독을 흡족케 했다.

특히, 조규성(김천 상무)이 빼어났다. 벤투호의 최전방 공격수인 황의조와 닮은꼴 센터포워드로서 대단한 재능을 지녔음을 마음껏 뽐냈다. 위치 선정과 본능적 골 감각 등 골잡이로서 갖춰야 할 재질을 두루 갖췄음을 펼쳐 보였다. 또한, 수비 지역 깊숙이까지 전방위로 뛰어다니는 강한 체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전방 압박 능력은 일품이었다.

이런 강점이 벤투 감독에게 어필하며, 조규성은 마침내 폭발했다. 최종 예선 레바논전에서 황의조와 투 톱을 이뤄 출전해 결승골(1-0 승)의 주인공으로 ‘3점 승점극’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투 톱을 거의 운용하지 않던 벤투 감독이 비장의 한 수로 내놓은 4-1-3-2 전형이 멋들어지게 적중하는 데 선봉장으로 맹활약했다.

A대표팀에 발탁된 지 5개월여밖에 안 된 조규성에게 레바논은 잊지 못할 인연의 상대가 됐다. 지난해 9월 7일 최종 예선 A조 2라운드 홈(수원) 경기에서 데뷔한 조규성이 처음 만난 상대가 레바논이었다. 그리고 친선 경기가 아닌 A매치에서, A대표 첫 골을 수놓은 화폭도 바로 레바논이 됐다.

백승호(전북 현대)도 조규성 못지않은 작품을 남겼다. 이승우·장결희와 함께 ‘바르셀로나 키즈’로 꿈을 키우다가 시련에 부딪혔던 백승호는 아픔을 씻어 내는 몸놀림을 이번 원정길에서 보여 줬다. 지난해 최종 예선 시리아·이란전을 앞두고 벤투호에 재승선한 백승호는 이번 1월 친선 두 경기에서 잇달아 골맛을 봄으로써 힘찬 재기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음이 엿보였다. 백승호는 2019년 벤투호에 소집되며 그해 6월 친선 이란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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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부산 아이파크), 엄지성(광주 FC), 조영욱(FC 서울)은 A매치 데뷔 무대에서 데뷔 골을 낚는 감격을 누렸다. 김진규는 아이슬란드·몰도바전에서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공격력을 갖춘 미드필더”라는 평가에 걸맞은 활약상을 펼쳤다. 엄지성(광주 FC)은 아이슬란드전, 조영욱은 몰도바전에서 각각 한 골씩을 잡아냈다.

벤투호가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팀은 이제 ‘화수분 축구’라는 별호마저 들을 만큼 무궁무진한 전력을 갖춰 가고 있음을 보였다. 10연속 본선 진출의 위업을 넘어 카타르 본선 마당에서 대망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되는 벤투호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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